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미적대는 조선일보·국정원, 2차 가해 놓인 피해자들
[2024 언론계 성희롱] 조선일보 논설위원·국정원 직원 성희롱, 3주간 지체하는 사측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공개되지 않은 몇몇 피해 사례들을 보면 (가해자들이) 도착증 환자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선 점잖고 고매한 척하면서 뒤로는 제가 모르는 시점에, 제가 동의하지도 않은 사진과 영상 촬영을 곁들여 성 도구화했다는 사실이 치가 떨린다.” (문자 성희롱 피해자 ㄱ기자)
조선일보와 국가정보원이 자사 구성원의 여성 기자 문자 성희롱에 미온적 대처를 하는 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첫 보도 이후 3주. 피해 사실이 공론화된 뒤에도 가해자들에게 주어진 이 시간 동안, 피해자들은 가해자들과 다시금 마주칠 우려 속에 근무하며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본지는 앞선 보도에서 피해자 보호를 고려해 피해자들과의 접촉 여부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피해자들은 조선일보와 국정원이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지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로 했다. 이에 의견 일부를 기사화한다.
피해자 중 한 명인 ㄱ기자는 가해자들 행위를 두고 “그 표현들이 하나하나 박혀서 일상 생활을 하다가도 떠올라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괴롭다”면서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가해자가) 그런 대화를 나눈 사실이 일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는 둥, 사적대화니 처벌이나 징계를 하는 게 불가능할 거라는 등의 소식을 듣고는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이란 생각이 든다”면서 “조선일보나 국정원도 엄정 대응할 의지가 있다면 이렇게 대응하진 않을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사건의 심각성에 비춰 조선일보와 국정원 대처는 전에 없이 소극적이다. 조선일보를 대표해 목소리 내는 A논설위원, 정보기관 소속이란 특수 신분으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온 B과장은 업무 시간대 출입처, 식사 자리 등을 막론하고 여성 기자들 사진을 주고 받으며 성희롱 대화를 했다. 이들은 문자 대화에서 여성 기자들을 특정 신체 부위로 치환하거나 성적 욕구를 위한 대상으로 소환했다. 사실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격”(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현재까지 국정원은 B과장에 대한 업무배제 여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성희롱 대화 당시 B과장 소속은 국정원 강원지부로 확인됐다. B과장이 기존 직무를 유지하며 타 언론사 기자들과 접촉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정원은 지난달 26일 비공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부적절한 대화가 있었고 필요한 조사를 알리고 있다”고 밝혔을 뿐 이를 전후한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A논설위원에 대한 조선일보의 첫 조치는 정식 조사가 아닌 논설실 면담이었다. 조선일보는 첫 보도 이후 13일째인 지난 2일에 이르러서야 조사 절차와 대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포상징계위원회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이조차 사측이 아닌 조선일보 노동조합의 노보로 처음 알려졌다.
이는 지난 6월 '정치부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들이 속했던 서울신문, 뉴스핌, 이데일리 등이 곧바로 가해자 업무 배제 조치를 취한 뒤 이를 사내 안팎에 알리고, 즉각적인 조사 및 징계 절차에 착수한 것과 대비된다. 이로써 언론계에서 동료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성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원칙이 재확인됐다.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정원 직원의 문자 성희롱은 이로부터 불과 두 달 뒤 드러났다.
사건이 이대로 묻힐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또 다른 피해자인 ㄴ기자는 “제가 피해자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개인끼리는 그런 대화 할 수 있지' '단톡방도 아니고 1대1 대화라는데' '어쩌다 문자가 유출돼선…(가해자가) 안타깝다'는 말도 들었다”면서 가해자를 동정하는 언론계 일각의 반응을 전했다.
ㄴ기자는 “처벌도 사내 조치도 어려워 보인다. 기자, 또 여성기자들이 모인 협회는 피해자가 신분을 밝히고 진정을 해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면서 “불법촬영 및 명예훼손 등의 피해자로 수사기관을 찾아가야 할지 계속 고민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엔 도움이 되지 않고 '그 피해자가 누구라던데'라는 가십만 남게 될까 주저하는 중”이라 전했다.
피해는 일상과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각종 모임에서도 남몰래 위축된다. '저 사람은 혹시?'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가해자들이 몰래 찍은 사진과 저질 문자를 주고 받는 성폭력 현장에서도 저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공적 영역에서 업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위축되거나 오히려 범죄 피해로 인한 불이익을 겪는 상황”이라며 “권한이 있는 이들에게서 이건 가해자의 잘못이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해자를 동정하는 입장을 취하거나 혹은 그런 것을 밖으로 내뱉는 것을 격려하거나 방조하는 거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소장은 “공동체에서 피해자를 지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이것이 사후에 가해자가 징계 받고 모든 절차를 거치고도 이 문제에서 벗어나거나 일상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처럼 여성 폭력이 문제라고 외치는 지금 언론사들이 이 정도 밖에 안 해서 무슨 자격을 인정 받을 수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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