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지어도 ‘산 넘어 산’… 곳곳서 송전선 소송, 전기 못 보내
전국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가져오는 요충지인 하남시에 증설하기로 했던 ‘동서울변전소’ 문제가 결국 분쟁으로 가게 됐다. 한국전력은 12일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증설 불허 처분에 대해 최근 경기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 전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전은 약 7000억원을 들여 2026년 6월까지 이 변전소를 증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자파가 건강에 안 좋다”는 등 주민 반대가 이어지자 하남시는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최종 불허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한전이 결국 행정심판을 제기한 것이다. 한전은 “행정심판 결과를 지켜보고 행정소송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 변전소가 증설되지 않으면, 수도권으로의 안정적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동해안 지역 등에 있는 대규모 발전소도 제대로 가동할 수 없다”고 했다. 행정소송을 할 경우 길게는 3년까지도 걸려, 증설 허가가 나더라도 공사 지연이 불가피하다.
하남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송배전망 건설이 길게는 10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공사 규모가 커 건설 자체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건설 전후로 주민 반대, 지자체와의 소송전 등이 벌어지면서 건설이 중단되기 일쑤다. 물론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같이 송배전망 건설을 둘러싼 갈등과 건설 지연은 계속 있어왔지만, 앞으로 경기 용인에 대규모 첨단 산업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등 수도권에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신규 대형 원전 3기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전력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정작 만들어진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지 못해 새 발전소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요 송배전망 건설, 최대 150개월 지연
12일 한전에 따르면 송배전망 건설은 길게는 10년 넘게 늦어지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등 서해안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이송하는 ‘345㎸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애초 목표보다 150개월 늦어진 올 12월 준공 예정이다. 동해안의 원전과 화력발전소와 수도권을 잇는 ‘500kV HVDC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2019년 12월 준공 목표로 추진됐지만,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66개월 늦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여러 송전선로의 준공 시점이 또 미뤄져 앞으로 더 지연될 가능성도 크다.
이유는 송배전선이 ‘혐오 시설’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파가 나와 암에 걸린다”는 괴담이나 “고압선이 미관을 해친다” 등의 이유로 지역 주민들 반대가 커지고, 환경 단체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도 전력망 건설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각종 인허가 절차가 지연되고 있고, 심지어는 건설이 불허되며 수년이 소요되는 소송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한전은 지난 10년 동안 전력망 건설과 관련해 9건(지역 본부 제외)의 행정심판 제기 등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 한전 관계자는 “주민 건강권을 이유로 들며 변전소 허가를 내줬던 지자체가 정작 변전소와 연계된 변환소에 대해서는 불허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도로 점용을 금지하기도 한다”고 했다.
소송전까지 벌어지지 않더라도 송배전망과 관련해 전국에선 크고 작은 분쟁이 빈번하다. 특히 전력 수요가 많아 송전 선로를 통해 전력을 반드시 공급받아야 하는 수도권에서도 반대 시위가 잦다. 12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변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어린이집 30m 앞 초고압 변전소가 웬 말이냐’ ‘주민 안전 위협하는 초고압 변전소 계획 즉각 철회하라’같은 내용이다. 경기 시흥에서도 인천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송전 선로 건설을 두고 수년째 주민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곳 인근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발전소 지어놓고 놀릴 판
전력망 건설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발전소를 애써 지어놓고도 놀릴 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이 많은 동해안,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많은 전남에서 전력이 생산돼도 이를 전기 수요가 많거나 산업 단지 밀집 지역인 서울이나 경기로 끌어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전기화’ 시대에서는 발전뿐만 아니라 송배전망도 풀어야 할 큰 숙제”라며 “국가 경쟁력을 위해선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망 문제’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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