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메달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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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날과 달리 방송매체도 많이 생겼고 프로그램도 다양해 방송을 진행하는 종사자들 또한 많기도 하고 다양하다.
한국 선수들이 이기거나 금메달을 땄을 경우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고 애국심을 한층 가열하는 힘을 발휘한다.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공기소총 결선에서 고등학생인 16살 반효진 선수가 땄을 때 아나운서들이 보여 준 중계방송은 가장 두드러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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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날과 달리 방송매체도 많이 생겼고 프로그램도 다양해 방송을 진행하는 종사자들 또한 많기도 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모두가 아나운서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스포츠 중계방송은 누가 넘보지 못할 아나운서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지고 자랑스러운 고유 업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아나운서들의 눈부신 활약은 무더운 여름밤 열대야를 씻어주고 국민을 하나로 맺어주는 가교 역할을 독특히 했다. 필자도 아나운서 시절 88 서울올림픽 때 라디오로 탁구 중계방송을 했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축구 중계방송을 했다. 한국 선수들이 이기거나 금메달을 땄을 경우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고 애국심을 한층 가열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는 현장에서 각본 없이 스포츠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언어 예술이 아닌가 한다.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공기소총 결선에서 고등학생인 16살 반효진 선수가 땄을 때 아나운서들이 보여 준 중계방송은 가장 두드러지지 않았나 싶다. 어느 아나운서는 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100번째 주인공이어서 미리 모든 자료를 수집해 상세히 전해줌과 동시에 역대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이름을 종목별로 활동사진처럼 펼쳤다. 필자는 1976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양정모 선수가 우리나라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한 중계방송이 떠올랐다.
48년 전인 1976년 8월 1일 양 선수가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했을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가 어려웠으며 스포츠도 국제 경기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올림픽 금메달 역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 와중에 양 선수가 딴 금메달은 국민의 마음을 씻어주는 청량제가 됐다.
양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자 오픈카를 타고 부산역에서 출발, 서면광장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당시 필자는 카퍼레이드 실황을 중계하는 아나운서로 선정됐다. 라디오 중계방송이었던 만큼 말이 막히거나 현장 묘사가 서툴러 박진감과 생동감이 결여되면 시말서를 써야 했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한 치의 착오나 실수가 없도록 사전 답사를 철저히 했고 거리마다 특색 있는 점들을 모두 메모를 한 뒤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아나운서로 처음 한 카퍼레이드 중계방송은 순조롭게 마쳤다. 당시 부산 거리마다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 표정은 무척 밝고 축제 분위기였으며 지금은 없어진 서면 부산탑 아래에서 유치원생과 초중고 학생들이 단체로 양 선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하던 모습은 아직 눈에 선하다.
또 하형주 선수가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하 선수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전국에 방송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것이 인연이 돼 하 선수와는 지금도 호형호제하며 지낸다.
파리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을 때 아나운서들이 외치는 소리는 삶의 활력을 높여주는 언어의 금빛 같았고 아침에 솟아오르는 햇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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