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기차 화재 대책,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홍성효 2024. 9. 1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섣부른 대책은 '전기차 포비아'만 키우고 이용자 불편만 가중

[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사건 이후 '전기차 포비아(공포)'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의 경우 진실과 오해가 섞여 있다. 진실에 대해서는 정교하고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오해에 대해서는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최선의 대책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처 방식에 일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정책의 경우 진실과 오해를 제대로 따졌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공공주택의 지하주차장에 충전율 90% 이하인 차량만 진입을 권장한 게 대표적이다.

기자수첩

이번 '전기차 포비아'는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때문에 생겨났다. 이 사건으로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가 그을려졌다. 국내 전기차 화재 가운데 가장 피해규모가 큰 사례로 꼽힌다.

사건 이후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 발생하면서 일부 시민들은 전기차를 '폭탄차'로 단정 짓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온도가 1000도 이상 급상승하는 '열 폭주' 현상을 보이며,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보호 팩으로 덮여 있어 화재 진압까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8시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타 부품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열폭주를 수반하지 않고 있다. 배터리팩은 고도의 내화성, 내열성을 갖춰, 배터리 이외의 요인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으며, 배터리 화재의 경우에도 최신 전기차에는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탑재돼 조기진압 시 화재 확산 방지가 가능하다.

지난해 7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실시한 '전기차 화재 진압 시연회'에서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전기차 화재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며 전기차 화재 진압이 내연기관차 화재 진압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사건이 많은 것도 아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 기준 비전기차 1.86건, 전기차 1.32건이다. 통계는 충돌 사고, 외부 요인 등에 따른 화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고 초소형 전기차, 초소형 전기화물차, 전기삼륜차까지 함께 집계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승용 전기차에서 고전압배터리만의 원인으로 화재가 난 사례는 훨씬 적다.

하지만 정부와 지차체는 '전기차 포비아'를 가라앉히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서울시가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정책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배터리 충전량은 총 열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셀 자체의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과충전에 의한 전기차 화재는 0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발생이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더 큰 피해를 낳는 것도 아니다. 지난 4월 한국화재소방학회가 발행한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논문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작동만으로도 인접 차량으로의 화재 전이를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결국 지하주차장 등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화재 양상과 피해 규모는 발화 요인이 아니라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의미다.

블룸버그NEF가 지난 7월 내놓은 최신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각국의 전기차 정책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2027년까지 전기차가 신차 판매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전기차는 결국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전기차 화재 사고를 줄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위해서는 진실과 오해를 가리고 과학적 근거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칫 오해에 편승한다면 실효적인 대책보다 '전기차 포비아'만 더 조장하고 이용자의 불편만 더 가중시킬 수 있다. 더 효과적으로 더 빨리 가야 할 전기차 시대를 늦출 뿐이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