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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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그의 옆에 가만히 앉아 '그의 이름'을 불러보시라.
그걸 또렷하게 알 수 있는 건 죽은 이의 이름.
그런데도 이름은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이다.
그만큼 우리는 이름에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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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그의 옆에 가만히 앉아 ‘그의 이름’을 불러보시라.
이름은 인간의 독특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치이다. 이름은 켜켜이 쌓인 한 사람의 우여곡절을 한꺼번에 담는 상자. 그러곤 상자만 애지중지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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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또렷하게 알 수 있는 건 죽은 이의 이름. 망자의 이름이란 얼마나 허전하고 허망한가. 그런데도 이름은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이다. 장례식이나 차례상에 적힌 망자의 이름을 바라보는 일은 ‘부재의 고유성’. 다시 말해 누군가가 ‘없다’는 건 그냥 똑같이 없는 게 아니라 ‘고유한 없음’ ‘저마다의 없음’이라는 감각을 갖게 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이름을 신성시한다. 장례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름이다. 운구를 할 때 맨 앞에 서는 것도 위패다. 육신은 사라지고 이름만은 남아서겠지. 산 자는 죽은 자가 아니라 이름을 따른다. 이태원 참사 때 차려진 분향소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도 위패의 부재, 즉 이름의 부재 때문이었다. 분노라기보다는 당혹감 같은 거였지. 위패 없는 분향소에서 나는 제대로 애도를 하고 있는 건가? 이 눈물은 망자에게 닿을 수 있는 건가? 죽은 이들의 영혼이 여기에 와 있기나 한가? 하는 혼란스러움 같은 거였다. 그만큼 우리는 이름에 사로잡혀 있다.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일종의 일방적인 고백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면 그 순간 하늘 어딘가에 자리 잡은 좌표처럼, 손에 닿지 않게 무심하고 무덤덤하게 외롭고 쓸쓸하게 나와 무관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아도 좋으니, 그래도 거기 ‘있으라는’, 최소한의 고백, 최대한의 요구.
죽은 이의 이름으로 생사 앞에 선 인간의 실존적 고독감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풍성한 한가위 명절이 아니겠는가.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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