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캣 레이디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의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는 고양이에 대한 재미있는 찬사가 있다. “고양이에 대한 의례는 외교 의전보다 더 까다롭다”는 것이다. 애묘인 하인라인은 인간이 고양이를 세심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대를 풍미한 작가나 예술가들 중 고양이를 각별히 사랑한 ‘캣 맨’은 이 밖에도 많다.
그러나 고양이 애호가가 많은 서양에서도 유독 ‘캣 레이디’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은 보통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만 키우는 중년 독신 여성을 비하할 때 쓴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을 좋아한다면 종종 등장하는 ‘크레이지 캣 레이디’를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도 캣 레이디가 소환됐다. “자녀도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비참한 삶을 사는 여성들(cat ladies)이 나라의 미래도 비참하게 만든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가 과거 인터뷰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격했던 말이 도화선이 됐다. 출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리스를 비아냥거린 이 발언이 미국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캣 레이디 공격은 여성 유권자를 결집시켰고, 여기에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도 가세했다. 그는 10일 해리스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토론 직후 인스타그램에서 이번 대선에 민주당 후보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게시물에 자신의 고양이 사진을 함께 올리며 “자식 없는 캣 레이디”라고 적었다.
생식의 자유는 미 대선의 핵심 쟁점인데, 해리스가 이 분노를 결집해 여성 스스로 임신·출산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보다 캣 레이디 공격이 고약한 이유는 바탕에 여성 혐오가 깔려 있어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캣 맨은 멋지지만, 자녀를 낳지 않고 고양이를 돌보는 여성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차별적으로 보는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도 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미래가 암울하다. 그래도 희망을 품는 것은 이런 차별도 언젠가는 지나간 역사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나저나 스위프트가 지지하는 혼혈 여성 해리스는 ‘고양이 바람’을 타고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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