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안전제일’을 다시 바로 세우려면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오늘도 휴대전화의 ‘중대재해 사이렌’은 쉼 없이 울린다. 외벽 페인트 작업 중 추락사, 테라스 균열보수 작업 중 추락사, 창고 신축 현장 안전난간 파손으로 추락사 등 비슷한 사고 소식이 반복되면서 죽음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것만 같아 두렵다.
대부분의 재해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식, 기술,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위험요인을 알고도 무시했거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했기 때문이었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 즉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해병대 채 상병에게 구명조끼만 입혔어도, 숙박시설에 간이 스프링클러만 설치했어도 덧없는 죽음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제에 산업안전보건법을 국방, 공공행정, 사무직 등에도 적용하고 소방 의무가 없어도 화재가 반복되는 부문에는 예방조치를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지만 흔히 보인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 예가 ‘안전제일’이다.
안전제일은 1906년 미국 철강사 US스틸의 앨버트 헨리 개리(Elbert Henry Gary)회장이 안전을 품질, 생산보다 우선시하는 경영을 통해 재해를 절반으로 줄이고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한 데서 유래한 구호로 산업 현장의 푯말, 펜스, 헬멧, 작업복 등에 녹십자 마크와 함께 쓰이는 익숙한 글귀다.
그러나 같은 일터에서 사망 재해가 반복되는 것만 봐도 안전제일은 요원한 듯하다. 안전을 명실상부하게 경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정착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분노와 보복적 처벌의 위협만으로는 실질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없음을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후 50여 년의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 2022년 1월 시행 이후 작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 개인을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안전의 후퇴로 인식하는 터부를 깨야 하는 이유이다. 안전불감증을 타파하고 안전제일 경영을 촉진하려면 실사구시,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안전이 소모적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전비용에 대해 세제지원을 해주는 방안이 있다. 건설업에 사업규모별 안전관리비를 책정하듯이 제조업 등에 대해 안전투자 세액공제를 실시하면 중소·중견기업에서도 기업별 상황에 맞춘 안전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재해 예방에 필요한 예산 확보의 기준이 돼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둘째, 안전산업의 선진화다. 획일적 규제의 카르텔에 기생한 소규모 안전관리업체와 교육기관의 난립은 저가 경쟁과 안전의 형식화로 안전을 후퇴시킨다. 규제와 예산이 전관의 먹을거리가 돼서는 실질적인 안전이 확보될 수 없다. 안전시설·장비의 인증·검사, 안전관리대행, 안전교육 등의 수수료를 장기간 묶어놓고 정부 주도의 무상보조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적정 비용을 보장하되 전문성을 기준으로 참여 자격을 제한하지 않으면 재해감소 성과는 없이 나랏돈 나눠 먹기가 만연하고 사업주는 안전은 정부가 해주는 것이라는 인식하에 공짜와 싼 것만 찾게 된다.
셋째, 인본주의 안전문화의 창달이다. 학교 교육부터 사업자 등록 등 생애 전 과정에 걸친 안전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지도층부터 안전실천을 솔선해야 한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주를 징벌하기에 앞서 장관, 군 장성, 대기업 회장 등부터 안전관리책임자 교육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재해’는 재수가 없어 당하는 ‘불행’한 사고가 아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안전에 대한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기업이든 정부든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됐음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겠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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