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 말하는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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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베트남 영화 '쿨리는 울지 않는다'를 보는 동안 계속 물음표가 맴돌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달리기 선수(조승우)와 그 엄마(김미숙)를 통해 장애인 가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호평받은 '말아톤'(2005)에서, 장애를 다양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기를 담담하면서도 뭉클하게 설득하는 '그녀에게'까지 19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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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베트남 영화 ‘쿨리는 울지 않는다’를 보는 동안 계속 물음표가 맴돌았다. 여자 주인공이 한쪽 팔을 잃은 장애인인데 이에 대한 언급이나 사연은 없이 결혼을 앞둔 주인공과 애인, 그리고 그 가족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만 계속 나와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결국 감독은 이 여성의 장애에 대해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감독은 “캐스팅할 때 각본에 어울리는 주인공의 이미지를 찾았을 뿐, 장애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며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존재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정작 카메라는 의식하지 않는 주인공의 왼쪽 팔을 계속 의식한 내가 순식간에 부끄러워졌다.
11일 개봉한 ‘그녀에게’는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쿨리는 울지 않는다’와 같은 결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정치부 기자로 자신만만하게 살아오던 주인공 상연(김재화)은 이란성 쌍둥이 중 아들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간다.
영화는 실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였고, 발달장애 자녀의 엄마인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한다. 류 작가가 경험하고 글로 썼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담으면서도 장애를 비장애인이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핸디캡’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상연의 친구들이 하는 위로처럼 “장애를 딛고 서울대 보낸 집도 있더라”는 식의, 치료와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 류 작가는 카메오로 깜짝 등장해 영화의 주제를 간결하게 말해준다. “장애는 고쳐서 낫는 병이 아니라 그냥 나나 자녀에게 있는 정체성의 일부분”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영화 각색에도 참여했던 류 작가는 1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영화 참여 과정을 들려줬다. 그는 저예산 독립영화가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종종 하는 크라우드 펀딩에 반대했다고 했다. “우리(장애인 가족)끼리 돈 내고, 우리끼리 만들고, 우리끼리 보는 건 더는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제작을 마치고 홍보 마케팅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할 때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주변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튜브 등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펀딩을 받아 1억원 가까운 돈을 모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장애가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호들갑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스며드는 게 이 영화, 그리고 류 작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달리기 선수(조승우)와 그 엄마(김미숙)를 통해 장애인 가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호평받은 ‘말아톤’(2005)에서, 장애를 다양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기를 담담하면서도 뭉클하게 설득하는 ‘그녀에게’까지 19년이 걸렸다. 우리가 영화 산업과 문화에서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베트남에서 지금 한국 영화가 장애를 그리는 현주소보다 진보적인 ‘쿨리는 울지 않는다’가 나온 것처럼, 장애를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그려내는 작품들이 우리 극장 스크린과 텔레비전 화면에 더 많이 도착하길 기대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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