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출발, 시베리아 초원으로
기대반 걱정반, 그렇게 여정은 시작됐다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는 금언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꿈꿔 왔던 소망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싶은 소망이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가장 이른 지금, 70세를 기념해 이를 실천한 여행기를 싣는다. 경기일보 독자께 가슴 설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닿았으면 한다.
■ 오지로 자동차 여행
2024년 7월2일 오후 3시 동해항 여행터미널에서 카페리호에 자동차를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한다. 국제선 출발 3시간 전, 출국 체크인을 위해 12시까지 동해항에 도착해야 한다. 아침에 서울에서 자동차로 영동선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향한다. 장맛비가 출발할 때부터 계속 내린다. 평창, 대관령에 들어서면서 강한 비에 산안개까지 진하다. 자동차 앞 유리창 브러시가 쉼 없이 움직여 더욱 마음이 심란하다. 이번 장거리 여행에 동반자로 함께 가는 아내(미세스 송으로 부름)의 심기는 매우 불안한 기색이다.
이번 여행은 설렘, 즐거움보다 뭔지 모르게 걱정, 불안 등 무거운 기분이 짙게 깔려 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서쪽으로 계속 가면서 북쪽과 남쪽으로 오르내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이동해야 할 거리도 약 2만2천㎞다. 여행사조차 관광상품으로 팔지 않는 오지, 초원, 사막, 반사막, 스텝지역, 고산지대를 운전해 가는 것이다. 낭만적이기보다는 고행길이고 터프한 여행이다.
여행을 결정한 이후부터 걱정의 연속이다. 장거리 여행 도중 미지의 세계에서 부딪치게 될 예측 못 할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다.
내 나이가 70세이고 미세스 송은 66세다. 나이가 드니 겁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함께 가기로 약속한 미세스 송의 불안감과 신경의 예민함, 수시로 자기는 빼고 나 혼자 떠나라는 하소연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동해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아들들, 손자들, 친구들과 보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투덜댄다. ‘향후 나와의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언까지 한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미세스 송의 반발이 커질수록 이번에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못 들은 척 무시한다.
■ 유라시아 대륙 여행 코스
자동차 양쪽 벽에 우리가 갈 여행 코스를 나타내는 대형지도를 붙여 놨다. 함께 가는 일행이자 자동차를 선두에서 리드하는 현대장의 아이디어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지겨워하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과목을 나는 좋아했다. 광대한 시베리아 초원, 유목민들이 살았던 사막, 스텝, 실크로드 유적, 카스피해 등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만 했던 곳을 향해 드디어 출발한다.
통과하는 국가는 러시아, 몽골,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재입국, 조지아, 튀르키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서쪽 시베리아를 따라 바이칼호로 간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와 몽골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가는 코스다. 험하기로 소문난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 카라쿰사막, 키질쿰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몽골고원, 파미르고원, 톈산고원, 아나톨리아고원 등 고산지대도 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자동차 여행이 무척 힘든 나라다. 지구 반대편의 서유럽 국가는 국경 통과가 자유롭고 맘만 먹으면 자동차로 동유럽, 튀르키예,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를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륙으로 가는 길목을 북한이 가로막고 있다. 북한을 우회해 카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인천에서 중국 산둥반도로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자동차 여행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제네바협약) 미가입국이다. 우리나라 관세청에서 중국으로 자동차 여행을 위한 승용차 반출 허가가 나지 않는다. 이에 불가피하게 러시아와 몽골을 경유, 중국의 네이멍구로 우회하기로 여행계획을 짰다.
■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국제여객선 탑승
동해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거리로 900㎞, 운항 시간은 25시간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왕복하는 국제선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중단됐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 편이 유일하다.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대다수 승객이 러시아인이다. 러시아 언어만이 대합실에서 시끄럽다. 키도 크고 몸도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어느 러시아 지역에 온 것 같다. 배에 싣고 갈 보따리가 많다. 상당수가 보따리상이거나 누군가의 부탁으로 짐을 가지고 가는 것 같다.
아침 출발할 때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더욱 강해지고 계속 내린다. 배가 정시에 출발할지, 파도가 높으면 배 멀미는 어떨지, 당초보다 운항 시간이 훨씬 늘어날지 걱정이다.
여객선 예약이 늦은 관계로 선실은 10여명이 함께 쓰는 3등실이다. 러시아 사람도 몇 명 같은 방에 있다. 사람당 퇴색한 갈색 매트리스와 베개 하나씩 배정됐다. 꼭 설악산 등산객 산장처럼 매트리스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이러한 상태로 25시간 누워 갈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면 누워 있는 옆 사람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출발 첫날부터 예상보다 매우 불편한 여정이다. 미세스 송은 말은 안 하지만 정말로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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