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아나운서실장’ 강영숙 전 예지원장 93세로 별세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happy@mk.co.kr) 2024. 9. 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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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표 아나운서로 활약했던 강영숙 전 예지원장이 11일 별세했다.

'한국아나운서통사'는 "강영숙은 1950∼1960년대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여성 방송인으로 가장 폭넓게 활약하여 명성을 드높인 아나운서였다. 여성 방송인이 드물던 시대인 1967년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여류방송인클럽을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맡는 등 클럽 활동을 오랫동안 했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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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전 예지원장. 사진 ㅣ‘춘하추동방송’ 블로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표 아나운서로 활약했던 강영숙 전 예지원장이 11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이 이날 오전 12시 30분쯤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여성 최초 방송국 아나운서실장을 지낸 고인은 부산 피난 시절인 1951∼1953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견습 아나운서를 거쳐 1953년 정식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1950년대 어린이 공개방송 ‘누가누가 잘하나’의 첫 여성 사회자를 시작으로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무엇일까요’와 ‘꾀돌이 문답’ 공개방송 사회자로 명성을 쌓았다.

1961년 문을 연 민영방송 MBC로 발탁된 뒤 어린이 대상 퀴즈 공개물 ‘누가 먼저 맞추나’, 가족오락 퀴즈 프로그램 ‘쌍쌍파티’,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 등을 진행하며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1972년 5월 5일 남산야외음악당 어린이날 행사에서 육영수 여사와 방송하는 강영숙. 사진 ㅣ문화방송 30년사
고인은 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1980년대 초까지 일을 놓지 않았다. MBC로 옮겨 여성 아나운서 1호로 도쿄올림픽 중계를 했다. 여성 1호 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67년 여류방송인클럽 회장, 1971년 5월 MBC 라디오 아나운서실장을 맡았다.

우량아 선발대회에 당선된 아기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되며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인연을 맺은 고인은 1974년 예지원을 설립했다. 육 여사가 당시 신명순 어린이회관 관장에게 전통 예절을 가르칠 민간 교육 장소를 찾아보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육영수 여사 추도방송도 진행했다.

‘한국아나운서통사’는 “강영숙은 1950∼1960년대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여성 방송인으로 가장 폭넓게 활약하여 명성을 드높인 아나운서였다. 여성 방송인이 드물던 시대인 1967년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여류방송인클럽을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맡는 등 클럽 활동을 오랫동안 했다”고 기록했다.

유족은 KBS에서 6·25 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한 남편 한영섭씨와 사이에 3남으로 한기원(전 인베스트코리아 대표)·한기두(전 대한항공 상무)·한기조(사업)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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