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브랜드’에서 매출 신기록 세우는 회사로 완벽하게 부활한 회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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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부활’이다. 외모 차별을 넘어서 인종차별까지 일삼는 곳으로 몰렸던 브랜드는 그길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망하는 듯했다. 그러나 인수할 사람조차 찾지 못한 채 사내 승진으로 앉힌 새 최고경영자(CEO)는 브랜드의 콘셉트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이 회사는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리며 제대로 부활했다. 회사의 주가는 지난해 한 해 동안만 274% 올라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을 제치고 S&P1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 중 최고의 성과를 냈다. 132년 역사의 미국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앤피치(이하 아베크롬비) 얘기다. WEEKLY BIZ는 최근 20년간 천당과 지옥 모두를 경험한 브랜드 아베크롬비의 역사를 소개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실적 보고서와 실적 발표회 녹취 등을 바탕으로 최근 실적을 분석했다.
◇“‘차별’이 그들의 브랜드였다”
아베크롬비는 원래 미국을 대표하는 캐주얼 브랜드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입은 옷으로 알려졌다. 의류 브랜드이면서도 윗옷을 입지 않은 근육질 남성 모델을 동원해 노출 이벤트를 벌이거나, 옷을 파는 매장을 어두컴컴하고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처럼 꾸미는 등 특유의 이미지 마케팅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런 마케팅을 펼치면서 아베크롬비 모델들이 동양인을 희화화하며 눈을 가늘게 뜨는 포즈를 취해 구설에 오르는 등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면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마케팅을 주도했던 마이크 제프리스 CEO가 “외모가 괜찮은 사람만 우리 옷을 입길 원한다. 우리 회사에 뚱뚱한 사람을 위한 곳은 없다”라든지 “뚱뚱한 고객이 들어오면 물을 흐리기 때문에 엑스라지(XL) 이상의 여성 옷은 팔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2016년엔 미국에서 가장 혐오받는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양성 운동가인 벤저민 오키프는 “‘차별’이 그들의 브랜드였다”고 해석했다.
불매운동의 역풍에 부딪힌 아베크롬비는 회사를 팔려고 시장에 내놨으나 이마저 실패했고, 새로운 CEO를 내세워 부활을 꿈꿨다. 이때 취임한 CEO가 현재 아베크롬비 르네상스를 이끈 프랜 호로비츠다. 2017년 취임한 호로비츠 CEO는 기존 아베크롬비의 모든 것을 바꿨다. 딱 맞는 티셔츠에 청바지로 대표됐던 제품군을 일명 ‘프레피룩’이라 불리는 미국 사립학교 교복 스타일의 단정한 디자인으로 변신시켰다. 매장은 밝게 바꾸고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유색인종 모델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 팬데믹 당시 아시아인 혐오를 멈추자는 캠페인을 선도적으로 시작했다.
◇매출 기록 연거푸 갈아치워
호로비츠 CEO의 이 같은 전략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란 평이다. 성과는 실적에서 드러난다. 지난달 발표한 아베크롬비의 2분기 매출을 살펴보면 11억3397만달러(약 1조5000억원)로 역대 최고 매출을 갈아치웠다. 전 분기에 이어 두 번째로 분기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동기(9억3535만달러) 대비 21.2% 늘어난 성적이다. 매출에선 이미 7분기 연속 성장이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업이익 등 세부 지표에선 성과가 더욱 눈에 띈다. 2분기 영업이익은 1억7563만달러로 전년 동기(8984만달러)의 2배 수준으로 늘었다. 기업이 얼마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는 지표인 매출 총이익률도 64.9%로 2.4%포인트 올랐다. 미국 내 경쟁 브랜드들의 매출 총이익률이 40%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20%포인트 넘게 높은 수치다.
현재 아베크롬비가 매출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은 ‘균형’이다. 미주 지역 내에서든 전 세계적으로든 균형 잡힌 성장이 브랜드의 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호로비츠 CEO는 실적 발표회에서 “가장 기대되는 점은 성장이 매우 균형 있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브랜드, 지역, 성별에 걸쳐 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아베크롬비의 대륙별 실적은 골고루 늘고 있다. 2분기 매출 기준,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가장 많이(23%) 늘었지만, 유럽·중동·아프리카(16%)나 아시아·태평양(3%)에서도 증가세를 보였다.
고객층도 다양화하고 있다. 연령이나 취향에 따른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야 브랜드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다. 스콧 리퍼스키 아베크롬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회사 내 중저가 브랜드인) 홀리스터와 (상대적으로 고가 브랜드인) 아베크롬비가 10대들의 공간에서 싸우고 있었고, 두 브랜드를 분리하는 게 목표였다”며 “이제 아베크롬비의 소비층이 대학생 이상의 20대 초중반 고객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외 여건, 녹록지만은 않아
그러나 최근 연거푸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의 사정이 향후에도 여전히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소매업의 특성상 불확실한 경제 여건이 향후 실적을 언제든 바꿔놓을 수 있다. 특히 원자재나 완제품의 수출입에서 중동 지역 분쟁은 운임을 끌어올릴 위험 요소로 꼽힌다. 리퍼스키 CFO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해상 운임이나 항공 운임이 치솟는 상황에서 이번 여름엔 평소보다 조금 더 바빴다”며 “우리는 홍해와 아시아에서 오는 다른 노선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로비츠 CEO는 “종종 불확실한 시기에도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CNBC 등 외신에선 CEO가 내뱉은 ‘불확실’이란 단어에 시장이 반응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아베크롬비의 주가는 호실적에도 지난달 실적 발표 이후 11일 현재까지 20% 이상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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