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품 안에 있는 사찰…‘화랑정신 발원지’ 청도 운문사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2024. 9. 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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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경북 청도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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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경북 청도 운문사 전경

‘나를 비우면 모두가 편안하리라’ 북대암 경사 급한 오르막길 극락교 다리 기둥에 새겨진 글귀가 가슴에 다가온다. 기(氣)가 떨어질 때 호거산 기암 아래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북대암에 올라 보충하라고 했다. 아마도 ‘나를 비우면 기운도 회복된다’는 뜻일까. 북대암은 호랑이 얼굴 턱 부분에 자리 잡은 바위 아래 있어 기가 센 곳인가 보다. 경북 청도 호거산(虎踞山)은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의 산이라는데 지도에는 없고 대동여지도와 옛 문헌에만 있다고 한다.

운문산

다만 운문산 장군봉 꼭대기에 호랑이가 웅크린 듯 한 큰 바위가 호거대(518m)이다. 까치산~장군봉 능선을 산행하다 나오는 삼각점 봉(614.6m)에 ‘호거산’ 정상석(石)이 있다. 이는 지역 주민이 이름은 있어도 불리는 산이 따로 없어 불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웠다고 한다. 이보다 더 올라가면 호랑이를 뜻하는 범봉(962m)이 있고 또 다른 편에는 지룡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운문사가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범봉이든, 지룡산이든 예전엔 ‘호거산’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 모든 봉우리들을 포용하고 있는 운문산(1195m)은 인근의 가지산(1241m), 천황산(1189m) 간월산, 신불산 등과 함께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영남 7산 가운데 하나이며 경북 청도 운문면과 경남 밀양 산내면에 걸쳐있다.

운문산 북대암

운문산 북쪽 기슭에 560년(신라진흥왕 21년)에 창건된 운문사가 ‘호거산 운문사’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운문산 자락 최초의 사찰이라는 ‘북대암’과 영남 지방 최고의 기도도량이라고 불리는 ‘사리암’이 호랑이 품안처럼 산속의 넓은 평지에 자리 잡은 운문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운문사에 도착하니 맑던 하늘에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진다. 주변 산들이 감싸고 있는 분지에 있어 그 모양이 연꽃 같다고 하는 운문사(雲門寺)를 북대암에서 내려다보니 그 이름처럼 안개 구름이 내려앉아 그림 같은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달 28일 광화문 광장에서 불자들이 펼치는 야단법석에서 국민오계(國民五戒)가 발표될 예정이다. ‘국민오계’가 지금의 시대정신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화랑의 ‘세속오계’ 발원지 운문사로 간다.

화랑의 세속오계 발원지 운문사
호거산 운문사

운문사(雲門寺)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의 호거산(虎踞山)에 있는 비구니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인 557년에 한 신비스러운 승려가 지금의 북대암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해 560년(진흥왕 21년) 도를 깨닫고 함께 도를 닦았던 벗들 10여명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5갑사를 건립했다.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大鵲岬寺, 현 운문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고려가 건국 후 보양(寶壤)선사가 중창하고 ‘까치가 땅을 쪼고 있던 곳’이라고 해 ‘까치곶’ 즉 작갑사(鵲岬寺)라 했다. 태조 왕건이 건국 과정에 군사적으로 한몫을 한 보양선사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린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렀다. 운문사와 운문산은 중국 운문산에서 당나라 시대 운문문언(雲門文偃) 대사가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운문종을 창조했는데,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운문사 전경

신라의 원광법사가 진평왕 22년(600년) 중국 수나라로부터 돌아와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 머물고 있는데, 화랑인 추항과 귀산이 찾아와 평생 새겨야할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임금을 충성으로 모심(事君以忠), 어버이를 효도로 섬김(事親以孝), 믿음으로 벗을 사귐(交友以信), 싸움에 임할 땐 물러섬이 없음(臨戰無退), 함부로 살생하지 말 것(殺生有擇) 등 5가지 계율인 소위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내려줌으로써 운문사는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됐다.

‘세속오계’는 당시 신라의 시대 정신이 됐다. 운문산에 오갑사가 창건할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 통일을 위해 군비를 정비할 때여서 이곳에 화랑도들이 무예를 연마하던 화랑수련장이 만들어졌다. 운문사 일대는 신라가 국력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병참기지 역할을 한 것이다.

운문사 감로수

운문사 대웅전 벽화에는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전수하는 벽화가 있고, 대웅전 뒤에는 세속오계비도 있다고 하는데 미처 찾아보질 못했다. 운문사 부설 ‘원광화랑 연구소’가 있어 불교사상과 화랑정신문화 전반을 연구하고 청도군에서는 운문사 인근에 ‘신리화랑 풍류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체험형 복합 문화단지를 조성했다. 운문사는 왕사(王師)로 책봉된 원응국사(1052~1144년)가 주석하면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해 운문사 정문 좌측엔 원응국사비(보물)가 남아있다.

원응국사비(보물)

삼국유사를 쓴 보각국사 일연스님(1206~1289년)도 1277년 왕명을 받아 운문사 주지로 5년간 이곳에 있으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화랑정신을 함양한 수련장이었으며, 삼국유사의 출발지였던 이곳이 어떻게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바뀌었을까.

전국 최대의 비구니 수행도량 운문사
운문사 전경

전국 최대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서 비구니 교육 전문 승가대학인 운문승가대학과 한문불전 승가대학원, 보현율원 등 비구니 교육 공간이 많다 보니 사찰의 절반 정도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 대웅보전, 비로전, 명부전, 만세루 정도만 개방돼 오래된 옛 건물 금당(金堂, 절의본당)도 교육공간으로 사용해 출입이 금지돼 있다.

운문사 전경

보물로 지정된 금당 앞 신라 석등도 먼 발치에서 몰래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가을의 진한 추억을 선사해줄 400여년 된 멋진 한 쌍의 은행나무도 비구니 수양 장소인 승가대학 깊숙한 곳에 있어 멀리서라도 보려는데 찾을 수가 없다. 평소엔 볼 수 없고 연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가을 이틀만 개방된다.

깊은 산속 평지에 대학 캠퍼스 같은 분위기 운문사가 언제부터 비구니 수행도량이 됐는지 궁금해진다. 기록을 보니 1913년 비구니 스님 금광선사가 주지로 있었고,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이 개설됐던 내용으로 대략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4년제 승가대학에는 250여명의 학인스님들이 공부하며 수도하고 있다.

앞쪽이 1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보전(보물). 뒤쪽 건물이 1994년 새로 지은 대웅보전.

운문사에는 현재 두 채의 대웅보전이 있는데 하나는 1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보물)이다. 다른 하나는 1994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있어 대웅보전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는 상황이다. 법당도 비좁아 예불을 드리기도 불편해 뒤쪽에 새롭게 큰 대웅보전을 짓고 기존의 대웅보전을 ‘비로전’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대적광전이나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보물인 대웅보전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선 안 된다고 해 대웅보전(보물)에 걸린 ‘비로전’ 현판을 내리고 ‘대웅보전’ 현판을 달아 신·구 대웅보전이 공존하게 됐다.

법륜상

수레바퀴 모양의 특이한 조형물인 ‘법륜상(法輪相)’이 신·구 대웅전 중간에서 정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법륜상’은 부처님의 법이 수레가 굴러가듯 머물지 않고 항상 전해질 것을 염원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대웅보전 비로자나불

운문사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문화재와 보물이 많다. 보물 대웅보전(大雄寶殿) 내부에 있는 ‘비로자나삼신불회도’와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도 보물이다.

동·서 삼층석탑

대웅보전 앞에 있는 동·서(東西) 삼층석탑 2기도 보물인데 그 자리가 풍수지리에 의하면 ‘배가 떠나가는 듯한 자세’라는 행주형(行舟形)이다. 배가 떠나지 못하게 하는 닻의 역할로 탑을 세운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왜 쌍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작압전

전면, 측면이 모두 한 칸에 불과한 조그만 산신각 같은 작압(鵲鴨)전 안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중간에 자리하고 좌우에 석조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상은 사라진 전탑(塼塔)의 일층 탑신부에 설치됐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는데 모두 보물이다.

석조여래좌상·석조사천왕상

왜 까치(鵲)와 오리(鴨)를 뜻하는 작압(鵲鴨)전일까. 까치 전설을 간직한 초기의 작갑사(鵲岬寺) 흔적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어느 과정 중에 작갑(鵲岬)이 작압(鵲鴨)으로 잘못 표기되면서 이름이 전해져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만세루
만세루

법회를 하는 누각 만세루가 사찰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푸른 천장 등 단청 색깔이 화려하고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대단한 규모로 사면이 개방돼 있어 모든 전각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처진소나무와 북대암, 사리암
불이문

운문사 인근에는 유원지, 캠핑장, 인공 암벽 체험장 등이 있고 운문사 올라오는 길에 펜션과 민박이 즐비해 인근의 운문댐과 연계해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운문사는 상가들이 즐비한 입구 쪽 공용 주차장을 이용하면 1.4㎞ 아리따운 노송이 늘어선 솔밭 숲길인 ‘바람길’을 걸으며 도착할 수 있다.

절 바로 옆 주차장에서는 걸어서 2~3분이면 ‘호거산 운문사’란 현판이 걸려있는 2층 누각을 마주할 수 있다. 운문사 옆구리에 나있는 문처럼 느껴서 생경스럽지만 일주문으로 사용하는 누각 형식의 범종각으로 2층에 법고와 범종이 보인다.

처진 소나무

정문을 들어오니 모든 사찰에 있음직한 사천왕문이나 다른 문은 없고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승가대학으로 가는 불이문(不二門)만 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처진 소나무’다.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반송(盤松)인데 넓게 옆으로 퍼져 있어 멀리서 보면 나무의 기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처럼 보인다.

수령 500년이 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둥글고 낮게 사방으로 나뭇가지를 뻗어 가지마다 지지대를 세운 우리나라 최대의 ‘처진 소나무’다. 꽤 거대하고 굵은 이 소나무에게 매년 봄이면 뿌리가 땅에 잘 밀착될 수 있도록 열두 말 가까운 막걸리를 부어준다고 한다.

북대암

기가 떨어져 보충하고 싶을 때 북대암이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필요할 때 937계단을 올라 사리암으로 가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 기도가 필요한 분들이 많아서 인지 운문사 부속 암자 가운데 절벽 위에 있는 사리암이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나반존자 기도도량이다. 나반존자는 독성(獨聖)이라 불리는 석가모니 제자인 16나한 중 제1존자이다.

북대암 내부

사리암 주차장까지 가서 계단 길로 30여분 올라가야 사리암을 만날 수 있다. 주룩주룩 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에서 사리암까지 갔다 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운문산 최초의 사찰터라는 북대암으로 향했다. 운문사 북쪽에 위치한 북대암은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있다.

오르막 경사도가 상상을 뛰어넘고 외길인지라 운전엔 각별한 신경이 필요하다. 정갈한 장독대가 보이는 막 다른 곳에 도착해서 법당 안마당에 올라서니 탁 트인 전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북대암에서 바라본 운문사

사방의 산봉우리 이름은 모르겠지만 봉우리 사이 평지에 자리한 안개로 덮인 운문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구름이 걸린 뒤쪽 암벽바위는 한 폭의 수려한 동양화다. 아미타부처를 모신 법당 뒤 언덕 위에는 독성각 산신각이 한 건물에, 그리고 칠성각이 바위에 걸쳐 있다.

안내판에 적힌 원효대사의 시 한수가 들어온다.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 있는 사람이 기거할 곳이요.
푸른 솔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 깃들 곳 이니라.”
원효대사의 시

단정하고 잘 가꾼 정원이 돋보이는 운문사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눈 덮인 겨울과 전통 음악의 원형이라 하는 새벽 예불, 그리고 봄 벚나무 돌담길을 극찬했다. “운문사 답사는 새벽 예불을 참배하거나, 저녁 예불이라도 봐야 운문사를 답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겨울과 봄을 피해 여름에 왔으니 절경을 볼 리 없고 예불도 참배 못했으니, 졸지에 운문사에 갔다 왔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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