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철 "마린스키발레단장이 '한국 스승께 감사하라' 하셨죠"

오보람 2024. 9. 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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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민 이어 두 번째 입단…예술의전당서 '라 바야데르'로 전막 주연 데뷔
"춤 잘 춰도 스토리 못 이끌면 주역 자격 없어…나만의 솔로르 표현할 것"
발레리노 전민철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마린스키발레단 단장님께서 저에게 '한국에서 정말 잘 배웠다. 한국의 스승께 감사하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전해 듣기로, 단장님께선 제가 완성형 무용수는 아니어도 앞으로 더 빛을 발하며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셨다고 하더라고요."

12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발레리노 전민철(20)은 지난여름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오디션을 봤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에 걸친 오디션 끝에 합격 통보를 받은 그는 내년 2월 솔리스트로 입단을 앞뒀다. 이달 29일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의 객원 무용수 자격으로 '라 바야데르'에 참여해 전막 주연 데뷔까지 예정됐다.

한국인이 마린스키발레단에 합류하는 건 김기민(32)에 이어 전민철이 두 번째다. 어릴 적부터 고전 발레를 좋아했던 전민철은 러시아 발레단, 그중에서도 마린스키를 항상 꿈꿔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마린스키가 김기민 이후 동양인을 뽑고 있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아, 꿈을 접어야 하나' 생각했다"며 "그러던 차에 김기민 선배께서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덕에 다시 한번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김선희 한예종 교수를 통해 전민철을 알게 된 김기민이 유리 파테예프 예술감독에게 전민철의 안무 영상을 보여줬고, 이를 높이 평가한 파테예프가 그를 러시아로 초청해 오디션을 보게 했다는 것이다.

발레리노 전민철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민철의 마린스키 입단 소식이 알려지자, 그가 2017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역을 뽑는 과정을 그린 SBS 예능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전민철은 당시 13세에 불과했지만 "남자가 무슨 발레를 하느냐"며 무용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꿋꿋이 설득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전민철은 "그때 이후로 아버지가 정말 많이 지원해주셨다"면서 "지금은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발레단이나 작품에 대해 저보다도 더 공부를 많이 하신다"며 웃었다.

그는 키가 웃자랐다는 이유로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에 불합격한 이후 발레를 잠시 그만두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안무감독의 설득 끝에 선화예중에 편입해 발레를 계속하면서도 또래들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저는 발레를 행복해서 했던 건데 계속 남과 저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어요. 그러다 흘러가는 대로 연습하고 학교에 다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슬럼프를 극복하게 됐습니다. 전 한 번도 엄청나게 열심히 해서 발레 스타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적이 없어요. 그저 차근차근 제 단점을 고치고 좀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갔을 뿐입니다."

그러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일찌감치 전민철의 재능을 알아보고서 오랜 시간 지켜봤다. '라 바야데르' 주연 발탁도 전민철의 마린스키 입단이 결정되기 전인 연초부터 이야기를 나눠왔다.

전민철이 발레리나 이유림과 호흡하는 29일 공연이 티켓 예매 오픈 5분 만에 매진되는 등 유니버설발레단은 '전민철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민철은 "저에 대한 기대감이나 궁금증 때문이 아닐까 싶다"며 "기대에 부응하게끔 후회가 남지 않는 공연을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라 바야데르' 주역 전민철과 이유림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부담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제가 관객이라고 해도 '얼마나 잘하나' 지켜볼 것 같다"면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민철이 '라 바야데르'에서 맡은 역할은 신분의 차이에도 인도의 무희 니키야를 사랑하는 용맹한 전사 솔로르다. 니키야와의 파드되(2인무)와 패기 넘치는 전사의 안무를 선보여야 해 춤 실력이 따라줘야 할 뿐만 아니라 삼각관계에 빠진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는 연기력까지 받쳐줘야 하는 캐릭터다.

전민철은 "아무리 춤을 잘 추고 동작을 잘 구현하더라도 3막까지 스토리를 이끌지 못한다면 주역으로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번 '라 바야데르' 공연에는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이동탁, 이현준, 강민우 등 쟁쟁한 발레리노들이 솔로르 역으로 각각 무대를 선보인다. 전민철은 이들의 공연이 끝난 뒤 마지막 날 무대에 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민철의 마린스키 입단에 징검다리가 되어준 김기민도 다음 달 상연하는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 같은 배역을 소화한다.

전민철은 "지금 20대의 전민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솔로르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발레를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들었던 말이 '춤은 인생의 경험치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현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의 춤은 선배님들의 춤과 다른 매력을 가질 것 같아요. 니키야와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저만의 방식으로 잘 표현해보겠습니다."

'라 바야데르' 주역 전민철과 이유림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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