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팔로 업’ 합니다…불법합성물 누가 만드나

서보미 기자 2024. 9. 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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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한겨레 엑스

서보미 | 뉴콘텐츠부장

“평일 저녁이라 힘들기도 해서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왔어요. 자꾸 무기력해지는데, 그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요.”

10명 남짓의 여성이 빙 둘러앉은 방. 문가에 앉았다가 맨 처음 자기소개를 하게 된 여성은 ‘불법합성(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한겨레 뉴스레터 ‘휘클리’가 준비한 대면모임 ‘야심화반’의 주제는 ‘36주 임신중지’였기에 조금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여성들도 “같은 마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일주일 중 가장 힘들다는 목요일 저녁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2030 여성들은 일부러 힘든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모임 일주일 전인 지난달 22일, 한겨레의 보도로 알려진 텔레그램 불법합성방의 실체는 2030 여성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저희 부서가 엑스(옛 트위터)에 소개한 ‘딥페이크 텔레방에 22만명…입장하니 “좋아하는 여자 사진 보내라”’라는 기사의 타임라인은 무려 1360만명(11일 기준)이 조회했습니다. 엑스를 운영하면서 본 적 없는 숫자입니다. 불법합성물을 유료로 제작하는 방에 22만명이 접속해 있다는 사실에 엑스 이용자들은 분노를 넘어 절망했습니다. 2019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무너졌다고 믿었던 지옥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람 분명히 있다. 저 정도면 누굴 믿어.” “22만명…. 2023년 출생아 수가 23만명이었다.” 제작방에 있는 22만명이 모두 한국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성들에게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가해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야 하는 현실이 공포인 겁니다.

여성들은 연이은 후속보도를 전하는 한겨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뉴스레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는데, 피해자의 상당수는 한눈에 봐도 10대였습니다. 한 엑스 이용자는 “우리 학교도 딥페이크 만들고 유포한 애가 강제전학, 유포한 애들은 출석정지 당했는데, 무서운 건 피해당한 애들이 다 피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성을 혐오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불법합성 성범죄가 놀이처럼 유행하는데도 학교는 가해자를 제대로 지도하지도, 피해자를 보호하지도 못하는 듯했습니다. 또 다른 엑스 이용자는 “우리 반(고등학교)에 딥페이크 성범죄자 있는데, 그는 자기가 뭘 잘못한지를 모르는 건지 떳떳하게 다닌다. 담임은 ‘예전에 그런 일이니까 용서하라’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딥페이크 ‘셀프 구제’ 여성들…“방치하면 더 악독한 수법 나올 것”’이라는 기사엔 유독 엑스 답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제보를 모아 피해 지역·학교 명단을 작성한 10대 여성이 아무리 원했다 하더라도 실명보도를 하면 안 됐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그가 ‘좌표’를 찍혀 고통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인터뷰이가 ‘강력하게’ 실명 보도를 원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그가 이 선택으로 인해 예상될 피해를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내가 저항하고 있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싶었을 마음이겠지.” 물론 “나는 이 사람보다 나이는 두배인데 용기는 절반도 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 이도 많았습니다.

3주간 지켜본 여성들은 서로를 걱정했고, 무기력해지지 말자고 도닥였고, 힘을 보탤 방법을 찾았습니다.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나가 ‘성평등 퇴행시킨 정부가 공범이다’라는 손팻말을 드는 여성도 있지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여성도 많았습니다. 뉴스레터 구독자인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본인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이번 사건을 소개하면서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사진을 합성하거나 유포해선 안 되며 나체 사진에 합성하는 것은 범죄”라고 교육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뉴스레터 구독자는 “계속해서 뉴스를 챙겨 보고,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가해자가 어떤 논리로 법망을 피해 가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지를 잘 ‘팔로 업’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처럼 저희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끔찍하지만 외면해선 안 되는 뉴스를 전달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모아 나가겠습니다.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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