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커지는데…SK·LG 현금흐름 악화

박종오 기자 2024. 9. 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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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 삼성도 보유현금 까먹어
현대차만 매출액 삼성 넘고 질주
2023년 6월20일,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파리 이시레몰리노의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서 진행된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과 인공지능(AI) 거품론,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까지 국내 주력 산업 전반에 안개가 자욱하다. 이에 기업들도 유동성 확보에 바짝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삼성·에스케이(SK)·현대차·엘지(LG) 등 4대 그룹 중 절반은 현금 사정이 악화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룹별 온도차가 크다.

11일 한국기업평가 등 3대 국내 신용평가사 자료를 보면, 4대 그룹(금융계열사 제외)의 올해 1분기(1~3월) 말 현재 잉여현금흐름 합산액은 마이너스 1조5천억원이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영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액을 빼고 남은 돈이다. 1분기 4대 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293조9천억원으로 반도체 회복 등에 힘입어 지난해 1분기에 견줘 7.8%(21조4천억원) 늘었다. 그러나 정작 내부의 가용 재원은 줄었다는 의미다.

발등에 불 에스케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에스케이다. 에스케이그룹의 지난 1분기 말 순차입금은 85조9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2.0조원)에 견줘 4조원 남짓 불어났다. 2021년 말(55조4천억원)과 비교하면 50% 넘게 급증한 규모다. 순차입금은 전체 차입금에서 기업이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뺀 것으로, 재무 안정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다. 지난해 하이닉스의 대규모 손실과 함께 저금리 시기에 대대적으로 벌인 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에스케이그룹의 2020~2023년 외부 지분 투자액은 15조원에 이른다. 반면 성과는 변변찮다. 1조원을 웃도는 평가 손실이 발생한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 투자가 대표적이다. 사업 착수 이래 지난해까지 누적 투자금 약 23조원을 쏟아붓고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배터리·소재 사업은 유동성 악화의 핵심 고리다.

과거 매년 1조원 넘는 이익을 내던 ‘효자’ 석유화학 사업도 부진에 빠져 있다. 반도체 경기 회복, 글로벌 기업들의 인공지능 투자 확대 등으로 지난해 말부터 흑자로 돌아선 하이닉스가 그나마 기댈 구석이다. 배터리 사업의 흑자 전환 시점과 반도체 실적 개선 폭이 그룹 재무 안정성을 좌우하는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반도체와 배터리 부문의 높은 투자 부담을 고려할 때 그룹의 유의미한 차입금 감축은 단기간 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에스케이 쪽은 한겨레에 “올해 2분기 말 기준 순차입금은 1분기 말 대비 소폭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불안한 엘지…현금 까먹은 삼성

엘지그룹도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올해 3월 말 순차입금이 42조8천억원으로 전년 동기(36조3천억원) 대비 큰 폭으로 불어났다. 최근 5년여 사이엔 최대 규모다.

엘지그룹의 고민거리는 그룹 전체 매출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화학 사업이다. 석유화학 부문이 수요 부진과 중국발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고 배터리도 실적 둔화가 예상돼서다. 올해 1분기 그룹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금을 뺀 여윳돈(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5조8천억원에 이른다.

한국신용평가는 “엘지그룹은 영업을 통한 현금 창출력이 악화된 가운데 2차전지(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사업의 높은 투자 부담이 이어져 재무 부담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자산 총액 기준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올해 1분기 말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80조4천억원이다. 외부에서 빌린 돈보다 보유 현금이 80조원 많다는 뜻이다. 에스케이·엘지와는 사정이 확연히 다른 셈이다. 다만 순현금(현금성 자산-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1분기 말 99조7천억원에서 1년 만에 20조원가량 줄었다. 삼성 특유의 ‘무차입 경영’은 유지됐으나 보유 현금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보유 현금이 수십조원 감소한 건 반도체 부진과 대규모 투자 때문이다. 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전자사업의 핵심인 반도체는 지난해 영업적자 14조9천억원을 내고 올해 상반기 8조4천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반면 반도체 중심의 그룹 설비투자(카펙스) 규모는 연간 60조원 안팎에 이른다. 삼성은 핵심 현금 창출원(캐시카우)인 반도체 사업의 실적 회복이 그룹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기존 재무 여건이 탄탄하지만, 반도체 경기 변동에 따라 현금 추가 소진 가능성도 열려 있는 셈이다.

김동원 케이비(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판매 부진으로 올해 하반기 메모리 출하량과 가격 상승이 애초 기대치를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방 산업의 수요 부진과 재고 누적 등으로 삼성전자의 올해 이익도 예상보다 쪼그라들 수 있다는 얘기다.

질주하는 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402조원으로 재계 1위인 삼성그룹(375조원)을 뛰어넘었다.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해 완성차 730만대를 팔아치우며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에 이은 세계 판매량 3위를 굳힌 덕분이다.

그룹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는 자동차 부문의 판매·실적 호조는 재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순현금은 올해 1분기 말 27조7천억원으로 1년 전(19.0조원)보다 약 9조원 불어났다. ‘현금왕’인 삼성엔 못 미치지만 신규 투자 여력은 충분한 셈이다.

전기차 캐즘의 여파도 하이브리드차 판매 확대 등으로 비켜 가는 모습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상반기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0만대에 그쳤지만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그 두배인 41만대에 달했다. ‘사드 사태’를 겪으며 수요가 급감한 중국 대신 미국·인도·동남아시아 등을 집중 공략하며 판매량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현지 전기차의 공습을 먼저 피하는 ‘약’이 됐다. 다만 현대차가 중국 시장 재공략에 나서는 등 고속 성장하는 중국산 전기차와의 겨루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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