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대권 다시 잡은 히딩크의 기록도 조족지혈일 수밖에 없어[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거스 히딩크 감독(77)은 한국인한테서 사랑받는다. 대한민국 명예 국민으로서 한때 ‘국민 감독’의 절대적 인기를 누렸다. 물론, 한국 축구 국가(A)대표팀을 이끌고 이룬 4강 위업에서 우러난 대중적 지지였다. 2002 한국-일본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때 ‘히딩크와 태극 전사’는 한반도를 열광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 넣었다. ‘축구 변방’이던 한국이 일으킨 거센 격랑에, 전 세계 축구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 선연(善緣)보다는 악연(惡緣)이 먼저였다. 4년 전인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에 참패(0-5)의 쓰라림을 안긴 네덜란드 사령탑이 바로 히딩크 감독이었다. 그룹(E) 스테이지 두 번째 경기에서 대승의 승전고를 울림으로써, 결국 한국 사령탑이던 차범근 감독을 중도 퇴진의 수렁에 빠뜨렸다.
어쨌든 히딩크 감독은 세계적 명장으로 위명을 떨쳤다. 자신의 모국인 네덜란드를 비롯해 한국(2001~2002년)→ 호주(2005-2006년)→ 러시아(2006~2010년)→ 튀르키예(2010-2011년) 등 5개국 A대표팀을 지휘하며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월드컵에서만도, 두 차례 4강(1998·네덜란드, 2002·한국)과 한 차례 16강(2010·호주)의 결실을 올렸다.
물론, 클럽을 이끌면서도 대단한 발자취를 아로새겼다. 무엇보다도 1987-1988시즌에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을 지휘해 UEFA[유럽축구연맹]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을 비롯해 트레블의 금자탑을 쌓은 성과는 실로 돋보인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A대표팀 사령탑에 두 차례나(1995~1998년, 2014~2015년) 앉았다. 16년 만에, 고희(古稀: 일흔 살)를 눈앞에 두고 네덜란드 A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데에서도 얼마나 지휘력을 높게 평가받은 명장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다.
한 나라 축구팀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A대표팀을 지휘할 수 있음은 감독에게 그만큼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한 차례도 아닌 두 번씩이나, 더구나 오랜 세월의 흐름을 거부하고 다시 지휘봉을 잡는다는 사실은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그러면 이처럼 기나긴 시간을 건너뛰어 한 나라 A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한 최장 기록도 히딩크 감독이 세웠을까? 아니다. 히딩크 감독이 기록한 16년 55일은 이 부문 최고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 할 만하다. 최고 기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대체 이런 엄청난 기록을 누가 언제 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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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루체스쿠, 약 40년 만에 루마니아 A대표팀 지휘봉 다시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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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부터 리그 스테이지에 들어간 2024-2025 UEFA 네이션스리그는 한 감독의 사령탑 복귀가 이야깃거리로 떠오르며 흥미를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르체아 루체스쿠 감독이다. 우리 나이로 산수(傘壽: 여든 살)인 루체스쿠 감독이 루마니아 A대표팀을 이끌고 치열한 각축전이 불꽃을 튀기는 전장에 나왔으니 그럴 만하다.
20세기에 활약하던 감독이 21세기에 접어든 지 23년을 훌쩍 지난 오늘날에 다시 승부사의 길에 들어섰으니 눈길이 쏠리지 않을 리 없다. 강산이 무려 네 번씩이나 변했는데,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을 불사르고 있으니 절로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루체스쿠 감독은 일찍이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루마니아를 이끌었다.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장년 시절에 사령탑을 지휘했다. 1986년 8월 20일, 노르웨이전(2-2 무)이 첫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치른 마지막 한판이었다. 이 기간에 두 번(1982 스페인, 1986 멕시코) 열린 월드컵 마당에 한 번도 루마니아를 이끌고 나가지 못했으니,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경력은 끝인 듯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2026 북중미 3개국(미국·캐나다·멕시코)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을 꿈꾸는 루마니아가 A대표팀 사령탑으로 루체스쿠 감독을 낙점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2전3기의 야망을 부풀리는 노익장의 열정을 믿지 않았나 싶다.
마침내, 루체스쿠 감독은 ‘트리콜로리(Tricolorii·삼색: 루마니아 축구 A대표팀 별칭)를 이끌고 전장에 나섰다. 2026 월드컵 전초전이랄 수 있는 2024-2025 네이션스리그에서, 2전3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리그 C2에서, 원정 코소보전(3-0 승)과 홈 리투아니아전(3-1 승)을 휩쓸며 쾌조의 2연승을 올렸다.
루체스쿠 감독은 코소보전을 지휘하며 뜻깊은 감회에 젖었을 듯하다. 38년 17일 만에 조국의 A대표팀을 지휘해 낙승을 거뒀으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한 나라 A대표팀 사령탑에 두 번 앉으며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에서, 루체스쿠 감독의 기록은 단연 압권이다. 루체스쿠 감독이 돌아오기까지 이 부문에서 선두였던, 올해 초 타계한 마리우 자갈루 전 브라질 감독의 기록(20년 170일)보다 거의 배에 이른다(표 참조).
루마니아는 1998 프랑스 대회(16강)를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 마당을 밟지 못했다. 루체스쿠 감독이 자신의 꿈인 2전3기를 이루고 아울러 28년 만의 본선 진출을 노리는 자국민의 염원을 구현할 수 있을지, 앞으로 행보가 궁금하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이번 네이션스리그에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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