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고민···파운드리·HBM ‘한 바구니’는 부담, 삼성전자 기회 열리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 TSMC 외에 다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인공지능(AI) 칩 생산을 전부 TSMC에 맡기고 있으나, 삼성전자 등 다른 파운드리가 품질 경쟁력을 갖춘다면 언제든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TSMC는 물론이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 등 특정 협력업체 한 곳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안’을 확보해야 한다는 고민이 묻어난다.
황 CEO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골드만삭스 기술 콘퍼런스에서 “TSMC는 동종 업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민첩성과 대응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른 공급업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TSMC에 전량 주문하고 있는 AI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셋 생산을 다른 회사에도 맡길 수 있다는 의미다. 엔비디아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최첨단 공정을 보유한 파운드리는 이제 막 사업에 뛰어든 미국 인텔을 제외하면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물론 황 CEO의 발언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TSMC의 생산능력 한계 때문에 AI 칩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언제든 ‘대안’을 찾아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황 CEO는 AI 칩 물량이 부족한 탓에 “감정적인 고객이 많아졌고 긴장감마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사는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클라우드 업체들이다.
TSMC는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이다.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의 까다로운 설계 주문을 안정적인 품질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TSMC의 최첨단 3나노 공정은 주문이 2026년치까지 가득 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파운드리 비용도 점점 오르고 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 시리즈’ 칩셋이 생산되는 TSMC 4나노 공정은 내년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TSMC는 4나노 생산 단가를 웨이퍼당 1만8000달러에서 2만달러로 약 10% 올릴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황 CEO 발언은) 단순히 TSMC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일 수 있다”면서도 “한 업체가 독주하는 상황이 건전하지는 않으며 황 CEO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고민은 HBM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주력 제품 ‘H100’에 탑재되는 4세대 ‘HBM3’를 독점 납품하고 있으며 블랙웰 시리즈에 들어가는 5세대 HBM3E도 지난 3월부터 공급하고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AI칩 물량이 TSMC 캐파(생산능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마당에 SK하이닉스 HBM의 존재감까지 커지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이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 퀄테스트(품질인증)를 통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만큼이나,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솔 벤더(sole vendor·단독 공급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삼성전자·마이크론 등 또 다른 메모리 파트너사가 절실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달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 8단 제품을 납품하기 위한 품질 검증을 통과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마이크론도 최근 HBM3E 12단 제품을 출시하고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했다고 이날 밝혔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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