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 Good] '남자가 무슨 화장' 핀잔은 옛말? 홍대 뷰티 팝업에 남자 2000명 몰렸다
열흘 동안 총 1만2000명 방문
"화장 No, 관리 OK" 20대 남성 多
톤업로션·발색립밤 등 간편 제품 인기
무신사 1~8월 뷰티 매출도 148%↑
주요 브랜드 '포맨' 라인업 확충
8월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축제거리 수(秀) 노래방 본점. 건물 주위로 50m가 넘는 줄이 늘어섰다.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긴 너무 이른 시각. 30도 넘는 더위를 견디며 이들이 오매불망 입장을 기다린 곳은 CJ올리브영 '맨즈 뷰티(Men’s Beauty)'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였다. 내부에는 수십 명 고객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남성들은 보습과 자외선 차단, 피부 톤 보정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로션이나 자연스러운 발색을 내주는 립밤을 진지한 표정으로 발라보고 있었다. 여자친구 추천을 받아 제품을 사가는 고객도 많았다.
CJ올리브영이 남성 화장품 팝업을 연 것은 회사 설립 이래 처음이다. 당초 담당자들조차 성공 가능성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 분위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팝업 입구에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 부스를 설치한 것도 뷰티 이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우였다. 열흘(8월 30일~9월 8일) 동안 누적 방문객은 무려 1만2,000여 명. 7일에는 하루 2,000여 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전체 방문객의 80%가 남성이었다"며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開花)하고 있다. 화장대에 앉아 기초부터 색조까지 얼굴에 공을 들이는 풀메이크업 남성이 갑자기 늘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피부 톤을 조금 밝게 하거나 잡티를 잡는 수준의 저(低)강도 관리를 원하는 20대 남성들이 많아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이런 수요에 발맞춰 일부 화장품 기업들이 일찌감치 스킨·로션 등 기초 제품에 메이크업 효과를 더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틀이 형성되고 있는 것. 최근 주요 화장품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남성 라인업을 확충하고 나선 배경이다.
남성 화장품으로만 年 100억
구독자 32만 유튜브 채널 '관리는 하고 살자'를 운영하는 김정원(26)씨는 남성 화장품 시장의 잠재력을 몸소 체험한 당사자다. 그가 남성을 위한 피부 관리와 머리 손질, 화장법 등을 담은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게 2019년. 호응은 크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며 수년째 구독자 1만 명대에 머물렀다. 그러다 노(No) 마스크 시대가 찾아온 2023년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꾸미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같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남성의 문의가 잇따랐다. 그는 "이런 친구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 있으면 수요는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씨가 같은 해 7월 직접 남성 화장품 브랜드 두잉왓(Doingwhat)을 론칭한 배경이다.
실제 젊은 남성들은 화장품 사는 데 지갑을 열고 있다. 2022년 남성 전용 스킨케어 화장품을 출시한 A사는 최근 CJ올리브영에서만 매달 10억 원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남성용 제품으로만 연 100억 원 이상 매출을 낸 셈이다. 또 B사 톤업 로션도 보습과 자외선 차단, 피부 보정까지 모두 가능한 제품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달 1만 개 이상씩 팔리고 있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사회 전반적으로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 분위기가 적지 않다 보니 그냥 로션 바르듯이 쓸 수 있는 관리형 제품이 인기가 높다"고 했다.
2030 남성이 많이 찾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입점한 다슈, 포뷰트 등 5개 주요 남성 브랜드의 올해 1~8월 매출 또한 1년 전보다 148% 늘었다. 이에 무신사는 6~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오프라인 최대 행사인 '무신사 뷰티 페스타 인(IN) 성수' 팝업 스토어를 열며 맨즈존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생활용품점 다이소의 올해 1~7월 남성 화장품 구매액도 154% 신장됐다. 롯데백화점의 피부 진단 서비스인 '뷰티 살롱' 전체 이용객 중 10%는 남성이라고 한다.
이에 화장품 기업들도 남성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20대 남성을 겨냥한 브랜드 비레디를 만든 아모레퍼시픽이 대표적이다. 비레디가 2023년 7월 스킨로션·선크림·BB크림 기능을 하나로 담아 내놓은 '트루 톤 로션'은 출시하자마자 올리브영·무신사 남성 카테고리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 코스맥스 관계자는 "남성용 화장품 제조 관련 브랜드의 문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남성은 바로 윗세대인 20대 후반과도 눈에 띄게 다를 정도로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며 "전체 화장품 시장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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