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고가도로 아래 빈 공간이 지역경제 살리는 쇼핑센터로
〈9〉 영국 런던 웨스트웨이
웨스트웨이 고가도로 밑 지역상점… 시민단체가 무상임대 받아 조성
공익 돕는 ‘착한가게’ 임차료 우대… ‘홍보 플랫폼’ 마련해 상인 지원
쉼터-헬스장 등 주민 공간 마련도
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 첼시 왕립 자치구. 고가도로 웨스트웨이 밑 쇼핑센터에서 만난 액세서리 가게 ‘펍업’의 직원 이비 로즈 씨는 “개점할 때 가게 조명, 페인트, 인테리어 등을 모두 이웃 가게에서 해결했다”며 “지역 토착 가게들이 많아 서로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거대한 고가도로 아래 긴 도로를 따라 들어선 쇼핑센터엔 맞춤형 액세서리 가게, 큰 사이즈 속옷 전문 매장, 금융 컨설팅 사무소 등 색다른 매장 27곳이 들어서 있었다. 쇼핑센터를 운영하는 ‘웨스트웨이 트러스트’는 이 지역 출신 상인과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업종에 입점 우선권을 주고 있다. 고가도로 아래 슬럼화될 위기에 처했던 빈 공간이 지역 고유의 창의적인 사업을 키우고 고용도 창출하는 ‘지역 경제의 허브’로 큰 것이다.
● 슬럼화 고가도로 밑, 창의적 쇼핑센터로
1960년대 중반 영국 런던 서부에 런던 내부순환도로와 서부 교외를 연결하는 A40 간선도로의 고가 2차선 구간 웨스트웨이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4km에 달하는 이 구간은 동쪽 패딩턴에서 서쪽 노스켄싱턴을 잇는다. 건설이 시작되며 지역 주민들 집이 철거되고 주변 거주민들은 소음과 공해에 시달려야 했다.
1970년 고속도로가 정식 개통되며 참다못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도로 건설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회적으로 웨스트웨이 건설의 비판 여론에 힘이 실렸다. 이에 1971년 풀뿌리 시민단체 웨스트웨이 트러스트가 설립됐다.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이 단체는 정부로부터 고가도로 밑 9만3000㎡의 땅을 장기 무상임대 받아 쇼핑센터를 조성했다. 대형마트 같은 상업시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을 위한 자선단체 등 다양한 매장을 입점시켰다. 웨스트웨이 트러스트는 연간 약 600만 파운드(약 105억 원)를 벌어들이는데 수입의 대부분이 임대수익에서 나온다.
쇼핑센터도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임차료도 3단계로 나눠 차등 청구한다. 대형마트는 임차료 전액을 내지만, 공익에 도움이 되는 상업시설은 일부 할인해 준다. 시민단체나 자선단체에는 무상으로 사무실을 내주기도 한다.
지역 경제를 되살린다는 공감대 덕에 쇼핑센터 상인들은 경쟁보다 상부상조에 힘쓸 수 있다. 이곳에서 큰 사이즈 속옷 전문점 ‘시스터 사이즈 부티크’를 운영하는 샬린 임버트 씨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자영업자들이 다 어려울 때 지역 사회의 필요와 특징에 맞춘 로컬 사업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곳에 가게를 열었다”며 “지역 주민들이 ‘우리 동네 가게’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조언해 주고 입소문도 내준다”고 말했다.
웨스트웨이 트러스트의 상인 지원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이 단체는 최근 지방정부와 협력해 쇼핑센터 가게들과 인근 포토벨로 시장 노점상을 위한 ‘홍보 플랫폼’도 마련했다. 가게별 정보를 소개해 홍보 여력이 부족한 지역 상인들을 돕는다는 취지다.
● 은퇴자들 쉼터, 저렴한 건강관리 공간으로
고가도로 밑엔 ‘웨스트웨이 스포츠 피트니스’ 센터도 들어서 있었다. 테니스 코트, 헬스 기구 등을 두루 갖춘 현대식 센터였다. 지역 주민들에겐 특별히 할인된 가격으로 회원권을 판매한다. 지역 주민의 공간에 들어선 헬스장이니 주민들의 건강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고가도로 아래를 따라 다양한 시설들이 보였다. 외곽의 공터는 주차장으로 쓰였다. 장애인 운송 차량 등 공익 서비스 차량에 주차 우선권을 제공하고 있다. 한쪽 건물은 지역 스타트업들이 사업 개발을 하는 사무실로 활용됐다.
고가도로 공간은 다양한 시설로 꽉 찼지만 이곳을 운영하는 웨스트웨이 트러스트는 최근 자아 성찰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역 주민들이 ‘웨스트웨이 트러스트가 인종차별적이다’라고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 지역의 공동 공간인데 유색 인종 주민들 사업엔 지원이 소극적이란 주장이었다.
이 단체는 외부 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실제 인종차별적인 측면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이사진을 개편하고 지원사업을 결정할 때 다양한 인종, 계층을 고려하는 데 힘쓰고 있다. 맷 브래들리 웨스트웨이 트러스트 홍보마케팅수석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공간 사용 방식을 결정하도록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런던=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야의정 협의체 진통…韓 “일단 출발” 野 “핵심단체 빠지면 안돼”
- [사설]美 대선 토론 직후 미사일 쏜 北… ‘10월의 깜짝 도발’ 시동 거나
- [사설]‘용산 관저’ 업체들 위법 수두룩… 추천인은 모른다는 감사원
- [사설]도박 자금 마련 위해 불법 사채까지 빌리는 청소년들
- 민간인 첫 우주유영 성공…“여기선 세상이 완벽해 보여”
- 도이치 ‘전주’, 주가조작 방조 혐의 유죄…“金 수사 영향줄 듯”
- 8년만에 새 원전… 신한울 3·4호기 짓는다
- “엄마가 아니라 고모였다” 日 유력 총리후보 고이즈미, 어두운 가정사 전격 공개
- SKY 의대 수시 경쟁률 18.8대 1…전년 대비 모두 상승
- “천석꾼 가세 기울었어도, 독립운동 아버지 원망은 이제 안 해요”[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