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성준모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손동환 2024. 9. 12. 10:13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2024년 8월호에 게재됐고, 인터뷰는 7월 23일 오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성준모는 선수와 매니저, 코치와 전력분석 등 농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으로 부임했다. 이제는 행정가로서 농구 팬들과 호흡하고 있다.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기 때문에, 농구와 마주한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성준모는 선수와 매니저, 코치와 전력분석 등 농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으로 부임했다. 이제는 행정가로서 농구 팬들과 호흡하고 있다.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기 때문에, 농구와 마주한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미국행 비행기
성준모는 2001년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대전 현대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가 KCC로 매각돼, 성준모는 전주 KCC(현 부산 KCC)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성준모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2~2003시즌 종료 후 상무에 입대했다. 그 후 2005~2006시즌 개막 직전에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2006~2007시즌 개막 직전에는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로 적을 옮겼다.
성준모는 2007~2008시즌까지 개인 통산 154경기를 소화했다. 평균 출전 시간은 7분 13초. 선수로서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를 선택한 성준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선수 시절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전주고등학교 농구부로 합류했습니다. 그때부터 ‘후회없이 농구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에는, 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후회 없이 했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은퇴 후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유학을 결정한 이유는 어떤 거였나요?
선수 때에는 그저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한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여러 이유로 은퇴를 결심했고, 은퇴 후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농구 코칭학’을 가르치는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느낀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선수 생활을 할 때에는 구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구단에서 해결을 해줬죠. 그렇지만 유학은 달랐습니다. 저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외로웠습니다. 처절할 때도 있었고, 배고플 때도 많았죠.
그렇지만 미국 유학 생활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유학을 하는 동안,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죠. 실제로, 인생의 고비와 마주했을 때, 유학 시절의 기억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준모는 2001년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대전 현대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가 KCC로 매각돼, 성준모는 전주 KCC(현 부산 KCC)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성준모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2~2003시즌 종료 후 상무에 입대했다. 그 후 2005~2006시즌 개막 직전에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2006~2007시즌 개막 직전에는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로 적을 옮겼다.
성준모는 2007~2008시즌까지 개인 통산 154경기를 소화했다. 평균 출전 시간은 7분 13초. 선수로서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를 선택한 성준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선수 시절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전주고등학교 농구부로 합류했습니다. 그때부터 ‘후회없이 농구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에는, 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후회 없이 했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은퇴 후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유학을 결정한 이유는 어떤 거였나요?
선수 때에는 그저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한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여러 이유로 은퇴를 결심했고, 은퇴 후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농구 코칭학’을 가르치는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느낀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선수 생활을 할 때에는 구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구단에서 해결을 해줬죠. 그렇지만 유학은 달랐습니다. 저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외로웠습니다. 처절할 때도 있었고, 배고플 때도 많았죠.
그렇지만 미국 유학 생활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유학을 하는 동안,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죠. 실제로, 인생의 고비와 마주했을 때, 유학 시절의 기억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도자의 길
성준모는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성준모는 울산 모비스에서 매니저를 맡았다. 하지만 1년 만에 고양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로 소속을 또 한 번 옮겼다. ‘코치’라는 자리가 성준모를 기다렸기 때문. ‘지도자 성준모’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성준모 코치는 추일승 감독(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서동철 코치(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밑에서 경력을 쌓았다. 약 2년 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러나 오리온스와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농구 코트를 떠날 뻔했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현 KBL 경기본부장)이 성준모 코치를 품에 안았다. 모비스 선수들을 지도하게 된 성준모 코치는 3개의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2013~2014, 2014~2015, 2018~2019) 지도자로서의 기반 또한 더 탄탄하게 다졌다.
2011년부터 오리온스에서 코치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유학을 하고 있을 때, 추일승 감독님께서 “NCAA FINAL 4를 가보려고 하는데, 너가 통역을 해줄 수 있겠느냐?”라고 연락을 주셨어요. 저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때 추일승 감독님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2010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2010~2011시즌에 모비스의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추일승 감독님께서 유재학 감독님에게 직접 “(성)준모를 코치로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오리온스로 가게 됐습니다.
오리온스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외국 선수를 영상으로 분석하고, 팀에 필요한 패턴을 제작했습니다. 처음 코치를 했음에도, 많은 임무를 받았죠. 돌이켜보면, 기초를 닦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집으로 치면, 뼈대를 구축한 시간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오리온스에서의 경험이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3년부터 모비스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오리온스 시절과는 어떤 게 달랐나요?
오리온스 같은 경우, 공격에 조금 더 집중했습니다. 수비 훈련을 큰 틀에서만 진행했죠. 그러나 모비스 같은 경우, 수비 디테일을 강조했습니다. 스텝 놓는 방법까지 세밀하게 가르쳤죠.
10년 넘게 코치를 했습니다. 어떤 점을 배우셨나요?
코치는 모든 일에 세밀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또,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면, 어떤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팀한테 작은 구멍으로 작용합니다. 작은 구멍을 메우지 못한 팀은 서서히 무너집니다. 그런 이유로, 구성원 간의 생각을 취합하는 게, 농구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모비스가 우승할 때, 모비스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팀이 유기적으로 돌아갔어요. 그런 기억이 회사 생활에 큰 도움을 줬고, KBL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준모는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성준모는 울산 모비스에서 매니저를 맡았다. 하지만 1년 만에 고양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로 소속을 또 한 번 옮겼다. ‘코치’라는 자리가 성준모를 기다렸기 때문. ‘지도자 성준모’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성준모 코치는 추일승 감독(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서동철 코치(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밑에서 경력을 쌓았다. 약 2년 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러나 오리온스와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농구 코트를 떠날 뻔했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현 KBL 경기본부장)이 성준모 코치를 품에 안았다. 모비스 선수들을 지도하게 된 성준모 코치는 3개의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2013~2014, 2014~2015, 2018~2019) 지도자로서의 기반 또한 더 탄탄하게 다졌다.
2011년부터 오리온스에서 코치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유학을 하고 있을 때, 추일승 감독님께서 “NCAA FINAL 4를 가보려고 하는데, 너가 통역을 해줄 수 있겠느냐?”라고 연락을 주셨어요. 저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때 추일승 감독님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2010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2010~2011시즌에 모비스의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추일승 감독님께서 유재학 감독님에게 직접 “(성)준모를 코치로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오리온스로 가게 됐습니다.
오리온스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외국 선수를 영상으로 분석하고, 팀에 필요한 패턴을 제작했습니다. 처음 코치를 했음에도, 많은 임무를 받았죠. 돌이켜보면, 기초를 닦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집으로 치면, 뼈대를 구축한 시간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오리온스에서의 경험이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3년부터 모비스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오리온스 시절과는 어떤 게 달랐나요?
오리온스 같은 경우, 공격에 조금 더 집중했습니다. 수비 훈련을 큰 틀에서만 진행했죠. 그러나 모비스 같은 경우, 수비 디테일을 강조했습니다. 스텝 놓는 방법까지 세밀하게 가르쳤죠.
10년 넘게 코치를 했습니다. 어떤 점을 배우셨나요?
코치는 모든 일에 세밀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또,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면, 어떤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팀한테 작은 구멍으로 작용합니다. 작은 구멍을 메우지 못한 팀은 서서히 무너집니다. 그런 이유로, 구성원 간의 생각을 취합하는 게, 농구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모비스가 우승할 때, 모비스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팀이 유기적으로 돌아갔어요. 그런 기억이 회사 생활에 큰 도움을 줬고, KBL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진 역할
성준모 코치의 보직은 2021~2022시즌 종료 후 변경됐다. ‘현대모비스 전력분석팀장’이 달라진 직함이었다. 비록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농구인으로서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다. 해외리그와 대학농구, KBL 10개 구단 등 농구를 더 넓게 볼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팀장 성준모’라는 이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성준모 팀장이 2022~2023시즌 종료 후 현대모비스를 떠나서였다. 아쉬움을 안았지만, 농구와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이는 ‘농구인 성준모’에게 색다른 자극으로 다가왔다.
2022~2023시즌에는 전력분석팀장을 맡으셨습니다. 코치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코치는 감독의 방향을 읽어야 합니다. 그 방향을 선수들한테 세밀하게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코치는 보조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력분석은 다릅니다. 외국 선수와 유망주들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고, 코칭스태프에서 요구하는 영상 및 패턴을 수집해야 합니다. 전략의 기반을 마련해야 해요. 농구를 접하는 방법이 코치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전력분석을 하는 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이 있다면?
농구를 조금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구 이해도가 더 높아졌던 것 같아요.
2022~2023시즌 종료 후 코트를 잠시 떠나셨습니다. 그 후에는 회사원으로 일을 하셨다고요.
학교 선배님이신 임권호 선배님께서 ‘샤인 하우징’이라는 회사를 운영하셨고, 그 분께서 저에게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셨습니다. 저는 선배님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팀S’라는 부서의 부장을 맡았습니다.
부장이기는 했지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 생활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선배님께서 “한 곳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은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 또, 회사와 농구단 모두 같은 곳이니,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를 채용해준 회사에 보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해야 할 것들을 점검했고, 팀원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했습니다. 덕분에, 팀원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저 역시 많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팀원들에게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어요.
성준모 코치의 보직은 2021~2022시즌 종료 후 변경됐다. ‘현대모비스 전력분석팀장’이 달라진 직함이었다. 비록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농구인으로서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다. 해외리그와 대학농구, KBL 10개 구단 등 농구를 더 넓게 볼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팀장 성준모’라는 이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성준모 팀장이 2022~2023시즌 종료 후 현대모비스를 떠나서였다. 아쉬움을 안았지만, 농구와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이는 ‘농구인 성준모’에게 색다른 자극으로 다가왔다.
2022~2023시즌에는 전력분석팀장을 맡으셨습니다. 코치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코치는 감독의 방향을 읽어야 합니다. 그 방향을 선수들한테 세밀하게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코치는 보조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력분석은 다릅니다. 외국 선수와 유망주들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고, 코칭스태프에서 요구하는 영상 및 패턴을 수집해야 합니다. 전략의 기반을 마련해야 해요. 농구를 접하는 방법이 코치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전력분석을 하는 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이 있다면?
농구를 조금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구 이해도가 더 높아졌던 것 같아요.
2022~2023시즌 종료 후 코트를 잠시 떠나셨습니다. 그 후에는 회사원으로 일을 하셨다고요.
학교 선배님이신 임권호 선배님께서 ‘샤인 하우징’이라는 회사를 운영하셨고, 그 분께서 저에게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셨습니다. 저는 선배님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팀S’라는 부서의 부장을 맡았습니다.
부장이기는 했지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 생활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선배님께서 “한 곳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은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 또, 회사와 농구단 모두 같은 곳이니,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를 채용해준 회사에 보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해야 할 것들을 점검했고, 팀원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했습니다. 덕분에, 팀원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저 역시 많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팀원들에게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어요.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
KBL은 2023~2024시즌 종료 후 큰 변화를 겪었다. 총재사가 DB로 변경됐고, 총재-사무총장-경기본부장 등 고위층 인사도 달라졌다. 그런 이유로, 이수광 총재와 신해용 사무총장이 2024~2025시즌부터 KBL 팬들과 새롭게 호흡한다.
여기에 KBL 최고의 명장이었던 유재학 전 현대모비스 감독이 KBL 경기본부장으로 부임했다. 유재학 본부장은 심판 및 판정 관련 업무를 맡는다. ‘신뢰’와 ‘공정’, ‘강한 몸싸움’ 등을 강조하고 있다.
야인으로 생활하던 성준모도 농구계로 돌아왔다. 7월부터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이라는 직함을 맡았다. 이제는 행정가로서 농구 코트와 호흡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 관련 규정’과 ‘경기 규칙’, ‘판정’ 등 여러 내용들을 공부하고 있다.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비록 제가 코트를 떠나있었지만, 농구에 관심을 꾸준히 기울였습니다. 평생 해왔던 게 농구였으니까요. 그러던 찰나에, 유재학 본부장님께서 “내가 KBL로 가게 됐는데, 너도 나랑 같이 일을 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본부장님의 말씀에 바로 이직을 결심했고요.
선수와 매니저, 코치와 전력분석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행정가’입니다.
운이 정말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도 존경하는 분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존경하는 본부장님과 농구 관련 업무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후회를 남기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확한 업무는 어떻게 되나요?
경기본부에서 행정 업무를 맡고 있고, 심판 관련 업무도 이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차기 시즌을 위해, 판정 관련 미팅 및 회의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경기본부 운영차장’으로서 꼭 해야 할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본부에 있는 인원으로서, 심판 간의 가교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또, 본부장님께서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코트에 있는 동안, 힘든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KBL에 합류한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프로농구의 발전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팬 여러분께서도 저를 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KBL은 2023~2024시즌 종료 후 큰 변화를 겪었다. 총재사가 DB로 변경됐고, 총재-사무총장-경기본부장 등 고위층 인사도 달라졌다. 그런 이유로, 이수광 총재와 신해용 사무총장이 2024~2025시즌부터 KBL 팬들과 새롭게 호흡한다.
여기에 KBL 최고의 명장이었던 유재학 전 현대모비스 감독이 KBL 경기본부장으로 부임했다. 유재학 본부장은 심판 및 판정 관련 업무를 맡는다. ‘신뢰’와 ‘공정’, ‘강한 몸싸움’ 등을 강조하고 있다.
야인으로 생활하던 성준모도 농구계로 돌아왔다. 7월부터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이라는 직함을 맡았다. 이제는 행정가로서 농구 코트와 호흡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 관련 규정’과 ‘경기 규칙’, ‘판정’ 등 여러 내용들을 공부하고 있다.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비록 제가 코트를 떠나있었지만, 농구에 관심을 꾸준히 기울였습니다. 평생 해왔던 게 농구였으니까요. 그러던 찰나에, 유재학 본부장님께서 “내가 KBL로 가게 됐는데, 너도 나랑 같이 일을 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본부장님의 말씀에 바로 이직을 결심했고요.
선수와 매니저, 코치와 전력분석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행정가’입니다.
운이 정말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도 존경하는 분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존경하는 본부장님과 농구 관련 업무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후회를 남기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확한 업무는 어떻게 되나요?
경기본부에서 행정 업무를 맡고 있고, 심판 관련 업무도 이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차기 시즌을 위해, 판정 관련 미팅 및 회의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경기본부 운영차장’으로서 꼭 해야 할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본부에 있는 인원으로서, 심판 간의 가교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또, 본부장님께서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코트에 있는 동안, 힘든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KBL에 합류한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프로농구의 발전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팬 여러분께서도 저를 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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