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장난’이었다는 아이들, ‘반성’을 가르치려면 [플랫]
“‘장난으로 딥페이크를 만들었다’는 아이들에게 그것이 철없는 장난이 아니라는 점을, 그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해요. 가해자인 아이들도 이걸 인정해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요.”
11일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 상담사 정모씨(31)가 최근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의 주요 가해자인 10대 청소년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센터는 ‘디지털 성폭력 가해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센터를 찾는 대다수의 가해 청소년은 사안의 심각성을 모른 채 온다고 한다. 올해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 10명 중 8명은 10대였다. ‘2023년 디지털 성범죄 가해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 효과성 검증 및 매뉴얼 개발 연구보고서’를 보면 가해 청수년 대다수가 설문조사에서 ‘호기심(59%)’, ‘재미나 장난(41%)’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가해 청소년을 마주하는 일선 상담사들은 “재범을 막으려면 아이들의 성 인지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10회차로 구성된 센터 프로그램은 ‘성 인지 감수성’ 점검으로 시작된다. 검사지에는 ‘여자들은 학교 내의 성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광고에서 여성의 몸을 선정적으로 그리는 것은 상품을 팔기 위한 것이니 여성차별은 아니다’ 등 관련 문항 30개가 담겼다. 가해 청소년 상당수는 성 인지 감수성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가해 청소년들은 상담 초기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도 다 했는데 나만 걸렸다”거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안 걸린다고 해서 한 것”이라는 식이다. 정씨는 “가해 청소년 상당수가 디지털 성범죄로 수사당국에 입건되거나 학교폭력위원회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상담하러 오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했다’는 인식은 있지만 ‘왜 딥페이크 성범죄가 큰 잘못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상담은 청소년들이 ‘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피해자에 대한 성적 대상화·모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장난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객관화하고 피해자의 감정이 어땠을지 돌아보는 식이다. 상담사 김모씨(54)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장난’이 어떤 행동이었고, 피해자가 어떤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를 얘기하다 보면 대부분 아이들은 ‘피해자가 괴로웠을 거 같다’고 말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익숙했던 말과 행동이 성차별적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도 상담사의 과제다. 정씨는 “상담 초반에는 유튜브·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봤다면서 ‘여자들은 자기 사건을 과장해서 얘기한다’고 하거나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면서 상담사와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상담의 최종 목표는 가해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불편한 감정’을 심는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을 뿐, 청소년들도 불법 성 착취물이 유통되는 구조를 설명하면 금세 이해한다고 했다. 김 상담사는 “불법 성 착취물 유통 구조 안에서 ‘수요자·공급자로 내가 가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은 심각성을 인지한다”며 “많은 아이들이 ‘몰랐다’ ‘충격받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정 상담사는 “구조를 이해한 아이들은 ‘불법 성 착취물 사이트에 들어가는 게 불편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상담사들은 처벌만큼이나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처음에는 처벌이 무서워 주춤할 수 있지만, 성인으로 사회에 나와 더 큰 힘을 가졌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뭐가 잘못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명화 아하 센터장은 “처벌에만 치중하면 억울함과 피해자에 대한 분노만 커져 자신의 범죄를 축소하려 한다”며 “진정으로 뉘우칠 기회는 줘야한다”고 했다.
▼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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