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청년의 결기와 기개를 보여준 의열단 단원"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9.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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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9월 12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조선의 독립을 향한 젊은이들의 절규이자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한 강렬한 저항으로, 이를 행한 주인공은 바로 의열단의 김익상이었다.

그는 의열단이라는 비밀결사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조선총독부 폭파 의거를 감행하여 일제에 강렬한 저항을 보여준 인물이다.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조선총독부의 중심부를 향해 감행된 이 폭탄 투척은 일제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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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김익상 선생. (출처: 조선일보, 흑백사진(1935),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1년 9월 12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조선의 독립을 향한 젊은이들의 절규이자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한 강렬한 저항으로, 이를 행한 주인공은 바로 의열단의 김익상이었다.

김익상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다. 그는 의열단이라는 비밀결사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조선총독부 폭파 의거를 감행하여 일제에 강렬한 저항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지시를 받고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김익상은 일본인 전기 수리공으로 변장하고 조선총독부에 침투했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청사 내부로 들어선 그는 2층 비서과를 총독 집무실로 착각하고 폭탄을 던졌으나, 이는 불발됐다. 곧이어 회계과에 던진 폭탄은 폭발했지만, 이번엔 사람이 없었다.

그 직후 김익상은 유유히 조선총독부에서 빠져나갔다.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조선총독부의 중심부를 향해 감행된 이 폭탄 투척은 일제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조선을 탈출한 그는 1922년 3월 말 상하이에서 다나카 기이치 육군대장을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도피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김익상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이후의 행적은 묘연하며 그의 정확한 사망 원인, 사망 시기, 그리고 사망 장소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무후선열 위패를 봉안했다.

비록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김익상의 의거는 단순한 테러 행위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조선 민중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움직임에 불을 지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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