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행별로 다른 대출을 팔기 시작했다
기아 대리점에서 현대차의 그랜저를 팔지 않는다고 화를 낼 사람이 있을까. 대출받으러 은행에 간다면 가능하다. 신한은행은 내주는데 KB국민은행이 내주지 않는다면 '왜 너희는 대출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아파트 등 신규 분양 아파트다. 현재 기준이라면 둔촌주공 아파트 전세 세입자는 아무 은행에 간다고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최근 대형은행 대부분이 집주인이 바뀌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했다. 하지만 둔촌주공 같은 신규 분양 아파트를 두고 해석이 다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집주인이 분양대금을 완납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쳐야만 세입자에게 전세대출을 내준다. NH농협은행은 분양대금만 완납하면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하지 않아도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준다. 신한은행은 신규 분양 아파트에는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방안을 적용하지 않아 대출이 나온다. 하나은행은 아직 조건부 전세대출 자체를 중단하지 않았다. 모두 이름은 '전세대출'이지만 은행별로 다른 상품을 파는 것이다. 국민은행(기아)에서 신한은행 상품(그랜저)을 달라고 하니 줄 수가 없는 셈이다.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도 은행마다 달라지고 있다. 어떤 은행은 무주택자에게만 주택 구입 목적으로 주담대를 내준다. 무주택자에게만 주담대를 내주는 은행도 어떤 은행은 기존 주택을 처분한다고 하면 1주택자에게도 대출을 내준다. 특히 어떤 은행은 사는 날과 같은 날 기존 주택을 팔아야 주담대를 내준다고 한다. 생활자금으로 받을 수 있는 주담대 한도도 은행별로 제각각이다. 연소득 이내에만 신용대출을 내주겠다는 은행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원으로 제한하는 은행도 생겼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건 처음 겪는 일이어서다.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이 주담대나 신용대출을 받을 때 은행별로 금리가 다를 수는 있었다. 대출한도도 달랐지만 몇천만원 차이가 나진 않았다. 과거에는 LTV(담보인정비율), 지금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규제로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가 정해졌고 모든 은행들은 그 한도내에서 최대한 대출을 내줬기 때문에 한도 차이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은행에선 대출이 나오고, 어떤 은행에서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여러 은행이 있지만 같은 상품을 팔다보니 사람들 마음 속엔 '은행은 하나'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실수요자가 겪는 불편함은 모든 은행이 동일하게 감독당국 대출규제만 적용하다 보니 은행별 상이한 기준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산업에서 상품과 서비스는 회사별로 가격과 품질이 다르다. 브랜드 가치도 다르다. 은행업에선 대출이 대표 상품이다. 누구에게 얼마만큼, 어느 정도 금리에 빌려줘야 돈을 떼이지 않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 결과가 금리(가격)와 대출한도(품질)다. 돈을 맡겨도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은 은행이 키워온 브랜드 가치다. 그리고 누구한테 대출을 내줘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곳도 은행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시행착오를 겪은 이복현 원장이 가계부채 관리에서 은행의 자율성을 강조한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권 경쟁 촉진을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은행 진입 규제를 완화했다. 새로운 은행이 생기면 국민들이 더 좋은 상품(대출이든 예금이든)을 이용할 수 있다고 봐서다. 하지만 지금 있는 은행들과 대출을 규제와 '관치'로 모두 같게 만들면 새로운 은행이 생긴다고 무엇이 바뀌겠는가. 은행업이 가격과 품질, 브랜드 가치로 경쟁하는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은행이 각자 다른 상품을 팔도록 해야 한다. 불편을 견딜 인내심도 필요하다.
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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