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용 말라”…아들 잃은 아버지는 트럼프에게 호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0일 밤(현지시각)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의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범한 가장 큰 패착으로는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고 주장한 게 꼽힌다.
이런 음모론의 ‘발단’이 된 교통사고 사망 어린이의 아버지가 “우리 아이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며 그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더욱 난처해졌다.
11일 오하이오주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해 8월 교통사고로 11살 아들을 잃은 네이선 클라크는 전날 스프링필드시 운영위원회에 나와 자기 아들의 죽음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는 연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러닝메이트인 제이디(J.D.) 밴스 상원의원 등을 “도덕적으로 파산한” 정치인들이라고 비판했다.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남의 집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헛소문은 아이티 출신자가 몰던 미니밴이 스쿨버스와 충돌해 클라크의 아들 에이든이 사망한 후 온라인에 올라왔다.
그런데 지난 9일 밴스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이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훔쳐먹고 있다”며 소문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꾸며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현지 경찰은 이에 관한 신뢰할 만한 보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밴스 의원은 이튿날에도 클라크 아들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거론하며 이민자들을 비난하고, 이들 탓에 결핵 발병 건수가 늘었다고 주장했다.
사망한 소년의 아버지는 이처럼 공화당 정치인들이 아들 이름까지 거명하며 비극을 정쟁의 도구로 삼자 연설에 나선 것이다. 클라크는 “난 아들이 60살 백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면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그런 사람이 내 11살짜리 아들을 죽였다면 혐오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우리를 내버려둘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가 백인이라면 아들 이름이 거론되는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가해자가 이민자라는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개탄한 것이다. 그는 살인 사건이 아니라 우발적 사고였다며 이를 혐오의 근거로 삼지 말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같은 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러닝메이트의 주장을 6700여만명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반복하면서 더 큰 지탄의 대상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난하던 중 “스프링필드에서는 이민자들이 개를 먹는다”, “그들은 고양이를 먹는다”, “그들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애완동물을 먹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행자가 현지 당국은 이런 소문과 관련한 신뢰할 만한 보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는데도 구체적으로 어떤 채널에서 어떤 내용을 시청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자기 개가 잡혀가서 음식으로 쓰였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듣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너무 극단적인 얘기”라며 쓴웃음을 터뜨렸다.
이쯤되면 어느 정도는 논란이 수그러들어야 할 것 같지만 이제는 개와 고양이가 아니라 기러기 사냥 논란까지 발생했다. 한 남성이 기러기를 들고 있는 모습의 온라인 사진에 대해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출신 이민자가 새를 잡아먹는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를 놓고도 밴스 의원,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엑스(X·옛 트위터) 소유주 일론 머스크까지 가세해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키는 글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스프링필드가 아니라 오하이오 주도 컬럼버스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캠프는 11일 보수 인터넷 매체의 보도를 인용해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손에 기러기를 들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경찰의 보고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료를 뿌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변호하려는 의도와 함께, ‘개·고양이 식용설’을 깨끗이 접는 데 대한 미련을 담은 주장으로 보인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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