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 프리’…소답게 농부답게, 풀만 먹고 자란 한우
풀로만목장 조영현 대표
“사람은 사람답게, 소는 소답게”.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레스토랑 ‘시스트로’에서 독특한 만찬이 펼쳐졌다. 이날 행사명은 ‘풀로만목장 x 시스트로 풀로만풀코스’였다. 풀로만목장은 건초 등 ‘풀’만을 사료로 사용하는 한우 축산 농가로, 전남 장흥에 있다. 통상 국내 한우 농가는 옥수수 등 곡물을 먹여 마블링을 키운다. 축산물등급제 평가 기준 중의 하나가 마블링(근육 내 지방의 정도)이기 때문이다. 마블링의 정도에 따라 더 높은 등급을 받게 된다. 이는 바로 수익과 직결된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풀로만농장 조영현(69) 대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육하는 한우가 시장에 많이 나와야 한다”며 “‘사람은 사람답게, 소는 소답게’”가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양질의 건초 사료로 평가받는 알팔파(자주개자리, 토끼풀과 닮은 콩목 콩과 식물)와 라이그라스(쥐보리속, 벼과 식물) 등을 사료로 쓴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목초만 먹고 성장한 소를 키우는 것이다. 농장은 대략 9만5867㎡(2만9000평) 크기의 땅에 150두 정도 키우는 규모다.
서울토박이인 그가 15년 전 장흥에 가 소를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4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초식동물인) 소는 풀만 먹인다 △축산물등급제를 기준 삼아 사육하지 않는다 △기존 유통 체인을 활용하지 않는다 △생산자가 가격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등이다.
이런 원칙 때문에 풀로만농장 한우는 농장 에스엔에스 계정으로만 주문을 받는다. 1달에 2~3번 판매 공지가 뜬다. “한달에 약 2~3마리, 1년이면 대략 40여마리 도축”한다고 말하는 그는 ‘농부는 요리사’라고도 덧붙여 말했다. 이미 생산 현장에서 맛이 결정된다는 소리다.
전국 한우 생산 지역 중에 유독 장흥을 고른 이유도 말했다. “여러 지역을 다녔는데 장흥이 소 키우기에 더없이 좋다고 판단했어요. 물도, 공기도 좋고 건강한 소를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본래 사료를 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했었다. 전국 축산 농가 중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축산 지역 사정을, 사육 조건 등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장흥은 지역민보다 한우 숫자가 더 많은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한우 사육에 좋은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 장흥인 것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장흥삼합’이 태어난 이유다. 질 좋은 장흥 한우와 신선한 키조개, 표고버섯이 한데 어우러진 ‘장흥삼합’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장흥 대표 자랑거리다. 장흥에는 ‘장흥군버섯산업연구원’도 있다.
이날 만찬을 기획한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는 “우리가 먹는 게 어디서 오고, 무엇을 먹고 자란 것인지 알아야 한다”며 “풀만 먹은 소는 드물며 이것이 ‘건강한 로컬 푸드’”라고 말했다.
마블링이 기준이 되는 한우 시장에서 풀 사료로만 고집하는 조 대표가 처한 어려움은 한둘이 아니지만, 그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소똥 속에서 구르지만, 자부심은 큽니다. 소비자가 (계속 농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용기를 지속적으로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날 레스토랑에선 ‘시스트로’ 서원진 셰프와 초빙 셰프인 박상준씨가 풀로만농장 식재료로 6코스 만찬을 차렸다. ‘피에몬테식 케이퍼 참치소스를 곁들인 로스트비프’ ‘로마식 소 내장 요리’ ‘브로콜리 오일 파스타’ ‘풀로만 스테이크’ ‘레몬과 자몽이 어우러진 셔벗’ ‘이탈리아 생 초콜릿’ 등이 메뉴로 등장했다.
‘로마식 소 내장 요리’는 입안에서 퍼지는 내장 맛이 의외로 담백해, 이날 시스트로를 찾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눅진하지 않은 소 내장 맛은 별미였다. 코스의 꽃은 역시 ‘풀로만 스테이크’. 장시간 수비드(저온조리 중 하나) 방식으로 조리한 스테이크는 채끝살이 마블링이 없어도 충분히 부드러운 감칠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여기에 한 가지, 존득하면서 보드라운 식감이 맛의 향연을 더 빛냈다.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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