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산불에 응답해야 한다
볼리비아 국방부 장관이 72건의 산불이 진화되지 않는다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협력을 요청했다. 에콰도르에서도 14군데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미국도 서남부 지역의 산불을 끄지 못하고 있다. 폭염이 토양과 식물을 건조시키면서 화재에 취약해진 위험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고성, 2022년 강원 동해안, 2023년 강릉 경포에서 연이어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의 저자 신하림은 ‘재난의 교훈을 되새기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없다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경제적인 고통을 개인에게 전담시켰을뿐더러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치유하려는 공동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그는 산불을 비롯한 재난상황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방-대비-대응-복구’라는 국내 재난관리 시스템에 ‘학습’이라는 단계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상황에 대한 복기와 재난이 남긴 교훈을 찾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관뿐 아니라 민간·민간 간의 소통을 강조하고, 복구가 아닌 복지라는 관점에서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들끓는 꿈의 바다>는 산불로 많은 것을 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가 리처드 플래너건이 쓴 기후위기 소설(climate-fiction)이다. 몇몇 클라이파이 소설들이 재난을 맞이한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제시한 것과 달리, 플래너건은 지금 여기의 현실을 그대로 가져온다. 산은 불타오르는데, 실내는 서늘하리만큼 시원하다! 이 소설은 재난에 대응하지 못한 채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왜 재난에 무감각해졌을까? <사고는 없다>의 저자인 제시 싱어는 이를 ‘공감피로’라 칭한다. 재난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면, 충격과 공포를 외면하고 싶어 관련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기력을 감추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기 쉽고, 권력자들은 이런 심리기제를 이용해 갈등을 부추기고 조작한다.
재난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비평가인 레베카 솔닛은 재난이 닥치면 각자 고통으로 고립되는 대신 동병상련을 느끼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인간이 일상생활을 할 때와 다르게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자 찰스 프리츠도 위험과 상실, 박탈을 함께 겪게 되면 정상적 상황에서는 불가능했을 소속감과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재난이 습관적이고 제도화된 행동양식을 중단시키고 개인과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엔리코 콰란텔리 역시 인간은 재난상황에서 이기적 행동보다 협동적 행동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또한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인간은 평상시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다. 그는 트럭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혼자 힘으로 1800㎏짜리 트럭을 들어올린 사람의 실화를 그 예로 제시한다.
삶의 대대적인 전환을 촉구하는 재난 소식들을, 시급하고 중대한 전갈들을,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처럼 즉각적으로 소비하며 지나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세계 곳곳이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산불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돌보고 주변을 돕기 시작해야 한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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