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지방소멸시대’를 돌이킬 수는 없는가
과감한 지방분권과 자치가 해법…지역자본 기반한 선도산업 육성
유일선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지난 70여년 동안 한국의 변화는 역동적이었다. GDP 규모는 세계 10위권 내외이고,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며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넘는 세계 7개 국가 중 하나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화를 달성해 세계 2차대전 이후 신생독립국 가운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선진국이 되었다. 20세기 초 일제 식민지 침탈, 세계 2차대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민족분단과 국토분단,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던 한국이 거둔 성과는 이제 개발도상국의 선진국을 위한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성과 이면의 그늘도 짙다. 저출산과 인구감소, 경제성장률 장기 하락, 지방소멸 위기, 계층 간 소득분배 악화, 재벌과 중소기업 양극화, 인재교육 실패, 환경오염 심화 등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 중 지방소멸 위기는 다른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할 만큼 심각하다.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의 면적비율은 전체 국토의 11.8%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는 2021년 감소 추세(-0.2%)로 전환되었지만 오히려 수도권은 증가해 2023년 현재 비중이 50.7%에 이른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격차는 2010년 1.2%에서 2022년 7.0%로 확대됐다. 수도권 사업체수는 54.4%(2022년), 고용자수 300명 이상인 대기업은 60.5%(2022), 취업자수는 51.0%(2023), 100대 기업의 본사 비율은 86%(2022)에 이른다. 특히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정보통신업(ICT) 사업체수는 72.6%(2023), 취업자수는 74.4%, 300인 이상 ICT 대기업수는 무려 92.7%이다. 또한 대학 수는 35.1%(2023), 대학생 수는 40.9%이다.
이 때문에 20, 30대 청년은 대학진학 일자리 결혼 등의 이유로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것은 지방의 저출산과 초고령화를 초래해 지역소멸로 치닫고 있다. 한국고용연구원 ‘지방소멸 2024’(이상호)에 의하면 부산시의 20~39세 (가임)여성인구 비율은 11.3%에 불과한데 65세 이상 인구가 23%로, 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또 부산의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인구수/65세 인구수)가 0.490으로 광역시 최초로 소멸위험지역(0.5이하)으로 분류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후에도 기초자치단체는 물론이고 도 단위 자치단체로까지 확산되었던 소멸위험지역이 이제 비수도권 광역시까지 확산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될까?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전략과 연계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한국은 1인당 GNP가 100달러도 되지 않는 최빈국이었다. 빈곤은 저저축 저자본 저투자 저생산성을 유발한다. 이런 저생산성은 저구매력 저투자로 이어져 국내시장의 협소화로 귀결되면서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부족한 자본을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 등 성장거점(중심지역)에 전후방연관효과가 큰 선도산업에 집중투자하면 규모의 경제와 집적경제 효과가 나타나 대량생산 체제가 갖추어진다. 중심지역은 노동수요 증가로 실질임금이 상승해 주변지역과 소득격차가 확대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중심지역에서 자본축적이 이루어져 저임금의 주변지역으로 투자가 확대되어 초기의 불균형이 해소되면서 중심·주변지역의 균형발전(낙수효과)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성장전략에서 주요 요인은 투자자본과 시장확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허시먼(A. Hirshman)의 불균형성장전략에 따라 한국 정부는 주로 해외차관을 통해 투자자본을 확보하고, 수도권과 대도시에 재벌기업 중심으로 집중투자했다. 이때 증가된 생산량은 무역을 통해 협소한 국내시장 장애를 극복하면서 한국경제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주변지역은 중심지역의 선도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중소도시나 농촌의 자본과 노동이 지방 대도시와 수도권으로, 또한 지방 대도시에서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역류효과가 낙수효과를 압도했다. 이에 따라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화와 함께 소득격차가 심화되면서 광역시마저 소멸위기를 겪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제 지방정부가 해당지역 주권을 가지고 중앙정부와 대등·협력 관계를 정립해 ‘정상적인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분권을 명문화해야 한다. 이것의 첫 출발은 현재 지방세 비중과 지방자치 업무비율이 20%인 ‘2할 자치’를 ‘4할 자치’로 높여 중앙정부로부터 재정권과 업무를 이양받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각 지방정부는 이러한 ‘지역자본’을 바탕으로 지역특성에 맞는 선도산업을 육성해 전체적으로 지역균형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각 지역주민은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주권자로서 지역주권 의식을 갖고 지방소멸을 극복해야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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