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앙과 죽음의 행렬 [강수돌 칼럼]

한겨레 2024. 9. 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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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폭염과 노동자의 죽음에 뭘 해야 하나? 첫째, 다른 산재처럼 ‘기후 산재’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다. 폭염 대처를 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도 노동자 ‘생존권’ 차원에서 처벌받아 마땅하다. 둘째, 노동부의 강화된 역할이 절실하다. 기후재앙은 결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엄정한 감독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한다.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또, 노동자가 죽었다. 9월9일 늦은 밤, 한화오션(거제사업장)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41)가 32m 추락해 사망했다. 불과 3일 전, 노동부가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대표이사 등 3명에 대해 검찰에 ‘기소 의견’을 냈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다. 아리셀은 6월24일 화재로 31명 사상자를 냈다. 자본의 사전엔 ‘타산지석’이 없는 모양이다.

한화오션은 이미 연초 1월12일 가스 폭발 사망, 1월24일 잠수 작업 중 사망에 이어, 9월의 추락 사망까지 기록했는데, 그 전인 8월19일, 온열질환 의심(허혈성 심장질환) 사망도 있었다.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 온열질환(열사병) 사망자가 쌓이는데, 기존 산재 사망과 다른 양상이다.

그 온열질환 사망자는 생전 심장박동수가 분당 109회 정도로 추정됐다. 노동시간 내내 심장이 ‘달리기’를 한 셈이다. 최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에 따르면, “고인의 일은 적정 노동시간이 6시간으로 중등도 이상의 작업이라, 고열 환경(체감온도 33도)에선 아예 쉬거나 시간당 15분가량 휴식을 취해야 한다”며 “사고 당일 고인은 높은 노동 강도와 작업복으로 인해 체감온도 이상의 열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5개월간(4~8월) 한화오션의 온열질환자는 31명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비슷한 죽음이 또 있었다.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8월13일,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삼성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던 양준혁(27)씨다. 안타깝게도 에어컨 설치업체에 채용된 지 이틀 만이었다. 당시 그는 작업 중 갑자기 구토를 하고 어지럽다며 주위를 빙빙 도는 등 열사병 증세를 보이다 화단에 쓰러졌다. 현장 관리자는 이에 보호 조치나 119 신고도 않은 채, 사진을 찍어 양씨 어머니에게 ‘정신질환 여부’를 물었다. 양씨는 뒤늦게 병원으로 갔으나 90분 만에 사망했다. 당시 고인 체온은 40도 이상. 그늘진 휴게 공간 부재, 탈수 방지용 음료 제공 결여, 보랭 장비 요구 거절, 채용 전 안전교육 미비 등이 문제로 드러났다.

그전에도 또 다른 죽음이 있었다. 7월30일 부산에서 상가 건설 작업을 하던 60대 건설노동자가 쓰러졌다. 병원으로 바로 갔지만 끝내 숨졌다. 사망 원인은 열사병. 폭염 특보가 열흘 넘게 지속되던 중이었다. 고인 체온은 40도에 육박했다. 현장 시공사는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징역형의 집행유예)을 받은 경력자였다. 최근 3년간 사망사고가 3차례나 있었지만, ‘우이독경’이었던 셈이다.

연이은 폭염과 노동자의 죽음에 뭘 해야 하나? 첫째, 다른 산재처럼 ‘기후 산재’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다. 폭염 대처를 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도 노동자 ‘생존권’ 차원에서 처벌받아 마땅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용자는 폭염에 대비해 휴식(작업 중지), 그늘진 장소, 소금·음료수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일례로, 대전지검은 7월1일 열사병 사망사고와 관련해 원청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둘째, 노동부의 강화된 역할이 절실하다. 특히 19세기 영국의 근로감독관들처럼 노동자 입장에서 느끼고 행위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져야 한다. 일례로, 마르크스의 1867년 ‘자본’은 “(영국의) 공장 감독관들(예, 레너드 호너)은 공장주들이 (아동의) 부모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심지어 (아이들에게 10시간 이상 노동을 강요하는) 청원까지 위조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등 “영국 노동자계급을 위해 불멸의 공적을 세웠다”고 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도 “노동부는 물·그늘·휴식 등 온열질환 예방 3대 기본수칙 가이드라인 배포만 반복하고, 장관은 전시성 행사로 가끔 현장만 나가는” 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기후재난에 맞서 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안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기후재앙은 결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엄정한 감독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한다.

셋째, 좀 더 깊은 논의도 필요한데, 그것은 지금의 폭염이나 기후위기가 결코 일시적이거나 법·제도적 대응으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이나 기후재앙 문제는 인간적 필요나 삶의 질을 도외시한 채 오직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를 통해 이윤을 얻는 자본주의 원리에 토대한다. ‘선택의 자유’ 차원에서 근본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서울 강남의 ‘907 기후정의행진’(전국에서 3만명 운집)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은,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란 구호 역시 자본주의 체제야말로 오늘날 인류에게 근원적인 위협임을 재확인했다.

그에 앞서 헌법재판소 역시 청소년기후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4건의 기후소송에 대해 일부 승소 결정(8월29일)했다. 정부가 2030년 이후의 탄소중립 대책을 세우지 않아 미래 세대의 기본권(환경권, 건강권, 행복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이 일부 위헌이라 보완해야 한다. 2013년 네덜란드의 ‘위르헨다(Urgenda) 판결’이나 2021년 독일 연방헌재 판결 역시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책임을 부각했다.

오는 10월부터 개편되는 3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또한 이번 헌재 결정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 위원회도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 시각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 당시 77명이던 위원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50명으로 줄었다. 청년, 노동, 시민 등 이해당사자가 대거 배제된 탓이다. 이런 상태에서 탄소중립 내지 정의로운 전환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데 우리가 설사 “자본주의가 문제”라 인식해도 어떻게 바꿀지는 쉽지 않다. 길만 나서면 보이는 돈벌이 기계들, 기업들, 자금들, 건물들, 상품들, 정치가, 행정가, 언론계, 학계, 그리고 일반 시민 대다수가 자본주의를 당연시하고 너도나도 ‘돈, 돈, 돈’ 하는 세상이다. 여기서 “체제를 바꾸자!”는 구호는 화끈하지만 막막하다. 하지만 자본 역시 ‘관계’다. 우리가 사람을, 자연을, 사물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개와 고양이를 하찮은 동물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볼 때 친구가 되듯, 그런 눈으로 세상을 대하면 삶의 희망이 샘솟는다. ‘관계를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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