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헌재 기후판결 이행, 답은 ‘전기가격’ 정상화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핵심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탄소 감축 목표를 법에 구체화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분명해졌는데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가 문제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6억2400만t(CO₂e)이다. 이 중 전환(전력)부문이 2억t(32%), 산업부문이 2억3900만t(38%)으로 두 산업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RE100과 수소환원제철용 그린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탄소중립 이행의 70% 이상이 전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전력부문에서 탄소중립이 차질 없이 이행되기 위해서는 한국전력(한전)이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중심을 제대로 잡으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위해 전기요금을 제값대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잘 안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3년 누적 적자가 53조원, 부채비율이 644%다(2023년 말 기준). 최근 전기요금을 동결하거나 대기업 요금만 편파적으로 인상했던 이유는 물가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가격’을 통한 수급 조절을 불가능하게 했고, 에너지 절약기술 신산업의 성장을 막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도 떨어뜨리고 있다. 수급 조절 실패는 더 많은 전기수요로 연결되고 이는 또다시 정부 개입을 요구하게 된다. 가정의 인덕션, 전기차, 히트펌프 확대 같은 전기화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 않는가.
누적된 고질적 문제는 ‘특례요금’
다음으로 누적된 고질적인 문제는 전기 ‘특례요금’이다. 특례요금이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이런저런 이유로 한전의 전기요금에서 할인해주는 요금이다. 이 요금이 한 해에 1조원이나 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해에 1조7000억원이나 됐다. 2023년 한전의 적자는 4조5000억원이었다. 적자의 22%가 이 특례요금 때문이다. 도축시설 전기요금 271억원, 미곡처리장 110억원, 전기저장장치(ESS) 충전전력 1000억원, 교육용 요금 1600억원 등 약 3000억원을 할인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기요금 복지할인이 연간 약 7000억원이다. 장애인, 국가유공자, 기초생활수급자, 다자녀 가구, 사회복지시설 등이 해당된다. 당연히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 예산으로 할 일이지 국내외 주식시장에 상장된 한전이 할 일은 아니다.
정부 부처의 예산으로 전기요금을 지원하고 있는 사례는 이미 있다. 연매출액 1억400만원 미만 소상공인에게 최대 20만원, 총 2520억원을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양식 어업인에게 최대 44만원, 총 45억원을 해양수산부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용 할인은 교육부 예산에서, 도축장·미곡처리장 할인은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으로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한전 재무구조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정부 예산으로 전환해야 할 또 하나의 요금이 농사용 전기요금이다. 2023년 기준 농사용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75.1원이다. 전체 전기요금 평균단가 152.8원의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다. 평균단가 미달 금액이 전체적으로는 약 1조6000억원이다. 농사용 전기 원가회수율을 적용하면 더 클 것이다. 전기요금은 용도별 원가회수율 100%로 인상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농사용은 현실을 감안해 필요하다면 농식품부 예산에서 지원해야 한다.
중국산 냉동 고추를 수입해 싼 농사용 전기로 건조하는 사례도 공론화된 적이 있는 만큼, 싼 전기요금이 시장을 왜곡하고 국내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장은 농식품부가 파악할 수밖에 없다. 파악이 어렵다면 산업용 전기요금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한전이 중심을 잡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탄소중립에 필수적인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어 유연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 능력 또한 안정적인 재무구조에서 나온다.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지기 전에는 전기의 안정 공급이 중요했다. 그동안 한전은 그 역할을 잘해왔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가장 저렴했고, 정전 시간과 전압 관리 등 품질도 세계 최고였다.
수요·공급 실시간 반영돼야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은 전력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간헐성·변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한 방향의 공급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는 양방향 흐름이 기본이다. 전기 생산지와 소비지가 일치되는 분산전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에 특화된 전력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의 변동성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시장 도입이 필수적이다(제주도에서 15분 단위의 실시간 시장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변동성을 제어할 플랫폼과 설비투자도 필수적이다. 관련 기술과 디지털 전환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한전이 제때 확충하지 못하면 탄소중립의 골든타임은 놓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탄소중립 달성이 젊은 세대, 나아가 미래 세대에 대한 국가의 책무임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여건은 중국, 일본, 독일 같은 제조업 경쟁국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불리하지 않다.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산업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신산업으로 육성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전후방 공급망 사슬이 탄탄하게 구축된 나라다. 산업의 ‘피’로 비유되는 전력부문이 흔들린다면 재생에너지 기반의 신성장은커녕 곧이어 제조업 경쟁력도 타격을 입게 된다.
한전이 탄소중립 달성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전기 가격 결정과 특례요금 폐지가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꼭 필요한 부분의 지원이나 사회안전망 확보는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한다. 지난 8일, 국회 여당 대표가 에너지 취약계층 130만가구에 전기요금 1만5000원 추가지원 발표를 한 것도 전기요금 할인이 아닌 정부 예산으로 한 것이다.
2024년 예산 국회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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