[단독]3개 벤처협회 '퇴직연금 벤처투자 허용' 공동 대응 나선다
'투자'조차 유리천장 있는 여성 벤처, 자금난 심각
"벤처투자 시장이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보통은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하는 희망이라도 가지게 되는데 요즘은 상황이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요. 단단한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리려면 어느 한 고리를 딱 비틀어 줄 만한 상황이 간절하죠. 특히 여성기업은 창업과 경영 전반은 물론 투자를 받을 때조차 '유리천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민주 민경석 기자 = 고금리와 경기불안 여파로 위축된 벤처투자 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가운데 벤처업계에선 38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이 투자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그간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와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업계가 힘을 합쳐 숙원사업인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을 이뤄내고자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13일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퇴직연금을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퇴직급여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 벤처협회와 벤처캐피털협회까지 3개 협회가 공동으로 대응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현행 퇴직급여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에서는 퇴직연금 운용 방법을 예·적금, 보험, 상장사 지분증권(주식)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원금보장 등 안정성이 중요한 퇴직연금 특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하나 이 때문에 퇴직연금을 가지고는 벤처투자를 할 수 없다.
이에 업계는 그간 꾸준히 퇴직연금을 벤처펀드에 출자를 할 수 있도록 퇴직급여법 시행령을 개정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들은 380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다만 일부라도 벤처투자 시장으로 유입되면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 4000억 원이다.
윤 회장은 "벤처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인 요소인데 최근 투자가 너무 줄어들면서 많이 어렵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잠자고 있는 돈이 있더라, 바로 퇴직연금"이라며 "법을 개정해 퇴직연금을 벤처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벤처협회와 벤처캐피털협회가 같이 공동 대응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2022년 0.02%, 지난해에는 5.25%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각각 5.1%, 3.6%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익을 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10년간 퇴직연금 연환산 운영수익률은 2.07%에 그친다.
반면 최근 10년간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가 출자한 벤처펀드는 평균 12.5%의 높은 수익률을 실현했다. 국민연금 수익률(IRR)은 13.9%, 고용보험기금은 17.2%, 사학연금은 10.1%다. 청산연도 기준 지난해 전체 벤처펀드(70개) 수익률(IRR)은 9%, 수익률 상위 25% 펀드(18개)의 수익률은 22.4%다. 최근 5년간 전체 청산펀드 수익률은 9.6%다.
윤 회장은 "일반적인 직장인이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해 30년을 근무하고 받는 퇴직금을 단순계산하면 4억 원 정도"라며 "이 돈을 모태펀드에 투자하면 10억 원(수익률 9.7% 기준)이 된다. 고령화 시대에 4억 원을 가지고 노후를 보내는 것보다 10억 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라고 했다.
이달 본격적인 공동 대응에 나선 세 협회는 이달 초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을 찾아가 읍소를 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상반기에는 대통령실, 경제부총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참석한 업계 간담회를 열고 관련 내용을 제언했다. 하반기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다수 인사들을 만나 목소리를 전한다는 계획이다.
윤 회장은 "통상벤처펀드는 위험성이 높은 투자라는 인식과는 달리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견조한 성장세를 토대로 안정적인 수익 획득이 가능하다"라며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투자 허용은 벤처업계에 투자 물꼬를 터 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퇴직급여법에서 위임받아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가 운영 중인 퇴직연금 시행령과 고시가 벤처펀드 출자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법에서 위임한 퇴직연금 운용방법에 '벤처펀드 출자'를 추가하거나 퇴직연금의 비상장주식 취득 허용 등을 담아야 한다.
퇴직연금 활용을 위한 활동에 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가 함께 나서는 더 큰 이유도 있다.
길어지고 있는 벤처투자 한파에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중 여성 창업자나 경영자가 있는 벤처기업의 경우 남성 창업자나 경영자가 있는 벤처기업보다 투자에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여성 직원뿐 아니라 여성기업인들에게도 유리천장이 여전하다. 같은 분야의 기업이라도 여성기업에는 투자가 덜 들어온다"며 "아무래도 안정성을 중시하는 여성기업의 성향 때문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퇴직연금을 벤처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설령 활짝 열리더라도 그것이 여성 벤처기업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다만 벤처투자 자체를 살려놔야 여성 벤처기업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윤 회장은 발벗고 나섰다.
그는 "이런 안정지향성 때문에 투자자들이 여성기업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투자를 하게 되고 그렇다보니 투자도 (남성기업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며 "투자를 받기 어려운 여성기업들에 투자 물꼬를 터주기 위해서라도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퇴직연금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여성 벤처기업 투자를 확대할 만한 '여성기업 펀드'를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그는 "200억 원 규모인 중기부 모태펀드 '여성기업 펀드' 출자를 500억 원까지 늘려달라고 주문했다. 여성기업 펀드는 여성이 최대주주 도는 CEO이거나 여성 임원이 40% 이상인 창업·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윤 회장은 "최근 기술기반의 여성 창업가들이 많이 늘어났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여성 10명이 창업하면 그중 기술 기반 기업은 1~2명 정도밖에 안됐으나 요즘에는 3~4명 수준"이라며 "과학계, IT 분야의 여성들이 창업을 하기 시작했다는 트렌드가 형성됐지만 여성전용 투자 펀드는 수년째 200억 원에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투자를 늘려달라"고 했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민주 기자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장 약력 △한양대 관광학과 졸업 △숭실대 중소벤처대학원 석사 △숭실대 경영대학원 박사 수료 △지아이이앤에스 대표이사(2005년~현재) △한국여성벤처협회장(2023년~현재) △대통령직속 국가우주위원회 위원 △前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개발진흥 실무위원 △前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 위성활용위원 △前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한국판뉴딜국정자문위원 △前 대통령직속 과학기술위원회정책조정전문위원
minj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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