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와 후류 [전범선의 풀무질]

한겨레 2024. 9. 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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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와 3산 중 최고봉인 갓산. 데와 3산 누리집 갈무리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친구 영래를 따라 일본에 왔다. 영래 짝꿍 카에데가 우리를 꼭 데려가고 싶어 한 곳이 있었다. 사찰에 머물면서 등산을 하는데 밥도 채식으로 준다고 했다. 나는 일종의 일본식 템플 스테이라고 여기고 쉬러 왔다. 그런데 와서 보니 제법 강행군이다. 내일부터 사흘 동안 데와 3산이라고 불리는 하구로산, 갓산, 유도노산을 등반한다. 각각 현세, 전세, 내세를 상징하는데, 최고봉인 갓산은 해발 2천미터에 달한다. 폭포 아래서 명상하는 훈련도 있다. 현재, 과거, 미래를 오가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목적이다.

신도도 아니고 불교도 아닌 수험도(修驗道·슈겐도) 수행 방식이다. 수험도는 7세기 엔노 오즈누가 창시한 일본 고유의 혼합 종교다. 말 그대로 닦고 겪는 도다. 산신을 모시는 고대 일본의 애니미즘, 샤머니즘이 한반도를 통해 유입된 불교, 특히 밀교와 결합하여 탄생했다. 신도이면서 불교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수험도는 신도와 불교를 합하는 신불습합의 전통을 천년 넘게 유지했다. 그러나 메이지 천황이 국가신도를 강화하고자 신불분리령을 내렸고 1872년 수험도를 아예 철폐했다. 지금은 종교보다는 자기계발 및 건강수련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카에데에게 수험도가 한국의 풍류(風流)도와 비슷하다고 했다. 산악 수행을 중시하는 신선 사상이 핵심인 점, 토착 신앙에 외래 불교, 도교 등을 융합한 점이 같다. 수험도인은 수험자(修驗者·슈겐자) 또는 산에 엎드려 있다고 해서 산복(山伏·야마부시)이라고 부른다. 화랑(花郞), 조의선인(早衣仙人) 등으로 불렸던 한반도의 풍류도인과 일본열도의 수험도인 간의 교류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고조선과 야요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의 뿌리가 있을 터이다.

카에데는 일본에도 풍류가 있다고 했다. 후류(風流)라고 발음한다. 화려하고 이목을 끄는 것, 세련되고 우아한 취향 또는 그러한 작품이 후류다. 한국의 풍류 개념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풍류는 음악과 동의어라면 후류는 춤으로 인식된다. 가부키(歌舞伎), 노(能)로 대표되는 일본 전통 연희의 본류가 후류오도리(風流踊·풍류용), 즉 풍류 춤이다. 2022년 일본 전통춤 41개가 후류오도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같은 해 봉산탈춤,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한국 탈춤 18개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의 후류오도리와 한국의 풍류놀이는 조상을 숭배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재난으로부터 공동체의 안녕을 염원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일본의 전통 축제를 마쓰리(祭)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신령을 모시는 제사(祭祀)다. 한국의 굿과 같다. 마쓰리와 굿은 후류·풍류로 불리는 한·일 공통의 사유 체계에 기반한다. 생사와 선악을 둘로 나누지 않고, 만물이 신령스럽다는 감각, 하나 됨의 감흥을 춤과 노래로 깨우친다. 탈은 계급, 성별, 나아가 인간 종(種)의 경계를 넘어서 타자화된 존재를 모시기 위한 도구였다. 하늘땅의 수많은 가미(神), 신을 모시고 다 같이 모여서 춤과 노래로 놀고 푸는 것이 후류이자 풍류다.

후류는 춤, 풍류는 음악이라는 구분이 무색해진다. 가무를 어찌 따로 할까? 후류는 일본, 풍류는 한국이라는 구분도 옹색하다. 어차피 다 중국의 펑류(風流)에서 온 것 아닌가? 일본 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읽었다. 한국사에서 풍류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다.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는 명나라 구우(瞿佑)가 쓴 ‘전등신화’의 형식을 모방했으나 내용은 독창적이다. 그런데 ‘금오신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읽히게 된 경위가 신기하다.

일찍이 조선에서는 인기가 없어 사라졌으나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차례 판각되었다. 그중 1884년 판본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1927년 조선에 소개했다. 220여년간 오쓰카 가문에서 내려오던 걸 재간한 것이다. 비행기가 하네다에 착륙할 때 깨달았다. 일본의 김시습 사랑 덕분에 내가 ‘금오신화’를 읽는구나! 매월당의 풍류야말로 원조 한류였던 것이다.

한·일 합작의 마음으로 내일 입산을 준비한다. 영래와 카에데를 따라 데와 3산의 풍류를 수험하다 보면 신명 나는 춤과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을런가? 그 둘의 사랑만큼 신령스러운 시가 나오려나? 차 한잔 마시고 글 한장 썼을 뿐인데 벌써 신(神)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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