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심사 속도 내는 건 좋은데... 너무 빠른 ‘부정적 코멘트’에 기업은 당혹

일러스트=챗GPT 달리

이 기사는 2024년 9월 11일 8시 53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한국거래소가 최근 상장 예비심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상장이 어려울 것 같은 기업을 걸러내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기 때문이다.

보통 상장을 추진하는 발행사와 주관사는 거래소의 요청을 받아 심사 자료를 추가로 제출하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거래소가 일찌감치 심사 철회를 유도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한 소명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상장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거래소 상장심사부서가 발행사에 ‘부정적’ 언질을 주는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소는 상장 예심을 거쳐 미승인을 통보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회사와 주관사 측에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는 언질을 줘서 자진 철회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를 받기 전 심사를 스스로 철회하면 ‘미승인’ 낙인이 찍히지 않는다.

일례로 2차전지 소재 기업 이피캠텍은 지난 7월 24일 상장 예심을 철회했는데, 심사 청구 시기가 5월 28일로 불과 두 달 전이었다. 자동차 부품 업체 진합은 4월 17일 상장 예심을 청구해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7월 5일에 철회했다. 푸드테크 기업 식신은 2월 28일 청구해 5월 30일 철회했으며, 시스콘로보틱스는 3월 29일 청구해 7월 5일 자진 철회했다.

그동안 상장 예심 청구에서 자진 철회까지는 5~6개월 이상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국거래소 자료를 기반으로 집계해본 결과, 올해 상반기 중 심사를 철회한 13개 기업의 예심 청구부터 철회까지는 평균 177일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피노바이오, 이브로드캐스팅, 케이엑스인텍, 에스더블유엠은 200일이 넘게 걸렸다.

예심 청구에서 철회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근 절반 수준으로 단축된 것은 거래소의 ‘속전속결’ 심사에 기인한다. 거래소는 지난 7월부터 특별심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이른바 ‘파두 사태’ 이후 거래소의 심사 기조가 보수적으로 변한 데다 정은보 이사장 인선의 지체로 인한 임원 및 부서장 인사 지연으로 상장 심사 적체가 심해지자,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심사가 무한정 길어지면 회사의 자금 집행 계획이 꼬일 수 있는데, 부정적인 결과라도 빨리 받으면 그 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어서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조금 미비한 부분이 있는 상태로 심사를 청구해도 사후에 보완하거나 실적 개선 추이를 봐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작은 결격 사유라도 있으면 그게 해소되고 나서 심사를 청구하자는 게 요즘 주관사들의 전반적인 스탠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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