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화포제작사 현대위아 공장을 가다 [밀착취재]
실제 발사 과정에 가깝게 시험
“균일한 상태 유지하는게 관건”
K-9 해외수출 확대 효과 ‘톡톡’
드론 활용한 전장 변화 발맞춰
기동형 안티드론시스템 개발도
공장 천장을 뚫을 것처럼 세워져 있는 거대하고 긴 은색의 쇳덩어리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멈추는가 싶었던 쇳덩어리가 갑자기 “꽝” 하는 굉음을 내며 제자리로 다시 올라왔다.
현대위아는 전차와 자주포, 군함에 쓰이는 대구경 포를 만드는 국내 유일의 화포제작 전문업체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엄격한 관리체계를 토대로 제작되는 화포는 전차와 자주포 등이 제 위력을 발휘하는데 꼭 필요한 장비다.
◆전차·자주포의 핵심인 공격력 뒷받침
현대위아 창원공장의 화포 생산 라인에 들어서니 도색이 이뤄지지 않은 채 은빛으로 빛나는 화포들과 짙은 녹색 계열 페인트로 칠해진 화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은빛 화포는 결함 등의 여부를 점검하는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 라인 한쪽에선 작업자들이 관련 장비를 동원해 화포를 점검하고 있었다.
화포 생산에서 매우 중시되는 것이 포신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현대위아 특수생산팀 최창열 팀장은 “모든 쇠는 길이가 길어질수록 휜다. (길이가 긴 포신이) 휘지 않도록 하면서 최대한 오랜 기간 균일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작 공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포신의 수명은 1000∼1500발 정도. 그만큼 포탄을 쏴도 포신 자체는 이상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상당히 오랜 기간 가공을 하고, 관리도 엄격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화포를 만들어도 곧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거쳐야 한다. 공장에선 화포를 쏘는 과정을 실제와 가깝게 구현한 시설을 활용해서 점검한다. 가공·열처리·조립·시험을 복합적으로 진행하는, 국내에 흔치 않은 공장인 셈이다.
이날 공장에선 K-9 탑재 155㎜ 화포를 대상으로 시험을 하고 있었다. 화포가 포탄을 쏘려면 주퇴(대포 발사 시 포신만 후퇴시켜 반동을 경감)와 복좌(후퇴한 포신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장치) 기능이 정확히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란색 펜스가 설치된 시험 구조물엔 길이가 10m에 달하는 화포가 고각으로 설치됐다. 구조물에 있는 장치가 화포를 유압으로 잡아당겨 주퇴 상황을 모사했다.
화포에 가해진 힘을 풀자 복좌가 이뤄지면서 화포가 굉음을 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같은 과정이 20여 차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복좌가 이뤄지는 속도에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포의 각도에 따라서 복좌 속도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포탄을 재장전해서 쏘는 시간 및 발사횟수와 직결되므로 해당 기능에 대한 점검은 철저하다.
시험이 무사히 끝나면 화포는 사격이 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분류된다.
박정우 특수생산팀 책임매니저는 “진행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작동을 멈추고 화포를 내려서 부품이나 설비·조립 등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수정이 되면 다시 시험한다”며 “복좌가 잘 이뤄지는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K-9의 급속 자동장전에 대한 시험도 별도로 이뤄진다.
실제 사격에 의한 성능 검증도 중요하다. 시험사격을 할 화포는 특수차량에 실어 충남 태안군의 국가 시험장으로 옮긴다.
여기서 바다를 향해 사격을 하고 창원공장에 복귀해서 분해·검사·도색을 한다. 이후 정부 등의 승인을 거쳐 K-2 전차나 K-9 제작사에 인도한다.
사격을 전후로 일정을 관리하는 것은 현대위아 관계자들에게 상당한 난제다. 사격 구역에 어선이 있거나 해수욕장 개장 기간에는 사격에 제약이 생긴다.
서방 세계에서 표준으로 자리잡은 155㎜포와 76·127㎜ 함포는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사용해 실전에서 성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과 유럽의 화포 제작 기술은 정체되거나 퇴보했다.
반면 현대위아는 후발주자지만 꾸준한 노력을 통해 성능 측면에선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선진국의 127㎜ 함포와 우리가 만든 함포는 소재 등에서 똑같은 수준”이라며 “선진국의 시장 선점과 정치·행정적 문제를 제외하면, 화포의 성능이나 기술은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장 내부를 분주히 오가는 젋은 작업자들을 가리키며 “미국은 베이비 붐 세대 은퇴 후 화포 제작 기술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았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며 “미국보다 훨씬 많이 제작할 수 있고, 생산성도 3배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국방부에서 수차례 찾아왔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공장 한쪽에는 155㎜ 화포 제작에 쓰일 구성품이 쌓여있었다. 포장지에는 K-9 수출 대상국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해외에 팔릴 화포를 만든다는 의미다.
K-9이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 잇따라 수출되면서 자주포에 탑재되는 화포의 생산량도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위아의 올해 화포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50% 늘었다. 현대위아는 내년도 생산량을 올해보다 더 늘릴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같은 추세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미국산 M-777 곡사포 등의 포병 화기는 격렬한 포격전 국면에서 포신 수명이 빠르게 단축되는 문제가 드러났다.
예비 포신이 있다면 창정비를 통해 신속하게 포신을 교체하고 실전에 재투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화포 제작 공장에 보내야 한다. 전력 공백이 불가피한 셈이다. 사전에 예비 포신을 충분히 갖출 필요성이 커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최근 K-9 도입을 결정한 루마니아는 예비 포신도 구매 목록에 추가한 상황이다. 예비 포신 확보 추세가 세계적으로 확산한다면, 현대위아의 화포 생산량 증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구성품 제작에서 무기체계 개발로
화포 제작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확립한 현대위아는 미래를 위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센서와 무장 등을 결합해서 무기를 만드는 체계통합 능력을 확보, 방위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위아가 선택한 영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안티드론(anti drone).
다양한 종류의 드론이 아군의 머리 위로 날아오지 못하게 저지하는 안티드론은 최근 들어 군사 분야 외에도 민간 보안·치안 분야에서도 수요가 증가하고 잇다.
현대위아가 만든 것은 기동형 안티드론시스템(ADS)이다. 한국군에서 널리 쓰이는 소형전술차량에 센서와 무장을 탑재한 기동형 ADS는 드론 탐지, 식별, 추적 및 무력화를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위아는 드론의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드론 공격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판단, 지난 2019년 개발에 착수했다.
ADS는 지난해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등에 전시된 바 있다.
기동형 ADS는 10㎞ 거리에서 드론을 탐지하는 레이더, AI 알고리즘을 통해 탐지된 드론을 3㎞ 거리에서 식별·추적하는 광학·적외선(EO/IR) 카메라, 식별된 드론을 공격하는 전파방해장치와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복합 드론방어체계다. 차량 내부에는 모니터 4개를 갖춘 통합관제시스템이 있다. 드론 탐지·추적·식별·무력화에 대한 종합적 관제가 가능하다. 무장을 제외한 장비들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더 높은 사양으로 교체가 가능하며, 탑재 플랫폼도 바꿀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군은 상대방의 전자전 시도를 무력화하는 장비를 드론에 탑재하고 있다. 이는 안티드론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전파방해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현대위아는 이같은 상황에 대응해 40㎜ 공중확산탄 48발을 쓰는 K-4 유탄기관총 장착 RCWS를 추가했다. 전자전 상황 속에서도 드론을 확실하게 격추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춘 셈이다.
관련 연구를 맡은 서용주 책임연구원은 “1m 내외 크기의 드론을 일반 탄으로 맞추는 것은 힘들다. 명중률을 높이려면 강력한 화력을 지닌 공중확산탄을 도입한 이유”라며 “군집 드론 대응능력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동형 ADS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부터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특히 단일 드론 외에도 군집 드론의 공격을 저지하는 소요도 있다.
ADS의 구성품인 레이더나 카메라 등에 대한 수출 여부를 문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기동형 ADS) 시연 등의 요청이 많고, 군대 외에 원자력발전소나 국가 산업단지 등 국가 기반 시설에 대한 드론 위협도 크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서도 관심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원=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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