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의 해외 플랫폼… ‘배째라식 대응’ 더 깊이 파헤쳤어야

정리/김정형 기자 2024. 9. 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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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9월 정례 회의]
오른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민세진·김별아 위원, 김도연 위원장, 김재련·박원호·정윤혁·한준 위원, 조중식 부국장. /김지호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 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태수(변호사),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김경수 복권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復權)과 관련, <여당 대표 한동훈 “김경수 복권 반대”>(8월 10일 자 A1면)와 <韓, ‘김경수 복권’ 입장 묻자 “제 뜻 충분히 전달됐다고 봐”>(8월 13일 자 A8면), <韓 “공감 어렵지만 더 언급 안 해” 野 “억울한 옥고 위안”>(8월 14일 자 A4면) 등 일련의 기사가 실렸다. 여당 대표가 확전을 피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선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탓이기도 했겠지만, 후속 보도가 용두사미라 아쉬웠다. 댓글 조작이라는 민주주의 선거의 근간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처하는 자세는, 당정 갈등을 피하기 위해 흐지부지되어선 안 된다. 여당 대표에게 정치적 입장 표명을 더 적극적으로 요구했어야 할 문제였다.

-최근 한 달간 정치 기사들을 보면 조선일보의 의제 설정(agenda setting) 능력이 상당히 돋보였다. 양극화된 여야 대립 국면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여당과 대통령실 관계가 경색적인 구조 속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제들을 던지고 이끌었다. 의료 대란과 관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몇 차례 발언이 대통령실의 거부로 불발됐지만 그래도 조선일보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등 문제 제기를 계속했다. 최근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질스럽고 지리멸렬한 정치 뉴스가 안 볼 도리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치면 하단의 <기자수첩>은 칼럼이나 사설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회 푸대접 좋았겠나, 그래도 개원식에 갔다>(9월 4일 자 A8면), <응급 의료 최대 수혜자 이재명, 갈등 조장 말고 대안을>(9월 5일 자 A10면)은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정치부 기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담아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임기 끝나도 그 자리에… ‘文 정부 알박기’ 인사들>(8월 16일 자 A1·4면)은 팩트로만 보면 틀리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제목만 읽으면 문 정부의 알박기 인사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오독(誤讀)할 여지가 있다.

거대 플랫폼

-9월 3일부터 이어진 <’범죄 방조자’ 거대 플랫폼> 시리즈는 거대 플랫폼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다룬 기획이다. 거짓 뉴스를 포함해 각종 범죄의 온상인 플랫폼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전 세계가 범죄와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시기에 시의적절하고 포괄적이며 깊이도 있다. 첫날 <’범죄 방조자’ 플랫폼, 책임도 안 진다>(9월 3일 자 A1면)에서는 포인트를 잘 잡아냈다. “최근 텔레그램에 ‘딥페이크 음란물’이 급증한 것도 지난 4월 텔레그램이 구독자 1000명 이상 채널(방) 개설자에게 광고 수익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이다. <법 위의 해외 플랫폼>(9월 7일 자 A1·5면)에는 텔레그램이 11년간 200여 차례 경찰 수사 자료 요청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누가 이 짓을 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을 깊게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유튜버 신원 문제에서 갑자기 유튜브 뮤직 관련 이야기로 넘어가 의아했다.

-<美·英, 딥페이크는 제작만 해도 처벌>(8월 29일 자 A1·2·3면)이 신기술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점은 긍정적이지만, 정보 기술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일부 드러난 부분은 아쉽다. 딥페이크는 영화, 게임, 인물 재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단순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음란물 등 부적절한 콘텐츠를 제작했을 때 처벌받는다. 부적절한 딥페이크 사용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타당하지만, 기술 자체를 ‘악마화’하기보다 중립적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딥페이크에 477校 당했다? 하루종일 뒤숭숭>(8월 27일 자 A12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허위 영상물을 만들어 배포해 입건된 피의자 중 69%(194건)가 10대 청소년이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언론은 허위 영상물의 소지까지 처벌해야 한다며, 유포 목적이 아닐 때에는 처벌할 수 없는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처벌 대상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딥페이크와 관련한 예방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교육부·여성가족부·경찰청·법무부가 구체적 사례를 소개한 시청각 자료를 만들어 청소년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교육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유포나 영리 목적 제작 행위는 징역형 등으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단순 제작이나 소지 행위에 대해서는 예방 교육과 상담 등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지난달 매우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가 ‘한일 역사 인식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2030세대 57% “일본에 호감”>(8월 14일 자 A16면), <한국 스타트업은 열도로… 일본 첨단 기업은 한반도로>(8월 21일 자 A2면) 등은 좋은 기사로 평가하고 싶다. 지금의 퇴행적 역사 논쟁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 언론이 좀 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인강 재탕

-<등록금 1000만원 내는데, 교수는 4년 전 ‘인강’ 재탕>(9월 4일 자 A12면), <강의 재활용 교수들의 변명>(9월 7일 자 A26면)은 인터넷 강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다. 담당 교수의 게으름과 일탈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가 모두 비효율적이라고 비난만 해선 안 된다. 성균관대는 전체 강좌 중 온라인 비율이 38%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했는데, 이를 마치 열악한 교육 사례인 양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하버드대가 2023년 제공한 강의 약 5000건 중 많은 수가 일부 온라인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하이브리드 강의다.

-<PA간호사 합법화… 여야, 간호법 합의>(8월 28일 자 A1·6면)를 보면 ‘진료 지원(PA) 간호사’의 법제화가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긴급 대책으로 제안됐다. PA 간호사가 전공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의료계 반박이 나오고 있지만,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필수과 레지던트 4600명에 수련 수당 月100만원>(8월 28일 자 A5면)에서 정부가 발표한 5년간 20조원 예산 투입 계획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이미 문제 되는 상황이다. 재정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길 가능성도 우려되는데 다루지 않았다.

-<취업·결혼·출산 3중 지각 사회… 일상이 된 난자 냉동>(8월 22일 자 A14면)은 난임 치료 병원에서 난자 냉동 판촉 목적으로 점포를 열자 1만명 넘는 여성이 방문했다는 내용이다. 자연 임신이 아닌 의료적 처치인 만큼 부작용 등 위험성과 안전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냉동 난자로 출산한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난임 병원 의사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교차 검증해야 했다.

-<[기자의 視角] 그가 처음 배운 소화기 사용법>(8월 23일 자 A30면)은 경기 화성 리튬 전지 공장 화재 이후 고용부가 재발 방지책의 하나로 고용 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 노동자들에게 화재 대피 훈련을 시켰다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보다 보도 자료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많다. 그런데 스팸 문자 사기 체험기인 <’돼지 도살 사기꾼’과의 일주일… 놈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8월 31일 자 B3면), 정화조 청소 도전기 <갓 잡은 구렁이처럼 ‘똥 호스’가 꿈틀꿈틀>(B4면) 등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취재하고 ‘발로 쓴’ 기사들이라 현장 냄새가 물씬 풍겼다. 신선하고 반가웠다.

이복현 관치

-<주담대 시장 흔드는 ‘이복현 官治’>(8월 27일 자 B1면), <이복현의 입, 부동산 시장 최대 리스크로>(9월 5일 자 B1면)는 제목이 너무 적나라하다. 물론 이 원장의 책임이 없지 않고 그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이렇게 사람 이름을 두 번이나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

-<창업 Z세대 “정주영 가장 존경… 그 도전 정신에 매료”>(8월 13일 자 A5면)에서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 대학생들과 관련된 지원책을 소개했다. 대학생들의 창업 도전은 바람직하지만 “졸업 논문 쓰기보다 창업이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창업 생존율을 높일 수 있도록 ‘창업의 질’에 대한 내용도 많이 다뤘으면 좋겠다.

-한 달간 조선일보 지면에 나온 제조업 관련 기사들의 키워드를 살펴보면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바이오, 원전, 인공지능, 디지털 트윈 등이다. 우리 산업의 중요한 주제임은 맞지만, 이처럼 대기업형 제조업 위주로 지면을 구성하는 것은 중소·중견 제조업이 지탱하는 일자리 비율을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9월 14일은 ‘산업단지의 날’이다.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제정된 1964년 9월 14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우리나라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30여 만 업체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이들의 미래를 함께 논의할 무대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

교토국제고

-<韓·日 합작 ‘기적의 드라마’… 교토국제고, 고시엔 대회 첫 우승>(8월 24일 자 A1면)에서 야구부의 단기간 우승 비결은 알 수 없었다. 반면 일본 보도에는 상세한 분석이 담겼다. 우선 선수들 출신 중학교가 일본 전역에 걸쳐 있었는데, 우수 인재를 스카우트할 확률이 더 높다고 했다. 졸업 후 프로에 바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다른 학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혔다. 또 투수·야수 코치의 분업 체제가 자리 잡았고, 감독과 부장의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선수들이 수많은 연습 경기를 벌였다고 했다. 교토국제고의 승리를 ‘기적’이나 ‘드라마’라고 추상적으로 뭉뚱그리기보다 과학적 분석과 구체적 설명을 곁들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 세계 장애인들의 스포츠 제전 패럴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막을 내렸다. 금메달을 딴 우리 선수들에 관한 기사를 A1면에선 못 보고 주로 스포츠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여러 어려움을 이겨낸 선수들 이야기를 더 전진 배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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