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최초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 나올 수 있을까
데이비드(David)란 이름은 성경 속 ‘다윗’에서 유래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데이비드 김의 여정에 줄곧 따라붙는 비유다. 한국계 이민 2세,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를 둔 성소수자, 이민·아동 인권 변호사이자 풀뿌리 운동가. 어느 방면으로 보나 미국 정치권에서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그런 그가 11월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캘리포니아 34지구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다. 2020년과 2022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다(미국 연방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다). “‘Third time’s the charm(삼세번 만의 행운)’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세 번째 시도는 꼭 성공할 겁니다.” 다문화의 용광로에서 나타난 1984년생 정치인의 말에 영어와 한국어가 섞였다.
데이비드 김은 8월20일 한국에 들어왔다. 2년 만의 방문이다. 2022년 12월 다큐멘터리 〈초선〉 홍보를 위해 한국에 왔다. 202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국계 미국인 5명의 도전을 담은 영화로, 그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다뤄진다.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이 주인공이라 실망하지 않으셨어요?” 8월24일 인터뷰를 위해 〈시사IN〉 편집국을 찾은 김 후보가 웃으며 물었다. 다섯 후보 중 유일하게 낙선했지만 그만큼 ‘전에 없던’ 캐릭터였다. 기업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며 홍보 전단지를 직접 뿌리고, 경찰력 감축과 기본소득 같은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터무니없이 질 줄 알았는데 6%포인트로 석패했다. 상대 후보는 그보다 15배 넘는 선거비용을 들였다.
세 번째 선거를 앞두고 “한 장이라도 더 선거 홍보 전단지를 돌려야 할 시간”에 한국에 온 이유가 있다. 제10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인 사회의 지지가 간절했다. 2020년엔 47%, 2022년엔 48.8% 득표율을 기록했다. 실패 원인을 복기해보니 첫 선거에선 한국계 유권자 70%가 투표를 했지만 2년 후엔 30%로 줄어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34지구 주민 70만명 가운데 유권자는 30여만 명이다. 2022년 선거에서 상대 후보와 표차는 불과 3020표로 지역구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였다. “한국계 유권자들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어요.”
한인 사회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컸다. 성소수자로서 본인을 드러내기 주저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도 한동안 ‘반짝하고 사라질 정치인’ 아니겠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제는 달라졌어요. 데이비드는 끈질기더라, 연방의회 가서도 끈질기게 싸울 것 같다고 인정해주시죠.” 2전3기에 나서는 그는 51%를 얻어 승리하는 것이 목표다.
상대 후보인 지미 고메즈는 라틴계 이민자 출신이자 민주당 3선 현역의원이다. 캘리포니아주는 경선에서 당별로 후보를 정하지 않고 당적과 무관하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 2명이 본선에 진출한다. 민주당 소속 두 정치인이 맞붙게 된 배경이다. 히스패닉 인구가 65%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 34지구는 민주당 히스패닉 정치인들의 오랜 홈그라운드였다. 아시아계는 20%다. 데이비드 김은 지난 세 번 선거에서 모두 고메즈 후보와 경쟁했다. 유권자들의 소액 기부만 받는 그의 ‘풀뿌리 선거운동’을 두고 현지 언론은 ‘민주당의 거물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진보적 도전자(〈더랜드(The Land)〉, 2020)’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LA 프로그레시브(LA Progressive)〉, 2024)’이라고 평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뉴욕주 10선 경력의 민주당 하원의원 조 크롤리를 꺾고 선출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하원의원의 선거 캠페인도 풀뿌리 방식이었다. 당시 미국 정치를 뒤흔든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만큼 제도권 정치에서 도전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민자 가정 출신의 풀뿌리 운동가라는 점도 AOC와 닮았다. 데이비드 김은 미국 정치가 바뀌지 않는 고질적인 이유가 기업의 정치 후원금 때문이라고 본다. “지역구 유권자 30만명에게 홍보 전단지를 보내려면 30만 달러가 들어요. 정치자금이 많은 고메즈 후보는 다섯 장씩 보내기도 하죠. 기업에 기대어 당선될 수 있으니 주민들의 삶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어떤 하원의원은 유권자 한 명 만나지 않고도 계속 당선돼요. 우리 지역 유권자들도 2년 반 이상 의원 사무실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된다면 지역 유권자와 만남을 의무화하는 ‘응답하는 대표자 법안(Responsive Representation Bill)’을 가장 먼저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모범 소수자’를 넘어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캘리포니아 34지구는 미국 정치의 뜨거운 쟁점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미국 435개 선거구 중 스무 번째로, 캘리포니아 52개 선거구 중 네 번째로 가난한 지역이다. 오랫동안 방치되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고 대규모 노숙자 지역이 생겨났다. “제 옆집엔 멕시코 출신의 두 가정이 함께 살아요.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요. 다들 투잡, 스리잡을 뛰면서 겨우 살아가고 있어요.” 2010년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데이비드 김도 이민 소송 변호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우버 기사로 뛰었다. 이 지역의 가난은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누적된 결과’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인 LA 한인 타운도 이 선거구에 속해 있다. 데이비드 김의 부모가 1982년 한국을 건너와 처음 정착한 곳이면서 재미 한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장소다. 그 사건은 1992년 4월29일 LA 폭동이다. 상점 주인 두순자 씨가 흑인을 절도범으로 오인해 총격한 사건을 계기로 인종 갈등이 폭발했다. 경찰은 한인 공동체를 철저히 외면했고 한인 1세대와 그 자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들을 대변할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전까지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었다면 LA 폭동을 계기로 ‘코리안 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으로 각성하게 된다. ‘우리의 대변자’를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여덟 살이던 데이비드 김도 그중 한 명이었다. TV 브라운관에서 한국 상점들이 불타고 있는 장면을 봤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버지에게 물으니 우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가슴을 콱 찌르더라고요.” 당시 그가 살던 워싱턴주에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었다. 남들에게 얕보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드러내기로 했다. 초등학교 학급 대표부터 UC 버클리 대학 학생 상원의원(대학 학생회 간부), 학생 80%가 유대인인 뉴욕 예시바 대학 로스쿨에서 최초의 비유대인 학생회장으로 출마했고 당선되었다.
그런 아시아인을 미국 사회는 ‘모범 소수자(Model minority)’로 불렀다. 인종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주류 사회에 진입한 소수자라는 뜻으로, 일종의 환상이자 차별 섞인 꼬리표였다. 최근엔 트럼프의 반이민 정서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안 혐오가 전례없이 극심해지고 있다. “길을 걷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종종 듣게 돼요. 저는 여기서 태어나 한평생 살았는데도 외국인 취급을 하는 거죠.” 지난 30년간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고 〈미나리〉 〈파친코〉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서사도 각광받게 되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김이 보기에 여전히 미국 사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한인 커뮤니티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분위기가 있다. 한인 사회의 문제가 미국 전역의 이슈로 떠오르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LA 한인 타운이 생겨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이곳에서 단 한 명도 한국계 정치인이 연방의회에 진출하지 못 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18년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하면서 부모와 심한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민 1세대로 개척교회를 일군 그의 부모는 공화당 지지자다. 그에게 모욕적인 언사가 쏟아졌고 부자 관계가 틀어졌다. 20개월간 연락을 끊기도 했다. “영화가 나오고 나서 아버지가 거의 앓아 누우셨어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한국에도 알려질 텐데 망신당할 거라고요.” 보수적인 한인 사회에서 ‘가짜 기독교인’이란 비방도 들었다.
나쁜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도 언젠가 용기 내서 커밍아웃하고 싶다’는 한인 성소수자들의 메시지가 전해졌고 그들의 부모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한인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체감할 땐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 “아버지가 제가 당선되면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을 가질 거라고 하셨어요. 게이가 틀린 게 아니고, 성경에서 비판받는 호모섹슈얼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알리려고요.” 영화 〈초선〉의 마지막 프롤로그엔 ‘2022년 7월 데이비드의 아버지가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함을 고백했다’는 문구가 뜬다. 그로서는 당선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캘리포니아 34지구 선거를 주목하는 이유
데이비드 김 후보의 캠페인 슬로건은 ‘우리의 시간이다(It’s time for us)’이다. 공식 포스터에는 히스패닉, 아시안, 흑인 등 다양한 얼굴의 캐리커처가 어우러져 있다. 특정 인종의 커뮤니티가 아닌 모든 이민자를 위한 후보라는 인상을 준다. 그중에서도 유권자 절반이 넘는 라틴계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데이비드 김은 이민 2세들의 관심과 응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싼 물가와 저임금, 학자금 대출 부담 등으로, 부모 세대에는 가능했던 ‘아메리칸드림’이 이제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민자에게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이 필요하다는 그는 세입자 권리 강화,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 인도주의에 기반한 이민제도 개혁을 이야기한다. “라틴계 이민 1세분들은 그동안 라틴계 후보를 찍었는데 그 자녀들이 부모를 설득하더라고요. 지미 고메즈는 우리처럼 생겼지만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다고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선 민주당 소속의 두 후보가 가장 선명하게 나뉜다. 이번 선거 결과를 가를 최대 쟁점이기도 하다. 지미 고메즈 후보의 경우 2024년 4월 이스라엘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는 계획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진보 성향의 미국 온라인 언론 〈LA 프로그레시브〉는 2024년 4월26일자 기사에서 “데이비드 후보는 가자지구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휴전을 지지하는 반면, 상대 후보인 지미 고메즈 의원은 휴전을 촉구하는 입법 조치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미 고메즈 의원은 2023~2024년 친이스라엘 정치단체 및 개인으로부터 13만 달러(약 1억7000만원)가 넘는 기부금을 받았다. 이 점을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는 데이비드 김은 이번 선거를 “평화를 위한 선택”으로 설득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팔레스타인의 투쟁에 연대할 수밖에 없어요. 팔레스타인 분쟁과 한반도 위기 모두 근본적인 배경에 모두 미국이 있으니까요. 미국은 평화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김은 미국의 한국계 후보 중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LA 지부는 2020년과 2022년 모두 ‘고메즈보다 더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라며 그를 공식 지지했다. 올해 선거 후원금도 그때보다 빠른 속도로 모이고 있다. 2020년에 18만 달러(약 2억4000만원), 2022년엔 24만 달러(약 3억2000만원)를 모았는데, 이번엔 벌써 30만 달러(약 4억원)를 넘었다. “지역마다 있는 민주당 클럽들이 그동안 저희를 공식 지지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도전자를 지지하면 현직 의원과 관계가 위험해질 테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10군데 중 5군데에서 공식 지지 표명을 했습니다.” 데이비드 김은 선거판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정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이비드 김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워싱턴주 타코마에는 주한 미군과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이주한 한국 여성과 그들의 자녀가 많았다. 두 나라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았던 이들은 아버지의 교회에 와서 위안을 얻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대신해 통역을 전담하면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애환과 삶을 가까이서 보고 들었다. “어딜 가나 아웃사이더가 눈에 들어와요. 제가 정치인이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코리안 아메리칸을 특징짓는 주요한 힘은 ‘회복력(Resilience)’에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 〈초선〉의 한 장면. 선거운동을 돕는 그의 지지자가 이렇게 말한다. “데이비드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언더독이 이기는 스토리를 지지하지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요.” 4년이 지났지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데이비드 김은 LA 한인 타운의 첫 연방 하원의원이 되어 그런 결말을 쓸 수 있을까? “꼭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돼요. 미국 사회를 바꿀 새로운 도전자들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오는 11월의 결과는 지금 미국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 34지구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다윗,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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