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저평가라 하기도 부끄러워"
기관투자자, 주주권리보장 지적
"밸류업 근본적 문제해결 못해"
"한국 증시는 지금 마지막 티핑 포인트(임계점)에 와 있다. 앞으로 '경영권'이라는 표현은 시장에서 없어져야 한다. 권리를 가진 유일한 존재는 주주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전무는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에서 이같이 밝혔다. APG는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로, 전 세계 시장에서 80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박 전무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30년간 7배 성장했는데 코스피는 3배 성장했다"며 "한국이 만약 GDP가 성장한 만큼 코스피가 성장했다면 지수가 6000이 넘는다. 같은 기간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대만 등은 GDP와 지수가 비슷한 규모로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시장은 저평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자본시장에서 평가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며 쓴소리를 이어갔다. 특히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현상을 의미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주주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아마르 길 ACGA(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 사무총장은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 출범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계로 보이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주 권리 강화를 위한 입법 진행 상황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대표 사례로 의무공개매수제도 추진을 꼽았다.
ACGA는 아시아의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999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최근 발간한 'CG Watch 2023' 보고서에서는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한국의 종합 평가 점수를 57.1%로 아시아 12개국 중 8위로 평가했다.
박철우 신한금융지주 IR 파트장은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세제 혜택의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를 비롯해 거래소의 노력만으로 진정성 있는 공시가 이뤄질지, 정책이 지속가능할지 여러 의문을 품고 있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한국증시 선진화를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데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우선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서 지배주주가 주가를 높이기 위한 유인을 만들 수 있도록 정책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며 "또 우리나라는 사전 규제에 비해 사후 규제가 부족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제도적 고민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경북대 교수는 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밸류업의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또 "정부가 상속세 깎아주고, 총수 세금 깎아주는 것으로만 (정책의) 초점이 잘못 맞춰져 있어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국내 대표 기관 투자자인 연금공단도 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이동섭 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국민연금이 참여하는 주주총회 중 200여개가 3월 특정 주에 몰린다면서 "저희가 여러 차례 분산해서 개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기업은 반응이 없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업가치 개선을 경영진의 보상과 연계하고, 역할이 불분명한 사외이사가 적극적으로 밸류업 관련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감독원·국민연금공단·한국거래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토론에는 이복현 금감원장, 김태현 연금공단 이사장, 김기경 거래소 부이사장 등이 자리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기관투자자의 투자가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이행과 관련해 "금감원은 펀드의 독립적인 의결권 행사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위탁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적정성도 면밀하게 점검하겠다"고 설명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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