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교창·서명진 사례로 본 고졸 얼리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
[점프볼=서호민 기자] ‘역대급 흉작’이라고 평가 받는 2024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는 대학 재학생뿐 아니라 고교 졸업 예정 선수들의 참가 러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근준(경복고)과 박정웅(홍대부고), 이찬영(송도고)은 이미 참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여기에 추가로 두 명이 더 얼리 엔트리를 선언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지만 이들은 드래프트 참가를 철회하고 대학 진학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교창(KCC)과 서명진(현대모비스)은 고졸 선수로 프로에 뛰어들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송교창과 서명진 뿐만 아니라 한 때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선수들이 프로로 직행해 ‘고졸 얼리’가 유행했다. 그런데 유행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넥스트 송교창, 서명진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선수들이 프로 직행을 선택, 다시 한번 고졸 얼리 바람이 불고 있다.
얼리는 선수 개인의 노력, 구단의 비전, 감독의 성향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운도 따라야 한다. 특히 피지컬, 멘탈적으로 덜 여문 고등학생 선수일수록 앞에 언급한 조건들이 더더욱 중요하다.
▲송교창, 서명진 타고난 재능에 지독한 노력 더해진 케이스
“남들 놀 때 두배 세배 더 열심히 노력했다”
진부한 답변일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노력’이라는 게 지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남들보다 4년 더 일찍 나오는거기 때문에 준비가 잘 되어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송교창과 서명진은 고교 시절 랭킹 1~2위를 다투는 등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지만 재능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게 프로다.
추승균 전 감독은 전주 KCC(현 부산 KCC) 감독을 맡고 있을 때, 2015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송교창을 지명한 뒤 4시즌 반 동안 지도한 바 있다.
추승균 전 감독은 “(송)교창이는 몸이 되게 말랐었다. 특히 상체가 얇았다. 대신 하체는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 때 당시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성장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을 때다. 대학 선수들도 프로 선수들과 몸싸움에서 큰 차이를 느끼는데 고등학교 갓 졸업한 선수였으니 아마 그 차이를 더 심하게 느꼈을 거다. 프로에서 형들과 맞붙어 본 뒤로 본인도 프로에 맞는 몸을 갖추기 위해 웨이트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제자 송교창의 신인 시절을 기억했다.
거듭 웨이트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추 전 감독은 “고등학교 선수들과 프로 선수들의 몸싸움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 한번 부딪혀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수 있을 것”이라며 “프로 수준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웨이트량도 더 많이 늘려야 할 것이다. 결국 본인이 노력하기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추 위원은 “부상 우려도 있다. 그래서 부상 관리, 몸 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 전 감독은 ‘성실한 노력파’인 송교창에 대해 더 길게 얘기했다. 그는 “교창이는 농구를 늦게 시작한 케이스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보다 개인 연습에 두배 세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개인 연습도 내가 알기로는 한번도 안 빠지고 했다. 오전, 오후, 야간까지 빠짐없이 꼬박꼬박했다. 팀 훈련 때 잘 안 됐던 부분이 있으면 야간에 코치들한테 슈팅이나 자세 좀 잡아달라며 코치들을 계속 괴롭혔다. 내가 오죽했으면 코치들한테 ‘쟤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서명진이 2018년 현대모비스 입단 후 빠르게 팀의 주전 가드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력에 더해 빠른 적응력·습득력이 있었다.
서명진의 신인 시절, D리그 코치로 그를 가까이서 지도했던 현대모비스 박구영 코치는 “그 당시 D리그 훈련을 제가 시켰는데 제가 얘기한 걸 곧 잘 받아들이고 바로 바로 해내려고 했다. 이런 걸 계속 얘기해도 까먹고 안 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한데 (서)명진이는 제가 얘기한 걸 곧바로 습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면 본인 고집대로 하려는 선수들이 많다. 명진이는 달랐다. 편한 거를 생각 안 했다. 그동안 가져왔던 습관들을 빠르게 내려놓고 팀 시스템에 적응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모비스면 모비스, KCC면 KCC 수비법이 있을 거다. 명진이는 팀 수비 기조를 빨리 캐치해서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서명진의 신인 시절을 돌아봤다.
박구영 코치는 “명진이가 D리그에서 적응하는 속도가 빨라 유재학 감독님께 명진이는 1군에 따라다니면서 감독님께 농구를 배우고, 또 (양)동근이 형과 (이)대성이 등 동 포지션에 좋은 선배들과 부딪히며 성장시키는 게 낫지 않겠냐며 진지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렸다. 유재학 감독님께서도 제 의견을 적극 수용해주셨고 명진이는 예상보다 빠른 시점(2019년 1월) 1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서명진의 1군 데뷔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서명진에 관해서는 구본근 현대모비스 농구단 사무국장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구본근 국장은 “보통 고등학교 3학년이면 신체 밸런스가 잡혀 있지 않은데 명진이는 웨이트 훈련을 많이 해서 몸을 키웠다. 또, 성실했다. 본인이 프로 선수라고 해서 멋을 부리지 않았다”며 “신인 때부터 구단과의 관계도 좋았다. 특히 저와 대화, 교류를 많이하려고 한다. 고민이 있거나 몸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이런 부분은 도움주시면 좋겠다고 사무국에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팀운’ 노력만큼 중요한 요소
“선수는 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해요.” 이제는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계에서 통용되는 격언이 돼 버렸다. 송교창과 서명진의 성공에는 팀적인 운도 따랐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은퇴로 구단은 어린 유망주 육성의 명분을 얻었다.
송교창은 2년차를 맞은 2016-2017시즌 안드레 에밋, 전태풍, 하승진 등 당시 KCC 주축들의 부상을 기회 삼아 팀의 주전 포워드로 올라섰다. 추승균 전 감독은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게 팀운이다. 팀을 잘 만나서 경기를 얼마나 많이 뛸 수 있냐,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며 “교창이도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2년 차 때 베스트 멤버들이 부상으로 빠진 틈을 타 경기를 많이 뛰었다. 그 때 이후로 실력이 확 늘었고 4~5년차에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고 돌아봤다.
서명진은 양동근이 은퇴하고 이대성이 이적한 뒤 현대모비스 가드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서명진의 신인 시절, 당시 현대모비스 수석코치로 유재학 전 감독을 보좌했던 현대모비스 조동현 감독은 “마침 명진이가 드래프트에 나올 때가 양동근 코치가 은퇴를 앞둔 시점이었다. 양동근 코치가 은퇴하게 된다면 가드 포지션에 공백이 불가피해졌고 그래서 우리 팀으로선 가드가 필요했다. (서명진) 가지고 있는 탤런트가 좋았다. 물론 2~3년 정도를 내다보고 키워야겠지만 190cm에 슈팅력도 갖추고 있었고 여러모로 명진이가 우리 팀에 적합한 선수라고 판단했다”며 “물론 그 때 만약 양동근 코치가 좀 더 젊었거나 동 포지션 경쟁자가 많았다면 얘기가 달라질수도 있었겠지만... 고로, 팀을 잘 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동현 감독은 “프로 초기 때는 아무래도 고등학교와는 훈련량에서 큰 차이가 있는 데다 체력, 피지컬적으로 선배들과 몸싸움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힘들어했다. 우리 역시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한 선수인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봤다. 그 과정에서 명진이도 힘들어했다. 그 때는 내가 코치였는데 명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프로는 경쟁의 무대다. 네가 독하게 못하면 구단은 언제든지 FA시장에서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다. 프로는 기다려줄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따끔하게 조언을 해준 기억이 난다. 유재학 감독님께 혼도 많이 났었다. 결국에는 그런 갖은 어려움들을 다 이겨내면서 성장해왔다”고 회고했다.
농구에 진심인 KCC는 오래 전부터 농구단에 대한 아낌 없는 투자로 선수들을 직접 챙기며 ‘농구 명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 예로 KCC는 매년 오프시즌, 선수들을 미국으로 보내 스킬트레이닝 연수를 지원하고 있다. 송교창 역시 데뷔 초기 때부터 오프시즌에 꾸준히 미국에 다녀오며 기술 향상을 이뤄냈다.
올해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오는 11월 15일 열린다. 물론, 아직까지 고교 얼리 성공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프로에 빨리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 관계자들의 멘트를 가감 없이 이 기사에 옮기는 것은 고교 얼리 선수들의 성공을 위해서다. 제2, 제3의 송교창, 서명진이 나온다면 시기와 상관없이 고졸 선수들이 프로에 가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현재까지 역대 최다인 3명의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들이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가운데 이들이 프로 관계자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 제2, 제3의 송교창, 서명진이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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