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든든한 ‘천하장사’…“포기하고 싶었지만 버텨냈죠”
재단 “자금부족” 복리후생 줄이자
밥 한 번 제대로 먹으려 노조 결성
계약만료 통보받고 8개월간 투쟁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 지켜 기뻐”
서울 광진구에 있는 노인 요양원 워커힐실버타운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다 해고당한 요양보호사 강은희씨(69)가 지난 3일 일터에 복귀했다. 지난해 12월 사측으로부터 ‘계약만료’ 통보를 받은 지 8개월 만이다. 강씨는 “동료들에게 다시 일터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지킨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씻기고 먹이며, 돌봄노동자로 지낸 13년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 강씨는 거리에서 싸웠다. 어떻게 그토록 치열할 수 있었을까.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사무실에서 강씨와 이윤선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워커힐실버타운 분회장(54)을 만났다.
시설에 머무는 어르신들은 강씨를 ‘천하장사’라 불렀다. 50㎏ 중반의 강씨가 70㎏이 넘는 노인들을 번쩍 들어 옮기는 모습에 붙은 별명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어도, 불편한 어르신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도 한몫했다. 강씨는 무좀 탓에 고생하는 어르신을 보면 발톱깎이부터 찾았다.
그렇게 일하던 강씨가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이 지난해 2월부터 찾아왔다. 요양원 측이 재단 자금 부족을 이유로 요양보호사들에게 제공되던 복리후생을 하나씩 줄이기 시작했다. 요양원 내 식당 이용이 금지되고, 100m 이상 떨어져 있는 다른 회사 직원식당으로 가라고 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상황 대기 2교대로 쓰려면 주어지는 시간은 30분이 전부였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출입 때마다 옷도 갈아입어야 했다. 끼니를 거르거나, 도시락을 싸오는 이들이 생겼다. 휴식시간에 출출함을 달래주던 단팥빵이나 믹스커피, 야간근무 때 나오던 사발면, 코로나19 예방용 마스크도 끊겼다.
참다못한 강씨와 이 분회장 등은 지난해 3월 “밥 한번 제대로 먹자”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요양보호사 50명 중 49명이 가입했다. 강씨는 “그만큼 불만도 쌓여 있었고, 간절했다”고 말했다.
요양원 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교섭은 결렬됐고, 촉탁직이던 강씨는 계약만료를 이유로 동료 김선희씨와 함께 해고됐다. 사측이 내세운 해고 사유는 ‘낮에 어르신들에게 수면제를 먹였다’ ‘입소자 발톱을 깎다 피를 냈다’ ‘조원들의 불화를 조장했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해고 사유를 보고 수치스러워 눈물만 났다”고 했다.
요양원은 무단침입·절도·명예훼손·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이 분회장과 강씨, 김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 분회장이 모은 탄원서를 사무실에서 A4용지 20장에 인쇄한 게 화근이었다. 강씨는 “처음 불려간 경찰서가 너무 무서웠다”며 “경찰관이 ‘요양원에 A4용지 한 상자 사다 줄 테니 울지 말라’고 달랬다”고 했다. 요양원 측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지난달 21일부터 일주일간 화해기간을 정하자 강씨에게 반성을 요구하거나 12개월치 급여 지급을 조건으로 복직 포기를 제시했다. 강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씨는 “이렇게 힘들 줄 알면 싸움을 포기했어야 하지만, 그냥 사라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해 겨울부터 매일 요양원 앞에서 출근 전 시위를 이어갔다. 지난달 28일 중노위는 요양원 측의 부당해고를 인정했고, 이틀 뒤 요양원 측은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강씨는 “중노위 때 주심을 보신 분이 요양원장에게 ‘이분들 일 잘하는 거 인정하죠’라 물으니 원장이 ‘인정한다’고 했다”며 “그때 ‘우리가 옳았다’ ‘명예가 회복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3일부터 출근한 강씨는 “어르신들 곁에서 일하는 것과 요양보호사들에게 힘이 되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었다”며 “요양보호사들이 처한 불합리한 처우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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