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2국가’ 자충수와 동독 교훈[시평]
동독 공산당 ‘2민족 2국가’ 주장
인종적 특성 같아도 정체성 차이
브란트가 구현했지만 붕괴 일로
동족관계 아닌 적대적 두 국가
통일 부정이 되레 통일 앞당겨
남남갈등 극복해야 급변 대비
우리는 통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졌고, 다시 남남으로 갈라지면서 해방 직후에 벌어졌던 좌우 대립의 악몽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다.
과거 서독은 정부 수립 후 단독대표권을 주장하며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강대해진 1955년에는 동독을 인정하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원칙을 발표했다. 동독은 1민족 2국가론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베를린장벽을 세운 스탈린주의자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더 나가 2민족론을 주장했다. 스탈린의 개념에 따르면 민족이란, 핏줄·언어·정치이념·경제체제·역사관을 공유하는데, 동서독 주민은 인종적 특성은 같으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종족으로는 하나의 민족(folk)이지만, 분단이 계속되면서 서로 다른 국민국가를 건설한 별개 민족(nation)이 됐다는 것이다.
그의 2민족론은 독일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소련의 지지를 받았지만 동료 정치국원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1971년 그가 권좌에서 축출되면서 그 주장도 함께 퇴조했다.
동독 정권이 갈망하던 2국가론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정부에 의해 구현됐다. 당시 야당이던 기민당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한 신동방정책에 위헌소송을 내며 반대했지만, 동독을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로 상정한 사민당의 정책은 합헌 판결을 받았다.
동서독 2국가론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1973년 박정희 정부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제안했다. 북한은 이를 한반도 영구 분단 책동이라며, 고려연방공화국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한반도 1국가론을 고집했다. 박정희의 6·23 평화통일선언은 20년이 지나 노태우 정부에서 빛을 보았다. 한강의 기적으로 부상한 한국은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남한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 남한의 단독 가입을 우려한 북한은 1991년 앞질러 가입 신청을 했다.
그해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된 고위급회담 결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서, 2국가의 평화공존을 통해 1민족으로 간다는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여건이 마련됐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보수 정부가 화해의 길을 닦고, 진보 정부가 협력을 위해 달린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 없었다면, 우리도 독일처럼 화해-협력-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남북 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김정은이 남북한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는 2민족론을 내세우며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그의 통일 기피증은 통일을 앞당길 것이다. 2민족론은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침식시키는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존재 이유는 혁명이다. 주민들은 혁명의 깃발을 바라보며 희생을 감수한다. 많은 북한 남성의 이름에 ‘강’ ‘철’ ‘혁’자가 들어가 있다. 강철 같은 의지로 혁명을 완수하자는 것이다.
사회혁명의 이정표는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이다. 그런데 김일성 수령이 약속한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다’는 사회주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경제는 수렁에 빠져 있다. 북한이 강조하는 또 다른 과업은 통일혁명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2민족론을 내세우며 남조선 해방을 포기했다.
이제 북한 주민은 무엇을 위해 혁명정권을 지지해야 하는가? 그들은 민족·통일·혁명 등 주요 가치를 걷어차 버리는 김정은 노선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1민족을 배신한 북한의 가치 없는 정권이 붕괴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 우리 사회는 통일 준비를 외면하고 분열하고 있다. 어떻게 남남갈등을 극복할 것인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초당적 대북정책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 하지만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 적극 대화에 나서 점진적이든 일괄타결이든 타협 가능한 조치에 합의한다. 그 과정에서 대가 없는 퍼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평화 담론과 통일 담론은 똑같이 중요하다.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고, 동시 구현이 가능한 평화통일 담론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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