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윤석열 정부의 모순된 ‘노동약자’ 프레임
지난 2년 우리 사회의 풍경과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 것 같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취임사부터 국회 시정연설과 신년사 그리고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동개혁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집권 초기에는 노동조합 ‘혐오’를 부각했다. 그러다가 자본과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나 ‘주 69시간 도입’ 논쟁이 대표적이다. 노사 이해관계는 물론 사회적 파급이 적지 않은 주제들인데 사회적 갈등만 초래했다.
22대 총선 이후엔 ‘노동약자’ 카드를 꺼냈다. 정책자문단 출범과 지역과 직종별 간담회 추진을 보니 곧 법률과 정책을 발표할 듯하다. 주요 화두는 ‘13.1%의 조직노동’이 아닌 ‘86.9%의 미조직 노동’에 방점이 찍혔다. 구도 자체가 잘못되었고, 번지수도 틀렸다. ‘약자’의 대척점은 ‘강자’인데, 그 대상이 조직노동일까.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강자는 채용 및 인사·해고 권한을 가진 기업과 사용자지 노동조합이나 정규직 임금노동자가 아니다.
각 정부 부처나 국가기구들의 정책 대응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각 분야별로 이해당사자와의 논의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제도와 정책들이 무력화되고 있다. 정책실행 과정에서 몇몇 교수와 연구자들이 ‘학자’ 권위를 갖고 뒷받침한다. 대표적으로 대기업 비정규직 규모·고용형태 공시 의무나 비정규직 실태조사 등 제도들이 삭제되었다. 게다가 최근엔 청소년이나 비정규직과 같은 진짜 노동약자 사업은 줄어들고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고용형태 공시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심화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IMF 외환위기 시기 구조조정 여파로 실업과 비정규직 증가가 원인이 되었다. 개별 기업의 계약직과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현황이라도 파악하자는 취지였다. 300인 이상 대기업이 공시 대상이다. 기업 자율적 고용구조 개선이 도입 목적이다. 2014년 시작 이후 누구나 인터넷포털 검색창을 통해 각 기업의 고용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는 고용정책기본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1000명 이상 기업의 사업장별 고용형태 공시 의무 근거 규정을 삭제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성별 채용 차별 방지 규정을 삭제했다. 이 제도는 방송·미디어 산업의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문제의 심각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2020년 지상파방송사 재허가 의무조건 중 하나였다. 주요 내용은 계약직과 파견직부터 프리랜서까지 다양한 인력현황과 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 제출이다. 특히 핵심은 방송사별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 마련과 이행실적 제출이다. 우리 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의미 있는 제도 중 하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방통위는 2023년 재허가에선 개선방안 마련과 자료 제출 조건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년 연속 청소년 노동인권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 축소되고 있다. 2024년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2025년 고용노동부도 유관 예산을 42%나 삭감했다. 모두 청소년 권리보호나 노동인권교육 등의 사업들이다. 청소년 아르바이트부터 실습학생 노동기본권 문제가 아직도 해결 안 된 현실에서 예방적 활동조차 멈출 것이다. 영화 <다음소희>에서는 고등학교 현장실습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었고 그 여파로 법개정까지 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약자’는 누구일까. 집권 초기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출범하여 노동시장 유연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경영계 목소리를 빌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결사의 자유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출했다. 한 나라의 정치체계가 평등한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어떻게 인식하고 정책을 펼치는지 보면된다. 과연 노동약자가 누구인지 묻고 싶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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