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무작정 ‘공급’하라고? [슬기로운 기자생활]

손지민 기자 2024. 9. 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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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목표'.

정부의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저출생 대책은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부담을 더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물론,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의 출산·육아 환경을 개선하는 단기적인 정책도 중요하다.

아이들을 정서적, 지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저출생 대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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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손지민 | 인구·복지팀 기자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목표’.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 보도자료를 넘기다 이 대목에서 숨이 턱 막혔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일이 ‘매출 얼마’, ‘수출 얼마’와 같은 목표처럼 표현되는 것이 기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저출생 대책은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부담을 더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육아휴직 급여를 얼마 더 주고,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보육 시스템을 강조하는 식이다.

정부뿐만이 아니다. 온 나라가 저출생이라는 패닉에 빠져 온갖 지방자치단체, 대학, 연구원, 협회 등에서 저출생 극복을 위한 각종 세미나·토론회 등을 열고 있다. 내용은 정부 정책과 대동소이하다. 물론,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의 출산·육아 환경을 개선하는 단기적인 정책도 중요하다. 출생아 수를 늘리는 일도 소홀해선 안 되는 과제다. 그러나 ‘어떻게든 더 낳게 해야 한다’는 온 나라의 조급함을 보고 있으면,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낳은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겠단 것일까?

한국 사회는 ‘이미 태어난 아이’에겐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적다. 아이가 자라면서 행복한지, 잘못된 관점이나 인성을 배우진 않는지 사회가 고민하지 않는단 의미다. 한명의 새로운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만큼, 이미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10대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018년 5.8명에서 2022년 7.2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0.01이 올랐네, 떨어졌네 하는 문제보다 소홀하게 다뤄진다. 세상과 단절한 채 방 안에서 은둔하는 10·20대가 늘어나고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도 많아지고 있지만 마음건강 사업을 확대하는 정도의 대책만 나오고 있다. 아이들이 한쪽에선 딥페이크 범죄의 피해자가, 한쪽에선 가해자가 되고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도박과 마약에 중독된다는 기사가 쏟아져도 “요즘 애들 무섭다”며 혀만 찰 뿐이다. 태어난 아이들이 불행해지는 문제는, 앞으로 태어나야 할 아이를 늘리는 문제 앞에서 주목받기 어려웠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져서’, ‘세금과 연금 보험료를 낼 사람이 줄어들어서’, ‘아이를 키우는 자체가 행복이니까’. 여기저기서 아이를 낳고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말한다. 저출생을 문제로 여기는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낳기만 하면 되고 누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아이를 키울 것인지 고민이 없다면 그 다양한 이유 중 어떤 것도 달성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부모를 아이를 생산하는 ‘공급자’로, 아이는 사회의 ‘수요’에 의해 늘렸다 줄이는 숫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으론 어떤 위기도 해결할 수 없다.

“있는 애들부터 지켜라. 저출산이고 뭐고.” 몇달 전 10대 청소년 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래 놓고 애 낳으라니… 저출산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딥페이크 범죄로 학교들이 뒤집어졌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바른 인성으로 자라는 것이 출산율을 늘리는 문제만큼 중요하단 생각을 하는 국민은 적지 않다. 아이들을 정서적, 지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저출생 대책’이 아닐까. 저출생은 더 이상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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