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조직 장악력 키우고 대선 준비하려는 포석
국회의원·원외인사·정치신인 등
소통 창구 역할해 격차해소 목적
고비용 구조·자금 투명화 쟁점
지구당 제도 부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지구당 제도의 재도입을 적극 협의하기로 했다."
임기 시작부터 유·불리만 따지며 티격태격하던 22대 국회가 모처럼 공감대를 형성한 현안이 있다. 바로 '지구당 제도의 부활'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회담에서 지구당 부활에 협력하기로 했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과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극한 대치 상황 속에서 이례적으로 여야 합동 토론회를 개최했다. 9월 정기국회 개막에 맞춰 열린 토론회에는 한 대표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직접 참석해 지구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힘을 실었다.
대부분의 사안이 그러하듯 지구당 부활에도 찬성과 반대 의견이 갈린다. 다만 집권 여당과 거대 야당 대표가 뜻을 모은 만큼 반대 의사를 내비치는 당내 일부 의원들과의 이견 조율 작업만 거치면 지구당 부활의 가능성은 여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사사건건 충돌해 왔던 여야가 한목소리로 지구당 부활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정치 셈법이 자리한다.
◇20년 전 폐지된 지구당, 뭐길래?
1962년 12월 정당법 제정에 따라 탄생한 지구당은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설치하는 중앙당 하부조직이다. 지구당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도 받을 수 있다. 지구당은 당원 관리·교육은 물론 지역민과 정당을 이어주던 통로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으로서 역할을 하는 게 본래 취지다. 당시에는 정당법상 정당으로 인정받으려면 국회의원 지역구에 지구당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지구당위원장의 권한 독점, 사무실임대료·인건비 등 막대한 운영비와 이를 고리로 한 정치자금 비리가 폐해로 떠올랐다.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지구당이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부패 정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지구당은 2004년 3월 이른바 '오세훈법' 통과로 42년 만에 사라졌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한 '차떼기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차떼기 사건으로 국민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지구당 폐지는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당원협의회의 사무소 설치를 금지한 정당법을 심판하면서 지구당의 긍정적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상시조직으로서의 지구당은 운영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점, 지구당을 통해 불법적인 자금 유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폐지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당 폐지 이후 정당의 구성은 중앙당·시도당으로 바뀌었다. 대신 정치권은 2005년 정당법 재개정으로 당원협의회(지역위원회) 제도를 신설했는데 지구당과 비슷한 구조지만 정당법 제37조 제3항에 따라 사무소를 두지 못하고 후원금도 선거 기간에만 모금할 수 있는 등 제한적이다. 현재 국민의힘, 민주당 등 주요 정당들은 명칭만 다를 뿐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당원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꾸준했던 지구당 부활 시도, 이유는?
지구당은 22대 국회뿐 아니라 이전부터 꾸준히 부활 시도가 있었다. 17~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거나 여야 간 대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돈 먹는 하마'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거대 정당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냉랭한 국민 여론에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군불을 땠고 11년 만에 이뤄진 여야 대표 회담에서 공감대를 확인하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고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확정한 뒤 수락연설에서 지구당 부활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양당 대표를 비롯해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는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정치 신인 간의 격차 해소다. 현역 의원들은 지역 사무소를 활용해 지역 관리를 할 수 있고 후원회를 통해 후원금도 모을 수 있다. 반면 원외위원장은 사무실을 설치할 수 없는 데다 후원금도 받지 못한다. 당세가 약한 지역의 경우 당원협의회 활동에 더욱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신인·청년들로 이뤄진 원외 인사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에 원외 인사들도 현역 의원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설치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 풀뿌리 정당 정치 활성화, 지역과 중앙의 소통 창구 역할 등도 지구당 부활의 명분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진짜 이유'는 조직 장악력을 키우고 대선을 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한 대표 입장에서는 원내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원외 조직의 지지가 필수적으로 지구당이 부활한다면 이들 중 상당수를 친위그룹화 할 수 있다. 또 총선 참패의 원인이었던 수도권 조직을 재구축함으로써 민심을 다질 수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지구당을 활용해 당원 중심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에서도 팬덤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지지세가 약한 영남 지역의 세력 강화도 기대할 만하다.
◇정치 부패 등 반대도 만만찮아, 입법 속도 낼까
극복해야 할 쟁점은 고비용 구조 차단과 정치자금 투명화다. 지구당 부활에 반대하는 이들은 고비용 구조와 이로 인한 정치부패 등 앞서 나타났던 부작용들을 우려한다. 특히 지구당 부활이 지역 풀뿌리 정당 정치 활성화가 아니라 공천권을 가진 중앙당의 집권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거대 정당에 비해 조직 등 여러가지 측면서 여유가 없는 소수 정당의 경우 지구당 부활이 양당 체제 고착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본다.
지구당 폐지를 주도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근 여야 대표가 함께 추진하려고 하는 지구당 부활은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돈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며 "정치개혁에 어긋나는 명백한 퇴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난 5월 "(지구당 부활 추진은) 반 개혁일 뿐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 접근에서 나온 말로 부패 위한 제도적 기틀 마련"이라고 직격했다. 조국 대표는 9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결국 거대 양당 소속 정치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5월 연석회의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역 토호와 유착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시대가 변했고 과거 폐해를 직접 확인한 만큼 법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게 지구당 찬성 측의 반론이다. 자발적인 당원의 수가 크게 늘어난 만큼 불법자금 수요가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지구당 부활의 키를 쥔 핵심은 국민 여론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월10~12일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구당 부활 '반대'는 46%, '찬성'은 20%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반대 시선을 어떻게 찬성으로 돌릴지가 관건인 셈이다.
여야는 이르면 오는 26일 지구당 부활을 담은 정당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윤상현·김영배 의원을 비롯해 다수의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2일 지구당 부활 내용이 담긴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을 소위원회로 회부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발간한 '지구당 부활의 쟁점과 시사점, 제22대 국회에서 지구당 부활 가능할까?' 보고서에서 "고비용 구조와 그로 인한 정치부패가 지구당 폐지의 한 원인이었던 만큼 합법적인 정치 자금을 통해 운영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더불어 당원들의 실질적인 참여에 기반한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확립하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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