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무부, 전방위로 반독점 조사...그 칼끝엔 빅테크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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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첨단 AI(인공지능) 반도체 생산 기업인 엔비디아에 대한 미 법무부의 반(反)독점 소송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8일 미 법무부의 반독점 부서가 엔비디아에 연락해 고객사 등과의 계약 조건 및 협력 관계에 대해 질의했다고 보도했다. 수개월 내에 공식 소환장이 발부될 전망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요즘 테크 관련주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반독점(antitrust)’이다. 시장 지배력이 점점 강해지는 미국 대표 빅테크 기업들은 앞글자를 딴 GAMMA(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메타<페이스북>·아마존)라고 많이 부르고, 최근엔 엔비디아가 더해져 GAMMAN이란 용어도 쓰이는데 이 여섯 회사가 지난 1년 사이 모두 반독점 관련 조사를 받았다. 기업마다 조사 주체·사안·결과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WEEKLY BIZ가 반독점 조사와 관련한 공소장과 판결문, 주요국 공정 당국의 보고서, 각 기업의 실적 보고서 등을 분석했더니 점점 뚜렷해지는 패턴이 보였다. 이른바 ‘빅테크 카르텔’의 공고화다.
◇엔비디아 AI 반도체 “최대 매수자는 MS·메타”
엔비디아는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AI 반도체(고성능 AI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독주하는 회사다. 점유율이 80%에 이른다. 엔비디아의 주력 AI 반도체는 ‘H100′으로 대당 가격이 약 5000만원에 달한다. AI 시장의 팽창과 함께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엔비디아의 반도체를 얼마나 빠르게 많이 획득하는지가 테크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 다만 미 공정거래법인 ‘셔먼 법’과 판례는 기업이 독보적 기술로 시장을 장악하는 일 자체를 불법으로 보진 않는다. 오히려 혁신을 촉진할 유인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미 법무부는 왜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을까.
미 법무부 조사가 구체적으로 무엇과 연관됐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엔비디아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분기 실적 보고서에 힌트가 나와 있다. 보고서의 ‘위험 요소(risk factors)’ 중 법·규제 관련 항목의 일부다. “우리는 유럽연합(EU)·미국·영국·중국·한국의 규제 당국에서 GPU(AI 반도체) 판매 현황 및 우리가 공급을 배분하는 방식, ‘파운데이션 모델(고성능 AI)’ 개발사와의 투자·파트너십·협약 등에 대한 정보 요청을 받았으며 앞으로 더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쉬운 말로 정리하면 엔비디아는 각국의 규제 당국에서 ‘귀한 몸’이 된 AI 반도체를 누구한테,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며 배분하는 과정에 모종의 ‘뒷거래(투자·파트너십·협약 등)’는 없었는지 자료 요구를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매수 기업을 고르는 규칙을 공개하지 않는다. 누구한테 얼마만큼 파는지도 비공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분석과 관련 기업들의 실적 보고서를 토대로 역추적하면 결국 미국의 빅테크 기업, 그중에서도 GAMMA에 속하는 기업이 상당수를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국 정부의 반독점 주무 부처인 경쟁시장청(CMA)이 인용한 시장 정보 업체 ‘옴디아’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엔비디아의 주력 첨단 AI 반도체(H100)를 가장 많이 구매한 두 기업은 MS와 메타(각각 약 15만개)였다. 3·4위는 구글과 아마존(각각 약 5만개)으로 이 네 기업이 H100 매출 중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달한다고 옴디아는 분석했다. 법무부가 엔비디아와 매수 기업 사이에 모종의 암묵적인 불공정 계약은 없었는지를 들여다볼 전망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애플·챗GPT 파트너십의 결과는
엔비디아 반도체의 최대 매수자 중 하나인 MS는 자체적으로 AI 사업을 크게 하는 동시에 현재 세계 1위 고성능 AI 서비스인 ‘챗GPT’ 제작사 오픈AI의 사실상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바로 그 ‘챗GPT’가 최근 또 다른 빅테크 기업인 애플 아이폰 신제품 공개 행사에 등장했다. 9일 아이폰 신제품 공개 행사 때 팀 쿡 애플 CEO가 새 아이폰에 탑재될 최신 AI 서비스에 챗GPT가 보조로 쓰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오픈 AI는 미국 스마트폰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폰에 탑재됨으로써 지금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어마어마한 이용자를 한 번에 확보하게 된다.
애플과 오픈AI만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각국 공정 당국은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공공연한 ‘야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 중 하나로 AI를 주목하고 있다. AI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기반 시설과 천문학적인 비용, 방대한 데이터 등이 필요한데 이미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이러한 필수 요소들을 선점해 신규 진입자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CMA는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구글·아마존·메타·MS·애플·엔비디아 여섯 빅테크 기업이 2019년 이후 다른 AI 기업과 맺은 90건이 넘는 파트너십을 파악했다”고 했다. ‘파트너십’이라 부르는 교묘한 협력 관계를 통해 시장 경쟁자를 ‘우리 회사’의 틀로 끌어들여, AI 분야를 독점하려는 의도가 감지돼 CMA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다.
◇구글과 애플의 ‘너무 거대한’ 협력
애플과 챗GPT의 따끈따끈한 새 파트너십은 CMA가 주목하는 ‘교묘한 협력 관계’의 한 유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블룸버그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애플은 챗GPT를 아이폰에 탑재하는 데 대한 비용을 내지 않기로 했다. 아이폰 사용자 수억명에게 오픈AI의 챗GPT를 노출시켜주는 것만으로 비용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애플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이 후일 챗GPT가 (아이폰을 통해) 일으키는 매출의 일부를 공유하는 수익 모델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빅테크사 간의 ‘파트너십’은 최근 미국 법원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미국 검색 엔진과 스마트폰 분야에서 각각 점유율 1위인 구글과 애플의 계약이다. 애플과 챗GPT의 파트너십과 구도가 매우 비슷하다. 애플이 아이폰 등의 기본 브라우저인 ‘사파리’의 검색창에 구글 검색 엔진을 디폴트(기본 설정)로 탑재해두고 구글이 이를 통해 얻는 검색 광고 수익 중 일부(36%로 추정)를 애플에 주는 방식이다. 막강한 두 빅테크 기업이 파트너십을 구축하면 새로운 혁신 기업이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 미 법원의 판단이었다. 애플은 이 같은 수익 공유를 통해 연간 영업이익의 17.5%에 달하는 200억달러(약 26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문제에 대해선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 95국 언어로 웹브라우저에서 검색이 가능한 기술을 1990년대에 개발한 ‘넷피아’의 이판정 대표가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주소창에 ‘조선일보’를 치면 조선일보 사이트로 바로 연결되어야 편하지 않은가.(이것이 넷피아의 기술을 쓴 웹브라우저 ‘꿀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런데 사파리에서 검색하면 구글 검색 결과가 뜬다.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이런 불편함에도 구글 검색 점유율이 90%(미 법원 판결문)에 달하는 핵심적 이유 중 하나가 애플과의 ‘디폴트 파트너십’이 초래한 결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애플과 구글은 소비자로의 자유와 편리를 빼앗아서 이를 구글에다 팔아 거금을 챙겨 먹은 셈입니다. ‘디지털 산적’ 아닙니까? 이 같은 빅테크의 독점 행태 때문에 온라인 세상의 거래 비용(수수료 등)은 점점 늘어나고 작은 혁신 기업들은 설 곳을 잃어갑니다. 다행히 유럽의 ‘디지털 시장법’ 등 이런 관계를 끊으려는 규제, 미 법원의 구글 반독점 판결 같은 판결이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셔먼 법
1890년에 제정된 미국 최초의 독점 금지법. 기업 간 어떤 형태의 연합도 불법이며, 어떤 독점도 허용할 수 없다는 철학에서 출발했다. 시장 지배력 남용, 경쟁 제한 금지, 우월적 지위 남용 금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독점으로 인한 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다. 이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날의 미국 반독점법이 만들어졌다. 형사처벌은 물론 기업 분할과 같은 규제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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