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밸류업 풍선, 바람 넣는데 구멍커져

박용범 기자(life@mk.co.kr) 2024. 9. 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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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었다.

갑작스레 텔레그램의 투자 단톡방에 초대됐다.

단톡방에서 '바람잡이'로 보이는 사람이 늑대의 투자 권유에 맞장구를 치는 등 전형적인 리딩방 사기 수법이 동원됐다.

리딩방에서 외국인 교수 등을 사칭해 VIP 전용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고수익을 보장하며 투자를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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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교묘해지는 불공정거래
당국 감독권 없는 사각지대인
나스닥 종목까지 시세조종
증시 밸류업 성공하려면
작전세력 뿌리부터 뽑아야

며칠 전 일이었다. 갑작스레 텔레그램의 투자 단톡방에 초대됐다.

국내 굴지의 사모펀드 매니저라며 투자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이 사모펀드에서 일하는 사람을 다수 알고 있다. 그런데 단톡방에 초대한 사람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아니었다. 깜빡하면 속을 뻔했다. 이 단톡방에서 해당 사모펀드의 대표 실명까지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사모펀드를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더 당할 뻔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은 이런 설명에 쉽게 넘어갈 만큼 수법이 정교했다.

몇몇 순진한 양들을 꼬시기 위한 늑대의 작업이 이어졌다. 단톡방에서 '바람잡이'로 보이는 사람이 늑대의 투자 권유에 맞장구를 치는 등 전형적인 리딩방 사기 수법이 동원됐다. 해당 사모펀드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관계자는 "저희 사모펀드를 사칭하는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잠시 후에 보니 이 단톡방은 깨끗이 사라졌다. 텔레그램 특성상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사이에 누군가는 알토란 같은 소중한 돈을 날렸을 것이다.

다른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같은 유형으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얼마나 사기를 치고 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로펌에서는 이 사건 피해자들을 구제해주겠다는 광고까지 하고 있을 정도였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의 사기는 애교에 가깝다.

사기 수법은 갈수록 대범해진다. 특히 시세조종 분야가 그렇다.

지난 5월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연휴 중에 발생한 사기 사건은 리딩방의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연휴 중이었던 5월 3일(현지시간) 나스닥 시장에서 싱가포르 소재 원격의료 회사 모바일헬스네트워크솔루션(MNDR)은 주가가 84.8% 폭락했다. 이 종목은 4월 19일 29.5달러를 기록해 단기간에 공모가 대비 7배 이상 올랐다. 그러다가 5월 3일 별다른 악재가 없었는데 1시간 만에 주가가 23달러에서 8달러까지 폭락했다. 이후 최근에는 0.7달러대로 떨어졌다.

이 종목에 물린 투자자는 상당수가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리딩방에서 외국인 교수 등을 사칭해 VIP 전용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고수익을 보장하며 투자를 유도했다. 유통 물량이 적은 신규 상장주 특성을 악용해 높은 가격 매수 주문을 유도하고, 작전 세력은 뒤통수를 치고 빠져나간 것이다.

연휴 중에는 뉴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점까지 노린 세력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국내 상장 종목과 달리 금융당국의 사각지대인 나스닥 상장 종목으로 시세조종에 나선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은 국내 주식이 대상이고, 국내 회사가 해외 상장된 경우는 포함된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된 경우 금융감독원이 조사할 권한도 없고 처벌하기 어렵다. 금감원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조사 협조를 구하는 방법 등이 있지만 구제 가능성이 낮다며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딩방 피해를 보상해주겠다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다시 가상화폐 투자 사기를 쳐 80여 명에게서 54억원을 뜯어낸 수십 명의 조직이 적발된 적도 있다. 갈수록 피해액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분기당 2000억원 안팎의 리딩방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1건당 평균 피해액은 1억원에 육박한다.

밸류업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데 한쪽에선 이런 탈법적 행위들이 횡행하고 있다. 풍선에 바람을 넣어보려고 하는데, 이 풍선에는 이런 구멍들이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구멍은 점점 커지고 있다. 동전 앞면을 반짝반짝하게 닦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뒷면의 곰팡이를 외면하면 무위에 그친다.

[박용범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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