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빨라진 은행 인사에 덩달아 움직이는 자리들
[편집자주] 5대 은행을 비롯한 주요 금융사의 CEO 임기가 올해 말 만료된다. 새로운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처음 적용되면서 CEO 인사가 9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3개월 간 진행되는 선임 절차에 검증의 정확도는 높아질 수 있으나 현장의 피로도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빨라진 금융권 인사 레이스 장단점을 짚어봤다.
올해 연말 금융권 CEO(최고경영자) 선임 못지 않게 직제 개편과 임원 인사도 화두가 될 전망이다. 특히 지배구조법 시행에 따라 도입된 '책무구조도'에 변경된 임원의 직책과 책무 등을 명시해야 한다. 책무구조도를 바꾸려면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유연한 인사가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융감독원에 책무구조도 초안을 제출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10월 말 조기 제출을 염두에 둔 은행들은 책무구조도와 관련해 법적 조언을 받고 책무 범위를 정하기 위한 내용을 내부적으로 최종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책무구조도는 CEO(최고경영자) 등 임원들의 직책·책무별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책임을 명시하는 문서다. 이사회 의결을 받고 의결일 7영업일 내에 금감원에 제출해야 한다. 책무기술서에는 직책·직위·소관부서·주관회의체 등 임원의 정보가 담기고 해당 임원이 맡은 책무·책무 세부내용·겸직사항 등이 기재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책무구조도가 인사를 어렵게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원이 맡은 책무·직무에 변동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세부 내용을 새로 쓰고 이사회 의결도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로워서다. 연말연시 등 대규모 조직개편과 인사가 이뤄지는 시기엔 더욱 복잡해진다. 임시조직인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할 때도 조직장이 임원이면 책무구조도를 조정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TF라고 해도 조직장이 임원이라면 책무를 어디까지 맡아야 할 지 논의해서 책무구조도를 변경해야 한다"며 "조직장을 어떤 직급의 임원이 맡고 어떤 책임을 질지 정해야 해서 인사를 주저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애자일(agile) 조직'에 익숙한 집단일수록 유연한 인사가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자일 조직이란 빠르게 목표 업무를 달성하기 위해 모였다 흩어지는 프로젝트 조직을 말한다. 최근에는 시중은행들도 마케팅·여신 부문 등에서 시장 변화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는 애자일 조직을 꾸린다.
은행권 관계자는 "애자일 조직은 빠르게 구성하는 만큼 해체도 빨라서 '타이밍'이 핵심"이라며 "예컨대 단계적으로 해외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임원의 책무를 추가하느라 책무구조도를 매번 고쳐야 한다면, 임원 중심의 조직을 구성하기 힘들고 시장 변화에 빠른 대응도 힘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부통제 강화가 책무구조도의 핵심인 만큼 여신 부문과 리스크 부문 책임자 자리는 '무덤'이 될 것이란 우려가 지배적이다. 최근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역설적으로 크고작은 금융사고가 더 빈번하게 적발되면서 부담은 더 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로 은행권이 신뢰 회복을 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내부통제를 책임지는 자리는 선뜻 가기 어려운 '독이 든 성배'"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로 인해 인사가 어렵고 이사회 개최가 번거롭다는 의견을 두고 '금융권의 잘못된 문화'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중요한 일들을 이사회 구성원이 직접 봐야 한다"며 "어떻게 보면 책무구조도가 이사회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빨라진 CEO(최고경영자) 인사가 은행 경영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후보 인사평가 등이 빨라지고, 새해 사업계획 제출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는 10월 국정감사 일정 등을 감안할 때 3개월의 CEO 검증기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올해 말 은행장 임기종료를 앞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이달부터 일제히 CEO 승계절차에 나선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말 금융(은행)지주와 은행 CEO 승계절차를 임기만료 3개월 전부터 시작하도록 '모범관행'을 발표했다.
은행권에서는 빨라진 은행장 인사로 임직원 인사평가가 예년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요 은행장 후보군을 이루는 임원들의 경영·성과평가가 마무리돼야 정확한 인사 검증을 할 수 있어서다. 실제 일부 은행에서는 올해 인사평가가 다소 앞당겨졌다.
정확한 임원 평가를 위해서는 소속된 조직의 인사평가도 함께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직원의 인사평가도 빨라질 수 있다. 하반기 KPI(성과평가제도)의 경우 평가 기준이 만들어지자마자 평가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돈다.
아울러 인사평가와 함께 내년 사업계획 작성도 앞당겨질 수 있다. CEO 인사가 경영 전반의 사업 일정에 영향을 주는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9월부터는 내년 사업계획 작성에 들어가기는 한다"며 "원래도 인사평가에 연말 기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명목상 CEO 승계절차가 3개월 앞으로 당겨졌지만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마다 10월에 국회에서 열리는 국감 때문이다. 국감에서 다뤄질 내용이면 대부분 내부에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 있고, 내부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농협중앙회 산하의 농협금융지주나 농협은행, 과거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우리금융그룹과 우리은행은 국감 결과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감이 끝나야 제대로 된 임원의 인사평가가 될 수 있고, 은행장 후보 평가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요 임원 인사평가는 국감이 끝나야 제대로 될 수 있다"며 "CEO 선임 절차가 3개월 앞당겨진 것이 올해가 처음이라 다들 생소해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금융지주 계열의 보험·카드사 CEO(최고경영자) 인사가 빨라진 은행장 선임에 따라 덩달아 빨라졌다. 금융지주가 은행장 인사검증을 시작하면서 계열 보험·카드사 CEO 인사를 한꺼번에 진행하기 때문이다. 임기종료를 앞둔 금융지주 계열 보험·카드사 CEO는 대부분 '2+1' 관행에 따라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11일 2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지주는 이달부터 은행장을 비롯해 보험·카드사 등 계열사 CEO를 결정하기 위한 인사절차에 들어간다. 이미 신한금융은 은행장을 비롯해 카드, 보험 등 계열사 CEO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
보험·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사는 은행과 달리 새로운 지배구조 모범관행의 적용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은행과 비은행 계열사의 CEO 인사가 금융지주에서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비은행 계열사도 이달 중 CEO 인사검증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모범관행에 따르면 은행은 임기가 만료되기 최소 3개월 전부터 승계절차를 가동해야 한다.
주요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 중 올해말 CEO 임기만료를 앞둔 회사는 신한라이프·신한EZ손해보험·KB라이프생명 3개사다. 3개사 CEO 모두 연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영종 신한라이프 사장과 이환주 KB라이프생명 사장은 올해 2년 임기가 끝나 1년 더 연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지주 계열사 CEO는 보통 2년 임기만료 후 1년 더 기회가 주어진다.
두 회사의 실적이 나쁘지 않다는 점도 연임 가능성을 높인다. 이영종 사장은 취임 후 업계 2위 도약을 목표로 GA(법인보험대리점) 채널 전략강화 등 보장성보험 판매를 확대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으로 4724억원을 거둬 연간 순익 5000억원대 시대를 앞두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전년보다 소폭 오른 3129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이환주 KB라이프생명 사장은 푸르덴셜생명보험과 KB생명보험의 통합법인인 KB라이프생명의 초대 대표이사로 낙점돼 약 2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KB라이프생명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2023억원으로 금융자산 평가손익 영향 등으로 전년동기에 비해 감소했지만 보험손익이 같은기간 13% 증가했다.
강병관 신한EZ손해보험 사장은 회사가 출범한 2022년 7월부터 회사를 이끌어 임기 3년차를 맞았다. 회사가 아직 적자지만 자리를 잡는 과정이라 금융지주가 대표이사 교체카드를 쓰지 않을 확률이 높다.
주요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도 대부분 무난하게 연임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KB국민·우리·하나카드 수장은 올해말 임기가 만료된다.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 박완식 우리카드 사장, 이호성 하나카드 사장은 지난해초 임기를 시작해 올해 2년차를 맞았다. 2+1년 관행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문동권 사장과 이호성 사장은 고금리로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6219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카드사 중 순익 규모 1위다. 올해 상반기에도 1년 전보다 20% 증가한 3808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신한카드는 업계의 시장지배력 지표인 신용판매 점유율(MS) 순위에서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나카드는 해외여행 특화카드인 '트래블로그' 돌풍으로 올해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트래블로그의 인기는 이호성 사장이 취임한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트래블로그의 흥행 덕에 하나카드의 해외 체크카드 점유율은 약 50%를 유지 중이다. 하나카드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116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1% 성장했다.
이창권 KB국민카드 사장은 2+1년 임기를 채웠다. 이창권 사장은 2022년초 취임해 지난해 1년 연임에 성공했다. KB국민카드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2536억원으로, 1년 전보다 31% 성장했다. 또 임기동안 쿠팡과 독점제휴를 통해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인 '쿠팡와우카드'를 출시해 흥행을 이끌었다. 쿠팡와우카드는 출시 7개월 만에 누적 50만장을 돌파했다.
이병권 기자 bk223@mt.co.kr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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