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5.안산산업역사박물관

경기일보 2024. 9. 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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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화랑유원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안산의 산업사와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넓은 호수와 푸른 산을 배경으로 돔형의 건물이 우뚝하다. 안산시 단원구 화랑로 265에 자리한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이다. 안산, 산업, 역사에 거듭 등장하는 자음 ‘ㅇ’과 ‘ㅅ’을 동그라미와 삼각형으로 변형한 타이포그래피가 참신하다. 초록, 파랑, 주황의 색깔 배합도 매우 인상적이다. 박물관 입구에 왜 버스를 세워 놓았을까. 궁금증을 안고 박물관에 들어서니 기계음이 들린다. 커다란 팔을 가진 로봇이 자동차의 앞좌석을 설치하고 있다. 로봇으로 상징되는 첨단 산업의 중심에 안산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일까.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시가 ‘인사이드 카 INSIDE CAR’인데 부제가 ‘자동차는 부품으로 완성된다’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 내부 전시실. 윤원규기자

■ 안산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미래를 상상하다

친구의 손을 잡은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4D 영상체험실로 이동하고 있다.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밝은 표정은 로봇을 비롯한 기계와 부품들이 가득한 박물관 전시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오늘의 안산을 있게 한 산업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대한민국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산업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밝히고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오은석 학예연구사의 설명에 공감하며 박물관을 둘러본다. 조개를 잡고, 소금을 굽던 어촌마을 안산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도시로 성장했을까. 경기도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산업박물관이 이곳에 설립된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상설전시실1로 향한다. ‘산업, 도시를 만들다’와 ‘도시, 산업을 키우다’라는 소주제를 통해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도시로 변모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최초로 시도된 ‘뉴우타운’ 전원적인 환경을 조성’이라는 머리기사와 ‘5천억 투입 87년 완공’이라는 글자가 뚜렷한 1977년 3월30일자 동아일보가 눈길을 끈다.

자동차산업, 전기전자산업 등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 ‘산업과 기술’ 전시장 전경. 윤원규기자

‘반월 신공업 도시건설 기공식’이란 글씨가 선명한 사진에 등장하는 여러 대의 굴착기와 식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산업 대국으로 성장하려는 당대 한국인의 열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포장도로에 시내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흑백사진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안산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던 그 시절 반월단지 노동자들의 발이 돼준 유물이 박물관 입구를 지키는 ‘새한자동차 BF101’이다. ‘반월’이란 이름은 이제 조형물로만 남고 기억에 남아 있지만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키는 견인차였음을 기록사진과 신문 기사와 빛바랜 설계도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나의 일터, 나의 삶터’라고 새겨진 공간에 수십명의 얼굴이 등장한다. 안산을 첨단 산업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한 숨은 주역들이다. 기술자와 사장, 공무원과 간호사, 이주노동자도 보인다. ‘도시의 숨소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도시의 생명력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안산시를 상징하는 ‘녹지’, ‘희생’, ‘공동체’, ‘환경’, ‘이주’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1세대는 생존 때문에 안산에 왔어요. 지금은 2세대가 안산의 미래를 위해 결정을 짓고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할 타이밍이에요.” 공인중개사 목창균씨의 말처럼 안산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 오늘부터 1일’이라는 코너도 참신하다. 게임과 가상현실(VR)로 박물관을 체험할 수 있고 휴식도 취할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2전시실로 이어지는 길이 멋지다. ‘전시 공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주는 고리 형태의 전시 둘레길’이라는 안내처럼 어느 층에서나 화랑유원지의 시원한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 내부 전시실. 윤원규기자

■ 대한민국의 성장을 뒷받침한 뿌리산업

장난감 조립품 같은 물건이다. 자세히 살펴봐도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래 설명을 보고야 고개를 끄덕인다. 수도꼭지를 만들기 위해 제작한 ‘금형’이다. “이처럼 금형을 비롯해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기술같이 자연 소재를 부품으로 생산하거나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등 제조업의 근간을 형성하는 기술을 ‘뿌리기술’이라 합니다. 안산은 뿌리산업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 산업기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말에 생산된 텔레비전, 전화기, 냉장고, 컴퓨터 등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유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과 30~40년 전의 물건이지만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희귀한 유물이기 때문이다. 한때 판매율 1위를 자랑하던 삼보컴퓨터, 국내 최초의 컬러 텔레비전인 아남 ‘크리스탈’ 컬러 텔레비전 CK-1666 모델도 있다. 동전을 넣은 구멍과 숫자 아래 난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번호를 돌리던 공중전화기도 유치원 아이들에겐 신기한 물건이다. “소규모 운송업자와 배달업자에게 인기를 끌었던 ‘기아 경 3륜 트럭 T-600’(문화재 5호)은 경기도등록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용달 트럭입니다.” 등록문화재는 더 있다. ‘동주염전 소금 운반용 궤도차’(10호)와 ‘목제 솜 틀기’(11호)가 그것이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기업과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은 각종 유물 450여점이 전시됐다. 상설전시실3에는 제지인쇄산업, 섬유염색가공산업, 화학산업과 관련한 제품과 제조용 기계를 전시하고 있다. 참고서로 유명한 동아출판 안산공장에서 사용됐던 재단기, 활판인쇄기, 자모조각기, 활자주조기 같은 인쇄출판 기계도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유물이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 내부 전시실. 윤원규기자

■ 시민과 함께 자부심과 긍지를 전파하는 박물관

‘시민 아카데미’는 박물관의 대표적인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지역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박물관 식구들의 고민에서 비롯된 시민아카데미는 유아, 청소년, 지역 대표 세 가지 유형으로 문화관광해설사, 학예연구사와 함께 박물관을 관람 후 단체 유형별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어린이들에게는 4D 영상 관람과 포장기계 및 스티커놀이 등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은 1980년대 안산시를 누비며 반월공단 근로자들의 발이 됐던 시내버스의 탑승 체험과 모형 만들기가 진행된다. 성인들을 대상으로는 박물관 콘텐츠를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방안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시민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유아부터 성인까지를 아우르는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다. 박물관의 또 하나의 자랑은 ‘옥상팝콘’이다. 화랑유원지가 훤히 보이는 박물관 옥상에서 음악회와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 시민들의 호응이 높다. 9월6일 금요일 오후 7시에 열린 옥상팝콘은 마술공연과 영화 ‘알라딘’을 감상하는 흥겨운 자리였다. 이처럼 박물관은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장래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아이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키우는 공간이 되고 있다.

“안산시의 시작은 대한민국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의 발자취와 함께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지금, 눈부신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안산시가 있었고 안산의 시작과 지금엔 바로 산업이 함께 했습니다.”

한국인의 자부심과 안산시민의 긍지를 전파하는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화랑유원지와 함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됐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넉넉하다는 뜻이다. 화랑호수 너머에 도립 경기도미술관이 있다. 안산은 18세기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성호 이익과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 일제강점기 아동 교육에 헌신한 상록수 최용신 등 우리 역사에 그 이름이 우뚝한 인물들이 살았거나 활동했던 역사의 도시다. 성호박물관, 김홍도미술관, 최용신기념관을 비롯해 안산어촌민속박물관, 맥아트미술관과 유리섬미술관, 이플실내정원, 정문규미술관, 종이미술관, 안산향토사박물관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안산의 웅숭 깊은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준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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