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美 교통시장서 잘나가는 비결은 30년간 끌어안고 직접 만든 기술이죠"

안경애 2024. 9. 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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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일하는 환경·분위기 만드는게 중요… 이직 거의 없어
원천기술 개발부터 제조까지 직접하니 가격 조절 가능해져
이강익 에스트래픽 부사장(연구소장)

이강익 에스트래픽 부사장

"패권전쟁 시대에 기술보안과 인재를 어떻게 지키느냐고요? 실력 있는 기술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거죠."

이강익(57·사진) 에스트래픽 부사장(연구소장)은 "인재들이 즐겁게 커리어를 쌓아가며 일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연구소장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면서 "노력한 덕분에 연구원들의 이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스마트 교통 솔루션 분야 국내 대표 기업이면서 대기업도 뚫지 못한 미국 교통시장에서 활약 중인 에스트래픽의 기술 경쟁력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아주대에서 전자공학 학·석사를 받은 후 1997년 삼성전자 도로교통사업팀에 입사한 후 27년간 한 분야만 파고들었다. 통행권을 발급받는 방식의 고속도로 요금징수시스템(TCS)부터 하이패스 시스템, 도로교통 솔루션이 핵심이다. 삼성전자 사업조직이 1998년 통째로 삼성SDS로 옮겨갔다가 2013년 에스트래픽으로 독립해 나왔다. 에스트래픽 창립멤버인 이 부사장은 2018년부터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의 '제조 DNA' 덕분일까. 회사의 간판은 바뀌었지만 이들은 자체 공장을 두고 TCS부터 하이패스까지 대부분의 설비를 자체 개발하고 생산한다. 대부분의 SI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이유로 솔루션을 외부에서 가져다 쓰고 제조를 외주화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프랑스, 일본 등의 거대 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는 철도 신호제어시스템 시장에도 뛰어들어 기술을 내재화했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의 위치를 센티미터 단위로 파악해 통행을 확인하고 요금을 결제하는 '태그리스(Tagless) 게이트' 기술도 초광대역(UWB) 통신 프로토콜을 이용해 개발했다.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에 적용하면 요금 결제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에스트래픽은 약 280명의 직원 중 기술본부에 약 100명, 연구소에 36명이 몸담고 있으면서 혁신 기술을 빠르게 솔루션과 사업 현장에 녹여 넣고 있다.

기술이 광속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자체 개발과 제조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이 부사장은 "기술의 유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기술을 가져다 쓰면 수월은 하지만 결국 우리의 품질이 경쟁사의 품질과 차이가 없어진다. 운신의 폭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트래픽으로 독립할 당시 하이패스 기술 중 차량 번호인식과 레이저 방식 차량검지기는 외부에서 사서 썼는데 이후 이들 기술도 자체 개발해 하이패스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직접 개발·제조하는 체계를 갖췄다.

국내 고속도로에 통행권이 도입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삼성전자가 사업을 수행했다. 도로공사가 2000년에 하이패스 시범사업을 할 때는 삼성SDS가 그 일을 했다. 이 부사장을 비롯한 그 주역들이 지금 에스트래픽에서 미래 교통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30년간 쌓은 경험과 기술이 고스란히 자체 솔루션으로 축적돼 있는 것. 이 부사장은 "원천기술 개발부터 제조까지 직접 하니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그에 맞춰서 기술과 가격을 조절할 수 있다. 회사의 캐시카우인 도로교통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글로벌 시장과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0~20년 이상 교통 한 우물을 판 이들은 미션이 주어지면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답을 찾아낸다. 그러나 이 부사장은 빈틈 없이 돌아가는 것보다는 약간의 느슨함을 꾀한다. 혁신성과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조직에서 100% 뭔가를 채워놓으면 새로운 것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혁신성을 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치열하게 브레인스토밍하고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뽑거나 파트너사 직원을 만나면 취미를 물어본다. 일하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푸는 방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취미가 없으면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 사내에 풋살 동호회와 드로잉 동호회가 있는데 연구소가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어졌다. 2017년엔 사내 조직 중 가장 먼저 자율출퇴근제를 연구소에 도입했다.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반차를 쓰거나, 저녁 집안행사에 가기 위해 오후 반차를 낼 필요 없이 하루 8시간만 일하면 되는 구조로 만들었다.

삼성의 '시스템'과 조직의 권위도 덜어냈다. 이 부사장은 "업무 스트레스가 상식 이상으로 많다는 것은 업무 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때 답은 윗사람이 자주 안 보이는 것이다. 대신 중요한 마일스톤만 관리한다"고 했다.

이어 "나 역시 세세하게 관리받는 것을 싫어해서 직원들에게도 역지사지를 실천한다.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 정도 만나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대신 만의 하나 리스크가 불거지면 밤낮과 주말 없이 특단의 체계를 가동한다.

이 부사장은 "이런 식으로 해서 지금까지 기술 개발 목표 시간을 못 지킨 적은 한번도 없다"고 밝혔다.

자체 기술의 힘은 해외에서도 빛을 발한다.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의 지하철 요금결제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지 발주기관이 에스트래픽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 '빠른 요구사항 대응'인데, 이는 자체 기술을 가진 덕분이다.

이 부사장은 "미국 기업에서는 볼 수 없던 속도를 접한 발주기관들의 만족도가 높다. 2개 도시에서 사업을 하니 신뢰도가 몇배는 올라간 것 같다"면서 "30년간 끌어안고 직접 개발해온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빠른 의사결정도 경쟁력에 한 몫 한다. 대기업의 시스템과 30년된 기술력에 스타트업의 기민함이 더해지니 어디에도 안 밀리는 파워가 만들어진다. 이 부사장은 "에스트래픽을 세우면서 삼성에서 좋은 것과 복리후생은 다 가져오고 나쁜 건 다 버리자고 얘기했다. 줄 간격, 여백 등을 따져서 보고서를 만들지 않고 모든 보고는 구두나 메일로 한다. 너무 재고 따지고 다듬는 것은 안 한다. 잘 하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래 모빌리티에서 에스트래픽이 들여다 보는 부분은 주로 도로 인프라다.

이동수단간 연계와 지불수단 통합을 포함한 통합이동서비스(MaaS)도 공들이는 영역이다. 철도, 지하철, 버스 등 모든 모빌리티 생태계를 연결해 가고 싶은 곳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인프라 단에서 해결하기 위한 요소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에 필요한 인프라 기술도 연구한다. 자율협력 주행을 위한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C-ITS)에 필요한 기지국 기술이다. 도로의 개념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시대도 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다. 차량 번호인식 기술을 발전시켜서 차량번호뿐 아니라 사람, 물건 등 객체를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로봇에도 관심이 많다는 이 부사장은 "TCS의 통행권 발권기 내부에는 통행권을 빼서 위로 올리고 옮기고 하는 메카트로직스 기술이 다 들어가 있다. 여기에 액추에이터와 센서 기술을 적용해 보다 인간친화적인 기기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개념설계까지 했다. 기기가 사람 가까이로 움직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차를 너무 좋아해서 삼성SDS 시절 레이싱 스쿨을 다니고 아마추어 레이서로도 활동했다는 이 부사장은 "지금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밝혔다. "가끔 하이패스 설비의 성능 검증을 위해 차량 고속주행 테스트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내가 하겠다'며 손들고 즐겁게 운전한다"면서 "집 앞까지 진짜 편하게 가는 MaaS를 구현하기 위해 B2B 영역의 모든 생태계를 묶는 것이 숙제이자 꿈"이라고 했다.

글·사진=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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