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깰 때까지 산에 숨어있던 뺑소니범…끝내 ‘음주운전’은 처벌 못해

2차례에 걸쳐 중앙선 침범 사고 내고 도주…검거 후 음주수치는 ‘0%’
법원, 도주치상 등 혐의로 징역 5년 선고…“피해자들 용서 못받아”

(시사저널=박선우 디지털팀 기자)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여경은 부장판사)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1)씨에게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 7월10일 A씨가 한라산 성판악 탐방안내소 인근 도로에서 낸 차량 연쇄 추돌 사고 현장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제주도에서 무면허 운전을 하다 연쇄 차량 추돌사고를 낸 뒤 도주한 40대 뺑소니범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자백 등 음주운전이 강하게 의심됐던 상황이지만, 용의자의 도주로 결국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던 사건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여경은 부장판사)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1)씨에게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음주 무면허 사고는 엄벌이 불가피하며, 피고인(A씨)은 교통사고를 잇따라 낸 뒤 도주해 음주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한라산에 있다가 나타나 붙잡혔다"면서 "피해자가 여러 명이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지탄했다.

A씨는 지난 7월10일 오후 6시39분쯤 제주 한라산 성판악 탐방안내소 인근 도로에서 서귀포 방면으로 차량을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승용차 3대를 들이받은 뒤 차를 몰고 도주했다. 이후 A씨는 재차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버스를 들이받고 차를 버린 뒤 인근 숲 속으로 달아났다. A씨가 몰던 차량은 그의 지인의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검거된 건 이튿날인 7월11일 오전 8시20분쯤이다. 사고 현장에서 약 13㎞ 떨어진 제주 양지공원 인근에서 체포된 A씨는 2018년 면허가 취소된 무면허 상태로 확인됐다.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하던 A씨는 경찰의 추궁에 "사고 당일 점심에 식당에서 소주 4~5잔을 마셨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경찰은 A씨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끝내 A씨에게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경찰이 A씨의 검거 직후 진행한 음주측정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0%'로 나왔기 때문이다. 채혈을 통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에서도 음주 수치는 검출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하려면 필히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해야 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이 있지만, 이 또한 역추산의 기준점이 될 최초의 수치를 필요로 한다. 음주 수치가 전혀 검출되지 않은 A씨에겐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