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예고편? 의학회 "지방 전공의 정원 늘렸지만 낙수효과 없었다"
정부가 지방 전공의 정원 비율을 높였지만 정원 재부분에 따른 전공의 낙수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려는 주요 이유는 필수의료 분야 부족한 의사 수를 채우고, 지방의료의 공백을 메꾸기 위함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전국 수도권과 비수도권(지방)의 전공의 정원은 진료과에 따라 '7대 3' 또는 '6대 4'까지 격차를 보였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지방 수련병원의 전공의 정원 비율을 늘려 일단 '5.5대 4.5'로, 궁극적으로는 '5대 5'까지 맞추겠다는 전략을 세웠는데, 이에 대해 대한의학회가 반발했다. "올해 상반기 각 과에서 5.5대 4.5로 정원을 억지로 맞췄지만 정원 재배분에 따른 전공의 낙수효과는 없었다"며 "여기서 다시 5대 5로 조정하면 인기과에 더 쏠리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12일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정원 비율을 5대 5로 정했지만, 대한의학회가 강하게 반발한 끝에 일단 5.5대 4.5로 조율돼 올해 상반기 전공의 모집 때 반영됐다. 하지만 지방의 기피·필수의료과(내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의 경우 오히려 지원율이 지난해 55%(정원 대비)에서 올해 50%로 줄었고, 지방 인기과는 135%에서 134%로 높은 인기를 유지했다.
대한의학회 소속 윤신원(중앙대병원) 대한소아청소년과 수련교육이사는 "정부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을 6대 5에서 5.5대 4.5로 '0.5'만 조정했는데도 낙수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진 것"이라며 "여기서 다시 5대 5로 맞춘다면 이 차이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마치 내년 의대증원 이후 낙수효과가 없을 것이란 '예고편'과 같다는 해석도 대한의학회 내부에서 나왔다.
대한의학회는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지방 전공의 정원 비율 조정에 대한 각 전문과목학회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그랬더니 "올해 상반기 지방 전공의 배정 비율을 늘린 후 수도권 근무 전공의의 업무는 가중됐고, 지방 '비인기과' 근무 전공의의 수련환경은 더 열악해져 결국 수련환경의 편차가 벌어졌다"는 학회들의 공통된 의견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인기과'인 성형외과의 2022년 수술 건수 현황을 보면 수도권이 67.5%, 비수도권이 32.5%로 지역별 차이가 컸다. 또 성형외과 환자 수도 수도권이 3만4125명, 비수도권이 1만6446명으로 2배 이상 차이 났다.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이런 상황에서 5대 5는 성립될 수 없는 구조"라는 입장을 냈다.
'기피과'로 꼽히는 산부인과의 경우 올해 상반기 지방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을 늘렸지만 지원자는 오히려 그 전년보다 줄었다. 올해 상반기 비수도권에서 확보한 산부인과 전공의는 28명으로, 지난해(31명)보다 3명이 적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비수도권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을 늘렸지만 타 인기과의 정원도 덩달아 늘었고, 그 여파로 지방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가 인기과로 이탈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심지어 흉부외과의 경우, 수련 자격 기준에 미달하는 데도 정부가 전공의 정원을 새롭게 배정한 곳도 있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학회 규정상 '심장수술과 폐 수술을 모두 시행하는 병원에만 전공의를 배정'할 수 있다. 대한의학회 측은 "하지만 정부는 심장 수술을 집도할 수 없는 화순전남대병원에 흉부외과 전공의를 새롭게 추가했다"며 "지방 국립대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배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흉부외과학회는 "심장·폐 등 중증 수술의 50% 이상이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고, 중증도가 높을수록 지방환자가 수도권으로 전원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수술 건수가 적은 비수도권 병원에 아무리 전공의가 상주해있다 하더라도 적절한 수련이 이뤄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윤신원 교수는 "정부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맞추기 위해 5대 5로 정할 게 아니라, 대한의학회와 논의해 전체 정원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탄력 정원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도 전공의 배정 비율을 지금보다 더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대통령실 직속 '의대 교육 지원 TF'에서 지역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지역 수련병원의 전공의 정원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며 "2025학년도 전공의 정원 배정 시 비수도권 배정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지방에서 의대를 졸업하더라도 수도권으로 이동해 수련받는 경우가 많아 전공의가 지역에 정착하는 비율이 낮다"며 "내년도 전공의 정원을 배정할 때 비수도권 배정 비율을 더 높이겠다"고 언급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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