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인사 레이스 열렸다…은행권 숨막히는 3개월 시작
[편집자주] 5대 은행을 비롯한 주요 금융사의 CEO 임기가 올해 말 만료된다. 새로운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처음 적용되면서 CEO 인사가 9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3개월 간 진행되는 선임 절차에 검증의 정확도는 높아질 수 있으나 현장의 피로도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빨라진 금융권 인사 레이스 장단점을 짚어봤다.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5대 은행을 포함한 국내 주요 은행·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15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당국의 모범관행에 따라 차기 CEO를 정하는 절차가 이달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과거보다 빨라진 승계 절차로 변화가 예상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는 전날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를 열고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임기가 마무리되는 자회사 12곳의 승계절차를 개시했다. 자경위는 '자회사 대표이사 승계후보군(Long-list)' 선정도 완료했다. 향후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 추천을 위한 심의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신한금융 계열사 내 정상혁 신한은행장을 포함해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 이영종 신한라이프 사장, 정운진 신한캐피탈 사장, 이희수 신한저축은행장, 이승수 신한자산신탁 사장, 조경선 신한DS 사장, 정지호 신한펀드파트너스 사장, 김지욱 신한리츠운용 사장, 이동현 신한벤처투자 사장, 강병관 신한EZ손해보험 사장이 올해말 임기가 만료된다. 내년 3월에는 박우혁 제주은행장의 임기도 끝난다.
올해말 CEO 인사는 금융당국의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이 적용되는 첫 사례로 지주사와 은행 CEO는 최소 3개월 전부터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정상혁 행장을 포함해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NH농협은행장 등 5대 은행장이 일제히 올해 12월31일 임기가 만료된다. KB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NH농협금융은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은행 CEO 선출을 위한 이사회 내 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금융지주 회장 중에서는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의 임기가 올해 말 만료된다. 이어 내년 3월에는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김기홍 JB금융 회장의 임기도 끝난다.
은행권에서는 실적 등 성과를 기본적으로 평가하되 최근 주목도가 높아진 '내부통제'도 주요 평가 요소로 꼽힐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전임 행장의 임기를 이어받아 짧은 기간에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지만 연이어 터진 횡령·부당대출 사고의 책임소지가 뒤따른다. 특히 당국은 손태승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
이석용 농협은행장도 성과는 좋으나 횡령 등 금융사고가 연임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취임하면서 "중대 사고와 관련한 계열사 대표의 연임을 제한하겠다"고 언급한 점도 부담이다.
1년 연임 임기를 추가로 받은 이재근 국민은행장도 잇따른 배임사고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재임 기간 매년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해 KB금융이 리딩금융의 자리를 지키는데 공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금융권에선 내부 출신에 무게를 두고 있다. 먼저 선임절차를 개시한 은행에서도 내부 인사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수협은행장 출사표를 낸 6명 중 4명이 수협은행 내부 출신 인사다. 금융권에서는 강신숙 현 행장을 비롯해 현직 수협은행 인사 3명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이미 내부 인사인 이광희 기업금융그룹장을 차기 행장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외부 인사에게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지난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의 부회장 제도가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신인 발탁이나 외부 인사를 차단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비판했고 주요 금융지주에서는 부회장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주요 은행장들과 지주 회장의 선출시기가 겹치면서 경쟁력 있는 외부 인사가 CEO 레이스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사 임원추천위원회는 통상 헤드헌터사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외부 인사를 후보군에 넣는다. 동일한 인물이 여러 금융사 CEO 후보로 추천받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지난해 하반기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서 동일 인물이 후보군에 포함됐다. 능력있고 중량감을 갖춘 외부 인사가 그만큼 적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주요 금융사의 실적이 일제히 좋은 편이기 때문에 내부통제나 미래 전략 등 다양한 요소들이 CEO 평가에 작용할 것으로 본다"라며 "이에 전통적으로 은행 CEO는 외부 인사보다는 내부 인사가 우위에 있지만 모범관행이 바뀐 첫 사례인만큼 변수가 있을 수 있고 지주 회장은 또 다른 차원으로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임기만료 3개월 전부터 시작되는 금융지주·은행 CEO(최고경영자) 승계절차가 오히려 금융회사 조직과 문화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분한 검증시간을 위한 최소 시간을 설정했지만 후보군 간의 과열 경쟁, 현 CEO의 레임덕 등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은행 내부규범에는 CEO 선임을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지주는 이달 초 CEO 경영승계절차 개시 시기를 지주회사와 은행은 '임기만료일 3개월 전'으로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다. 기존에 40일에서 2배 이상 빨라진 셈이다. 주주총회 등의 소집통지 기간 등에 걸리는 기간은 별도다.
하나은행도 지난달 말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바꾸면서 임기만료 최소 3개월 전에 CEO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하도록 규정했다. 이전에는 특정한 개시시점 없이 '이사회가 은행의 상황과 위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시'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신한금융도 '은행장 경영승계절차 임기만료 3개월 전 개시' 등 자회사 경영승계계획을 개정했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최소 임기 만료 '3개월 전'으로 경영승계절차 개시 시점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반영된 것이다. KB금융도 조만간 내부규범을 개정할 예정이고, 우리금융은 내부적으로 자회사 대표이사 경영승계 계획을 따로 세운 상태다.
CEO 후보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단계별로 면밀하게 평가·검증하기 위해서 3개월이라는 시간 규정을 뒀지만, 오히려 긴 시간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긴 인사검증 기간 등으로 인해 조직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은행장은 임기만료 직전 1~2개월 전 승계절차를 시작했다. 은행장 후보가 대부분 금융그룹 내부 인사이고, 대부분 장기간에 걸쳐 인사평가와 성과검증 등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연 1회 이상 후보군을 이사회에 보고한다. 지난해 말 연임이 결정된 이재근 국민은행장의 경우 경영승계 절차가 처음 시작된 것은 임기만료 한 달 전이었다.
A은행 관계자는 "후보 대부분이 그 자리(후보군)에 오르기까지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이고, 후보군을 평소에 관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길게 필요하지 않다"며 "오히려 명시적으로 3개월 전부터 시작이라고 할 경우 조직 내에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은행장 교체가 유력시될 경우 후보군 간의 과열 경쟁이 우려된다. 3개월 전부터 현 은행장의 레임덕이 시작되고, 후보군 간에 파벌 경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내외부 투서가 남발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B은행 관계자는 "파벌 같은 것이 남아있을 경우 후보군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움직이지 않아도 밑에서 이른바 라인이 움직일 수 있다"며 "오히려 조직 내에 피로도만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행장도 3개월간 진행되는 인사절차에 적극적인 경영활동이 제약받을 수도 있다.
이에 대부분 금융지주나 은행에서는 CEO 인사가 필요 이상으로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별도로 '경영승계 절차가 개시된 시점부터 최대한 빠른 시일 이내에 차기 CEO 선임절차가 마무리'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충분한 인사 검증 등을 위해 3개월 전부터 승계절차를 시작한다는 규정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이번에 규정을 개정한 하나은행도 해당 규정을 갖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부 후보도 많은 주목을 받는 지주 회장과 내부 인사가 대부분 선임되는 은행장은 선임 과정에서 다른 부분이 많다"며 "은행장은 공식적인 숏리스트 발표도 없이 임기 만료 직전에 발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사 과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이병권 기자 bk223@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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